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단상] 핵의 공포 유전되는 방사선의 피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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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9-01-19   |  발행일 2019-01-19 제23면   |  수정 2019-01-19
[토요단상] 핵의 공포 유전되는 방사선의 피해

지난주 경남 합천에 갔다 왔다. 국내 유일의 원폭자료관을 방문하기 위해서였다. 2017년 8월 개관한 합천원폭자료관은 1945년 8월 일본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원자폭탄이 투하되었을 때, 일본에 거주한 한국인의 피해 상황과 핵의 위험성에 대한 교육 및 홍보, 그리고 원폭과 관련된 주요 자료들을 체계적으로 관리 보존하고자 건립하였다고 한다. 한국인 원폭피해자 중 약 80%가 합천 출신이어서 합천에 원폭자료관이 세워진 것이다. 원폭자료관은 1층 전시실과 2층 자료관으로 된 아담한 규모로, 1층 전시실에는 원자폭탄의 배경과 원자폭탄 피해 상황을 자세히 설명한 자료들이 전시되어 있다.

원폭피해 관련 자료에 의하면, 히로시마와 나가사키 두 곳의 원자폭탄 투하로 인한 인명피해는 약 74만명으로, 그중 약 10만여명이 한국인 원폭피해자다. 이 가운데 사망자가 5만여명, 생존자가 5만여명으로 생존자 중에 4만4천여명이 한국으로 귀국했으며, 나머지 원폭피해자들은 일본에 남았다.

방사선에 노출되면 염색체와 DNA에 이상이 생기고 그렇게 해서 생긴 이상, 즉 돌연변이가 후손들에게 대를 이어 유전될 수 있다는 것은 이미 잘 알려져 있는 사실이다. 이러한 유전적 영향으로 염색체 이상으로 생기는 다운증후군으로 유산, 유아 조기 사망 등이 발생하며, 선천성 기형으로는 구순열(언청이)과 선천성심장질환 등을 들 수 있다. 또한 돌연변이로 각종 암에 걸리기 쉬운 체질이 될 뿐만 아니라고혈압, 심장질환, 뇌졸중, 위·십이지장 질환, 류머티스, 빈혈, 백내장, 천식, 당뇨병, 우울증 등의 만성질환에 걸리기 쉽다는 것이다. 우리는 이러한 무서운 사실을 당사자가 아니면 잊고 지내기 일쑤다. 그리고 원폭피해도 남의 일처럼 생각한다. 적어도 한국인 원폭피해자들이 겪었던 고통의 역사와 원폭의 기억을 잊지 않고, 핵무기로 인한 비극이 없는 세상을 만들어 갔으면 좋겠다.

내가 원폭피해 등에 본격적으로 관심을 갖기 시작하게 된 계기는 2016년 5월 출판된 한수산 작가의 장편소설 ‘군함도 1·2’를 읽고 나서부터였다. 소설의 공간적 배경인 일본의 군함도는 2015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되어 한국에서 논란이 된 곳이다. 나는 ‘군함도 1·2’를 읽고, 그해 여름방학을 이용해 나가사키현에 소속되어 있는 하시마, 즉 군함도를 방문하였다. 사진으로만 보았던 군함도가 눈앞에 생생하게 펼쳐지자 온몸에 소름이 돋았다. 현지 군함도를 둘러보고 새롭게 안 사실은 군함도가 폐광이 되면서 무인도가 되어 그대로 방치해 두었다면 지금의 모습이 남아있지 않았을 터인데, 일본은 폐허가 된 군함도의 훼손을 막고자 1980년대에 섬 둘레에 방파제를 세웠다고 한다. 그때 방파제를 세웠기 때문에 지금의 모습을 유지할 수 있게 되었다는 것이다. 결국 그렇게 보존한 군함도가 30여년 후에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되어 일본에 효자 노릇을 하게 된 셈인 것이다.

소설 ‘군함도 1·2’의 주된 내용은 일제강점기에 한국인이 강제 징용되어 군함도에 끌려가 그곳 탄광에서 지낸 참상과 나가사키 원폭투하 및 한국인 피폭 상황이 자세히 그려져 있다. 한국인 강제징용 노동자들이 나가사키 원폭 투하시 나가사키에 거주해 있어서 피폭됐으며, 또 군함도에 있던 한국인 노동자들이 강제로 동원되어 피폭지인 나가사키 시내를 청소하는 과정에서 검은 분진이 피부에 닿아 원폭피해를 당한 것이다. 당시 나가사키는 원폭에 의한 폭풍으로 모래 먼지와 함께 석탄가루가 하늘을 뒤덮었다고 한다. 바로 죽음의 재인 것이다. 시내가 초토화되고 나서 얼마 지나지 않아 검은 비가 내렸다. 굵은 빗방울은 석탄가루처럼 검었고, 이 죽음의 재와 검은 빗방울에는 강도 높은 방사능 물질이 뒤섞여 있었던 것이다. 검은 분진과 검은 비에 노출된 사람들은 자신이 원폭병으로 죽어 가는지도 모르고 죽어 갔고, 한국으로 돌아온 사람들은 피폭증세가 나타나도 그것이 원폭으로 인한 증세인지도 모른 채 죽어갔으며, 살아남은 사람들은 원인 모를 병의 고통 속에서 오랜 시간을 견뎌야만 했던 것이다. 나는 앞으로 지속적으로 원폭 피해에 관심을 갖고 연구를 계속해 나갈 것이다.

이정희 (위덕대 일본언어문화 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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