[사설] 체육계 만연한 성적 지상주의·주종관계 탈피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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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9-01-11   |  발행일 2019-01-11 제23면   |  수정 2019-01-11

한국 여자 쇼트트랙 간판 심석희 선수가 4년간 조재범 전 코치로부터 성폭행을 당했다는 폭로가 나와 파장이 일파만파로 커지고 있다. 아직 정확한 진상이 밝혀진 것은 아니지만 심 선수가 미성년자였을 때부터 선수촌과 빙상장 라커룸 등에서 성폭행이 자행된 것으로 알려져 체육 당국의 관리 소홀과 함께 구멍 난 성폭력 대책에 대한 따가운 질책을 피할 수 없게 됐다. 특히 ‘젊은빙상인연대’ 대표를 맡고 있는 여준형 전 쇼트트랙 대표팀 코치는 한 방송과의 인터뷰에서 “빙상계의 성폭력 문제는 저희가 알고 있는 경우만 대 여섯 사례가 있다”고 말해 추가 폭로가 이어질지 주목된다.

체육계의 고질병인 폭행과 성폭력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지만 좀처럼 근절되지 않고 있다. 지난해 3월에는 국가대표 리듬체조코치가 전직 대한체조협회 간부에게 장기간 성폭력에 시달렸다고 폭로했으나 유야무야됐다. 지난해 11월에는 한 중학교 운동부 코치가 남학생 선수를 성폭행해 구속됐다. 2018년 ‘스포츠 (성)폭력 실태조사 결과’를 보면 최근 1년간 일반등록 선수와 지도자들의 폭력경험은 26.1%, 성폭력 경험은 2.7%에 달한다. 사정이 이런데도 정부의 재발방지 대책은 언제나 뒷북·재탕에 그치고 있다. 가해자 처벌도 솜방망이에 불과해 징계가 끝나기도 전에 복직하거나 심지어 피해자가 있는 곳으로 다시 가는 일도 없지 않다.

문화체육관광부는 이번에도 심 선수의 폭로가 나온 지 몇 시간 만에 대책을 내놨다. 성폭력 관련 징계자가 국내외 체육관련 단체에 종사하는 것을 금지하고, 성폭력 근절을 위한 전수조사와 비리대응 전담기구 설치를 추진키로 했다. 하지만 전수조사만 해도 전례를 보면 실효성이 있을지 의문이다. 행여 감독기관인 문체부와 대한체육회 주도로 조사가 진행된다면 결과의 신뢰성을 담보하기 어렵다. 더구나 지금과 같은 강압적인 체육계 분위기와 도제식 훈련 환경 아래서는 선수가 불이익을 감수하고 사실대로 응답할지 장담할 수 없다. 국가인권위원회 등 독립기관이 전수조사를 맡는 것이 마땅하다.

체육 당국은 이번 사태를 계기로 스포츠계에 만연한 선수 폭행과 성폭력이 다시는 발붙이지 못하도록 강력한 대책을 강구해야 한다. 어린 심 선수가 고통을 감수하고 어렵게 용기를 낸 만큼 반드시 스포츠 강국에 걸맞게 환골탈태해야 한다. 잘못을 저지른 지도자는 일벌백계하고, 문체부와 빙상연맹·대한체육회 등 상위 단체의 부실한 관리·감독책임도 엄하게 물어야 할 것이다. 무엇보다 선수와 지도자간 주종관계, 성적 지상주의, 제 식구 감싸기 등 체육계의 잘못된 문화를 바꾸는 일이 급선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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