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둥시'라 불리는 상주는 곶감이다

  • 이춘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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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9-01-18   |  발행일 2019-01-18 제33면   |  수정 2019-01-18
[이춘호기자의 푸드로드] 상주
20190118
상주는 전국 유통량의 60% 이상을 차지할 정도의 곶감 특구다. 10월 초중순에 수확된 둥시는 50~60일 빛가림시설이 잘된 대형창고형 덕장에 걸린다. 예전에는 싸리나무 꼬챙이로 꿰거나 실에 걸어 말렸는데 이제는 플라스틱 행거를 이용해 곶감을 건다.

한국은 백의의 민족. 순백의 나라였다. 윗 낙동강과 아랫 낙동강을 엮어주는 낙동나루를 품었던 상주. 임진왜란 때 60여번 싸워 모두 이겨 ‘뭍의 이순신’으로 불렸던 정기룡 장군, 그가 용마(龍馬)를 얻었던 곳에 조성된 낙동강 제1경 경천대(擎天臺)를 품은 상주. 물산이 워낙 풍부해 보릿고개에도 굶는 사람이 없었다고 하는 상주. 예전에는 위세등등하고 지금은 여유만만한 상주. 처음엔 ‘사벌주’로 불렸다. 다음에는 ‘상주(上州)’, 고려 태조 23년(940)에 비로소 현 지명인 상주(尙州)를 얻는다.

누에·쌀·곶감으로 유명한 ‘삼백의 고장’
껍질 벗긴 ‘둥시’2개월간 덕장에 말려져
밑 납작한 청도반시와 다른 둥글한 모양
국내 유통량 60% 차지…온라인주문 증가
농가 상당수가 3代째 가업 잇는 ‘곶감맨’


이 고장 물산은 모두 흰색과 인연이 깊다. 누에(고치)·쌀·곶감 덕분에 상주는 ‘삼백(三白)의 고장’이 된다. 원래 목화도 가세해 ‘사백의 고장’이라야 하는데 이제 목화는 유명무실해졌고 대신 누에만 특산물로 정착된다. 그 흰색은 계절과 계절을 이어주며 서로의 자리를 더 공고하게 만든다.

처마 아래 대롱대롱 걸려 있는 곶감 위에도 눈이 내린다. 속살을 다 가릴 정도로 뽀얗다. 곶감 속 당분(과당과 포도당의 합성물)이 겉으로 흘러나온 까닭이다. 예전엔 그 흰 분이 인기였다. 그게 있어야 제대로 된 곶감으로 인정받았다. 하지만 언젠가부터 분 발린 곶감이 퇴조하기 시작한다. 이젠 다들 몰랑하고 분이 없는 말갛고 부드러운 곶감을 원한다.

아무튼 설밑 곶감이 동이 날 즈음 봄이 오고 그 봄이 여름으로 건너갈 무렵 상주 산하는 뽕잎의 기세에 무릎을 꿇게 된다.

경북 기념물 제1호인 300년생 노거수 뽕나무도 은척면 두곡리에 있다. 여느 고장에선 그렇게 큰 뽕나무를 보기 힘들다. 뽕잎 먹은 누에는 더없이 환한 자태를 뽐낼 수 있다. 누에는 고치 속 번데기로 산화한다. 선조들은 어른 엄지손가락 굵기만 한 그 고치를 뜨거운 물에 불려 붓처럼 묶은 후 타작 끝난 볏짚의 끄트머리로 고치의 실 매듭을 찾아냈다. 그걸 물레에 감아 생사를 만들고 베틀에 씨실과 날실을 걸어 교직하면서 피륙(명주)을 만들었다. 뽕잎이 숙지면 기름진 함창·상주평야에 심긴 벼는 무럭무럭 자라나고 늦가을엔 수매용 쌀이 된다. 상주를 대표하는 쌀 중 하나가 ‘아자개쌀’인데 아자개는 신라와 고려의 세력권 사이에 있던 사벌주의 호족이었고 그의 아들이 견훤이다.

여름 뙤약볕은 감을 더욱 무르익게 만든다. 그 감은 종착역인 곶감을 향해 달려간다. 청도는 감말랭이라지만 상주는 곶감이라야 명함을 내밀 수 있다.

상주감은 밑이 납작한 청도 반시와 달리 둥글둥글해 ‘둥시’로 불린다. 껍질 벗겨진 둥시는 2개월쯤 바람 잘 통하는 덕장(건조장)에 걸려 황태처럼 잘 말려진다. 예전에는 바람이 잘 들락거리는 곳에 농막 같은 건조대를 집집마다 원두막처럼 만들어 놓았다. 의성의 마늘농가 건조대와 비슷한 구조다.

그때는 곶감도 주먹구구, 소매형태로 유통됐다. 하지만 지금은 대량 계통출하시대. 갈수록 온라인 주문배송이 증가한다. 국내 곶감 유통량의 60% 이상이 상주곶감이다. 지난 연말 기준, 상주에서 곶감을 내는 데는 모두 3천863 농가. 가장 큰 유통기관은 2006년 문을 연 ‘상주곶감유통센터 영농조합법인’. 2005년 중국산 곶감이 한국을 급습한다. 어쩜 위기의식을 가진 상주곶감이 센터를 앞세워 반격에 나선 건지도 모른다. 현재 상주곶감 전문 공판장은 센터를 비롯해 남문청과, 농협, 원예농협 등 모두 4곳이다. 상주에서 100동(1동은 감 1만개) 이상 곶감을 내는 데는 100여 농가, 500동 이상은 20여 농가다.

웬만한 곶감농가는 3대 이상 가업을 잇고 있다. 센터에서 이사로 일하는 방응환씨(68)는 ‘해진농원’을 운영하는 40여년 구력의 곶감맨이다. 1세대로 불리는 ‘감도가농원’의 이재훈 대표도 할아버지(이용백)와 아버지(이경희)의 뒤를 이었다. 그 시절에는 제수용품으로 대량거래됐다면 지금은 간식용과 명절 선물용이 압도적이다. 곶감도 세월따라 대접이 달라진다. 곶감은 이제 음식이 아니고 ‘문화관광상품’으로 자리를 잡았다.

이젠 희미한 옛 추억이 된 남성동 곶감도가, 외남면 소은리 곶감마을. 750살 먹은 ‘하늘아래 첫 감나무’를 친견하기 전에 잠시 ‘한국 명주1번지’ 함창읍으로 길을 옮겼다.

글·사진=이춘호기자 leekh@yeongn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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