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40칼럼] 국가의 도리, 국민 된 도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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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9-01-15   |  발행일 2019-01-15 제30면   |  수정 2019-01-15
체육계의 성폭력 근절대책
美에 비하면 솜방망이 수준
침묵·방조도 책임묻게 하고
힘 필요땐 함께한다는 마음
그것이 피해자에 대한 도리
[3040칼럼] 국가의 도리, 국민 된 도리
강선우 대통령직속자문기구 국가교육회의 전문위원

“피고인에게 징역 175년, 2천100월 형을 선고합니다. 당신은 감옥 밖으로 걸어서 나갈 자격이 없습니다.” 2017년 미국 연방 재판에서 이미 징역 60년을 선고받은 미국 체조 국가대표팀과 미시건 주립대학 체조팀 주치의를 지낸 래리 나사르에게 작년 이맘때 내려진 형벌이다. 미 연방 재판을 포함해 나사르는 최대 300년의 징역형을 선고받았다.

나사르는 1990년대 초부터 2016년까지 약 30년간 300명이 넘는 여자 체조선수를 성추행하고 성폭행했다. 하지만 변호사이자 전직 체조선수였던 레이첼 덴홀랜더가 2016년 나사르의 범행을 폭로하기 전까지 그의 파렴치한 행위는 세상 밖으로 드러나지 않았다. 2016년 올림픽 금메달리스트 시몬 바일스의 고백이 도화선이 됐다. 미 체조협회와 미 올림픽위원회 등 감독기관의 고위급 인사들은 줄줄이 옷을 벗었고, 수백 건의 소송은 여전히 진행 중이다. 미 체조협회는 피해자들의 배상금을 마련하지 못해 파산 신청했다.

전 미국 펜실베이니아 주립대 풋볼 코치인 제러 샌더스키는 1996년부터 15년 동안 10대 소년 10명에 대해 52건의 성폭행 범죄를 저질렀다. 그는 징역 30~60년형을 선고받고 현재 복역 중이다. 이 사건과 관련해 미국 대학 1부리그에서 409승을 거둬 풋볼 최다승 기록을 갖고 있는 ‘미 대학 체육협회 역사상 가장 위대한 감독’으로 꼽혔던 조 패터노 전 감독은 철퇴를 맞았다. 패터노 전 감독은 샌더스키의 범죄 사실을 알고도 경찰에 신고하지 않은 혐의로 2011년 불명예 퇴진했다. 학교에 세워졌던 패터노 동상도 철거됐다. 미국 사회는 범죄 행위는 물론 ‘침묵과 방조’ 혐의에 대해서도 자비를 베풀지 않았다.

우리도 최근 비슷한 상황을 맞고 있다. 국가대표 쇼트트랙 여성 선수단을 지도하던 남성 코치가 한 여성 선수에게 해서는 안 되는 행동을 한 사실이, 피해 선수의 용기 덕분에 세상에 알려졌다. 해당 코치의 이름은 조재범이다. 이른바 ‘조재범 사건’ 폭로 이후 또 다른 빙상 선수 2명이 성폭행 피해 사실과 가해자를 공개할 것이라고 한다.

문화체육관광부는 성추행, 성폭행 가해자를 체육계에서 영구제명하고 해외 취업도 차단하는 내용의 성폭력 근절 대책을 발표했다. 민간주도로 성폭행 관련 체육 단체 전수조사도 벌여 실태를 더욱 자세히 들여다 볼 예정이라고도 했다. 그런데 문체부의 조치를 두고 솜방망이 처벌이라는 비난이 거세다. 가해자는 물론 침묵과 방조 혐의에 대해서도 철퇴를 가한 미국의 강력한 응징에 비해 수위가 너무 낮다는 지적이다.

체육계가 성폭력 비위를 이제껏 몰랐을까 하는 의구심, 터질 게 터졌다는 빙상계의 반응, 제대로 된 조사인지 의심되는 대한체육회의 성폭력 경험비율 발표 등이 ‘침묵과 방조의 카르텔’을 낳았다는 말도 나온다. 알고도 신고하지 않는 것이 가장 큰 문제라는 전문가들의 지적처럼 강제력을 통한 신고 및 보고의 의무화가 반드시 필요하다. 보고도 못 본 척하는 죄도 가해 행위만큼 엄벌에 처해져야 한다. 그게 국민을 지키는 국가의 도리다.

언론계 종사자들에게도 한 가지 당부를 하고 싶다. 이번 조재범 사건을 포함해 성폭행 피해자 A씨라는 표현보다 성폭행 가해자 B씨 사건으로 소개해주길 바란다. 언론에 피해자 이름과 함께 영상 자료가 지속적으로 노출되는 것은 피해자와 피해자 주변인들이 원치 않을 수 있다. 또한 가해자의 잘못된 행동이 널리 알려져야 제2, 제3의 피해자를 막을 수 있고, 제2, 제3의 용기 있는 폭로를 유도할 수 있기 때문이다.

‘조재범 사건’ 피해자는 “잘 살아 있어 준 저 자신한테 너무 감사하다”고 했다. 이런 상황에서도 올림픽에 나서준 점, 이런 상황에서도 내 딸 아이를 비롯해 관중에게 사진도 찍어주는 등 팬서비스를 아끼지 않은 점, 이런 상황에서도 좋은 성적을 거둬준 점…. “정말 고맙습니다. 그리고 미안합니다. 힘이 필요할 때, 언제나 함께하겠습니다. 그게 국가대표 선수에 대한 최소한의 국민 된 도리니까요.”강선우 대통령직속자문기구 국가교육회의 전문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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