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언제까지 이젤 세우고 전시회 할 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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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9-01-21 00:00  |  수정 2019-01-21
20190121

 ‘21세기는 문화의 세기다.’
 

진부한 이 말이 새삼스럽게 가슴을 파고든다. 의성으로 귀촌한 2년차 시골 화가에게 새로운 고민이 생겼다. 지난해 10월 의성문화제가 의성군체육회관과 주변 광장에서 열렸다. 체험과 공연은 야외무대와 부스에서 진행되었고, 많은 주민이 참여하는 것이 보기 좋았다. 체육관 안에서는 시화전을 필두로 서예, 수석, 도자기, 서각, 민화, 야생화, 사진, 그림전이 열렸다. 하지만 체육관 벽과 간이칸막이, 테이블을 이어붙인 좌대, 이젤을 세우고 얹어 놓은 사진과 그림들. 그마저도 공간이 모자라 바닥 모서리에 기대놓은 작품들이 내게는 익숙하지 않은 풍경이었다.
 

인구 3만~6만명의 43개 군 중 39개 군은 독립적인 전시장을 확보하고 있다. 전시장이 없는 곳은 의성군을 포함해 단 4곳에 불과하다. 단체장의 관심도와 지역민의 문화예술인프라 요구의 정도가 이러한 차이를 가져왔을 것이다.
 

미술관이나 갤러리와 같은 전시장은 문화예술 활동의 필수요건이다. 대도시 전시장처럼 미술품을 연중 전시할 수 있는 환경은 아니지만, 지역에서 활동하는 예술인에게 없어서는 아니 될 시설이 전시장이다. 전문 전시장이 없어 연간 의성군내에서 열리는 전시는 체육관 임시 간이공간에서 의성문화제, 의성서예대전, 평생학습동아리 발표회 등이 열렸다.
 

어느 분야의 예술가들이 얼마나 의성에 살고 있는지 조사된 바도 없고, 그러니 당연히 군이 주최하는 초대전이나 기념전 등은 이뤄지지 않는다. 전시장 없이 전시예술의 활성화는 기대할 수조차 없다. 문화제에 출품하는 전시 관련 단체만도 9개에 이른다. 연 1회 정기전시회만 열더라도 주민들의 전시문화 향수의 기회는 지금보다 9배에 이른다. 여기에다 15곳 이상에 이르는 서실과 미술학원 등의 발표회, 몇 번의 기획전이나 소규모 그룹전, 개인전 등이 열리게 되면 최소 연간 30주 이상 전시회를 제공할 수 있다. 현대인의 정주 조건 중 하나가 문화예술과 관련된 인프라다. 미술, 문학, 음악, 연극, 영화 등의 예술과 각종 동아리 중심의 생활예술 활동공간이 되는 공연장과 전시장은 꼭 필요하다.
 

농촌지역이라고 농업 일변도로 정책이 추진돼선 곤란하다. 행복하게 살 수 있는 기본권이 전제되지 않으면 미래형 산업이나 성장 동력을 확보할 수 없음을 선진국의 사례를 통해 이미 경험했다. 일정 수준의 소득을 갖게 되면 문화가 중요한 삶의 척도가 된다. ‘연봉보다 얼마나 넓은 권리 행사와 문화력이 뒷받침되느냐’가 선택의 기준으로 변화된다. 청년들이 도시에 머무르고자 하는 것은 더 많고 다양한 문화와 편의를 제공받기 위함이며, 이를 삶의 완성도를 높이는 기준으로 삼기 때문이다. 반대로 농촌이나 소도시지역 청년들이 같은 수준의 연봉에도 정주하지 않고 떠날 기회만 엿보는 것은 도시만큼의 문화활동 향유 기회와 생활편의가 주어지지 않기 때문이다.
 

국토균형발전과 지역소멸을 막기 위해 중앙정부와 지방정부는 그동안 부단히 노력을 해왔지만 백약이 무효였다. 이제는 경제활동을 원활하게 하는 것과 더불어 의미 있고 윤택하게 소비할 수 있는 문화예술의 일상화에 초점을 두어야 한다. 의성에 백화점이나 종합병원, 대학교를 짓기는 어렵다. 물론 대기업을 유치하는 것도 불가능하다. 오늘날 청춘이 살아가는 데 꼭 필요한 것을 찾아서 갖춰나가야 소멸의 고민이 아닌 부흥의 기대를 가질 수 있을 것이다. 
 

인구 2만5천명의 무주군과 청송군에 최북미술관, 군립야송미술관이 있는 것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전남 신안군은 1면 1미술관정책을 시행한다고 한다. 이 정도는 바라지도 않지만 더 이상 이젤을 받침으로 삼아 체육관에서 미술전시회를 열지 않았으면 한다.

 최 수 환  (화가.문화기획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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