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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애의 문화 담론] 노블레스 오블리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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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뉴미디어부기자
  • 2019-02-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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富를 ‘세습’하는 사람과 富를 ‘환원’하는 사람

학생들이 경주 최부잣집에서 최부자 가문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있다. <영남일보 DB>
‘황금돼지 해’다. 연초부터 소득격차가 역대 최악의 수준을 기록하고 민생경제가 벼랑 끝으로 몰리는 바람에 설 대목이 썰렁한 느낌이다. 그래선지 한숨만 삼키는 서민들 사이엔 ‘수저 계급론’까지 들먹이는 정서가 흐르고 있다. 누구나 잘 아는 용어지만 이른바 금수저란 집안이 부유하거나 부모의 사회적 지위가 높아 경제적으로 여유가 있는 사람들을 비유한 말이고 흙수저는 가정형편이 어려워 부모의 능력이 뒤따르지 못해 어려운 상황에 내몰린 사람들을 빗댄 말이다.

그러나 요즘엔 억대 연봉에다 일자리 승계에도 불구하고 불만이 쌓여가는 노동귀족이나 최저임금 인상과 주52시간 근무제의 혜택을 톡톡히 보는 정규직을 두고 금수저라 부르기도 한다. 때문에 취업난에 허덕이는 절대다수 2030세대가 금수저와 흙수저의 양극화 현상을 불평등사회의 상징으로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것이다. 자신을 흙수저로 생각하는 대부분의 젊은이는 한때 그 흔하던 알바자리도 구하지 못해 스스로 ‘어둠의 자식들’이라고 자조하기 마련이다.

소득차 역대 최악‘수저 계급론’
자신·가족만을 위한 부귀 집착
2030 취업난…젊은계층 자조감

300여년간 만석지기 경주 최부자
12대 장손까지 이어온 사회 나눔
흙수저 美 철강왕 앤드류 카네기
전재산 사회 돌려준후 봉사의 삶
대구 키다리아저씨 등 기부 천사
전국 곳곳 숨은 기부금도 돋보여
부자들의 ‘福音’ 확산되길 기대


흙수저 신분에서 요행히 하늘의 별따기만큼이나 어려운 정규직을 꿰찰 경우 ‘출세했다’는 표현도 모자라 ‘개천에서 용났다’는 칭송까지 듣는다고 한다. 어쩌다가 세상이 이렇게 뒤틀려가고 있을까. 한때 흙수저가 그 어려운 행정, 사법시험에 합격하고 우뚝 섰을 때 흔히들 ‘개천에서 용났다’는 말이 회자되곤 했다. 그렇게 되기까지 수많은 간난(艱難)과 형극의 고통이 따랐기 때문이다. 그러던 것이 이제 정규직 일자리 하나 두고도 금수저로 호칭하는 세상으로 바뀐 것이다. 취업난이 그만큼 심각하다는 얘기다.

“부자 3대 없고 가난뱅이 3대 없다”는 빈부의 부침을 비유하는 속담이 있지만 오랜 세월 순수하게 제자리를 지켜온 금수저가 새삼 우리들의 가슴에 와 닿는다. 12대에 걸쳐 300여 년간 만석지기로 부(富)를 지켜온 경주 최부자! 이 가문은 가장 오랜 금수저의 전형으로 소리소문 없이 노블레스 오블리주(사회지도층의 도덕적 의무)를 착실하게 실천해 왔다. 노블레스 오블리주란 자신을 제치고 이웃을 사랑하는 ‘멸사봉공(滅私奉公)’의 정신이다.

최부잣집 입향조 최국선(1635~1682)은 “벼슬길에 나서되 진사 이상은 하지 말고 재산은 만석 이상 불리지 말 것이며 사방 백리 안에 굶어죽는 사람이 없게 하라”는 유훈을 남겼다. 하여 후손들은 만석지기의 30%인 3천석 이상을 빈민구제에 사용했다. 12대 장손 최준(1884~1970)은 일제 강점기 상해임시정부에 막대한 독립자금을 지원한 독립유공자다. 그는 1960년대 영남대학교 전신인 대구대학교와 계림학숙을 설립해 마지막 재산을 정리하고 빈 손으로 이승을 떴다.

그러나 세계 10위권의 경제대국이라 자랑하는 우리나라에 ‘경주 최부자’처럼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몸소 실천해온 재벌을 찾아볼 수 없다. 멸사봉공이 아닌 이웃을 제치고 자신과 가족만을 챙기는 멸공봉사(滅公奉私)로 지나치게 부의 세습에 집착하기 때문이다. 이럴 때 최부자뿐 아니라 미국의 철강왕 앤드루 카네기(1835~1919)가 남긴 명언이 떠오른다. ‘재산을 가지고 죽는 것은 인간으로서 부끄러운 일이며 천국에서 명패를 찾을 수 없을 것’이라는 부의 복음(The Gospel of Wealth).

카네기는 대표적인 흙수저 출신이다. 영국 스코틀랜드의 가난한 농부의 아들로 태어나 미국으로 이주한 그는 철강도시 피츠버그 슬럼가에서 주급 1달러20센트를 받는 가혹한 노동자로 내몰렸다. 하지만 정직과 신용을 바탕으로 세계에서 돈을 가장 많이 벌어들인 축재의 귀재로 성장했고 생전에 부의 사회 환원이 부자의 신성한 의무임을 강조했다. 이후 76세 때(1911년)엔 카네기재단을 설립하고 전 재산을 사회에 환원하여 ‘부의 복음’을 전하는 자선사업가로 돌아섰다,

해마다 연말연시가 되면 대기업을 비롯한 중견기업에서 기십억원 내지 최고 기백억원씩 이웃사랑 성금으로 기부하고 있으나 오너의 사재가 아닌 계열사별로 갹출한 체면치레용에 불과할 뿐이다. 차라리 해마다 꾸준히 훈훈한 정을 베풀어온 전주의 얼굴없는 천사가 보낸 현금다발이나 대구 키다리 아저씨, 합천우체통 돈봉투, 광주 쌀트럭 등 전국 곳곳의 숨은 기부금품이 훨씬 돋보이는 것이다.

금수저 중에서도 굳이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실천하는 사람을 꼽는다면 SK네트웍스 최신원 회장이 유일하다. 그는 이미 알려진 대로 타고난 금수저였다. 그의 선친이 SK그룹의 전신인 선경그룹 최종건 창업주이기 때문이다. 젊은 시절 재벌 아들답지 않게 해병대에 지원입대해 배가 고파 라면을 훔쳐먹다가 고참병에게 들켜 눈에 불이 나도록 얻어맞는 등 피눈물나는 군복무를 마쳤다. 이후 평복 해병으로 돌아간 그는 탄광촌을 떠돌며 어려운 사람들을 돕는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실천했다.

40대 중반 SK그룹 임원으로 한창 잘나갈 때 외환위기가 닥치자 직함도 밝히지 않고 ‘을지로 최신환’이란 이름으로 사회복지공동모금회와 기아대책본부에 꾸준히 거액을 입금했다. 걱정없이 살아가던 사람들이 하루아침에 직장을 잃고 노숙자로 내몰리던 시기였다. 그는 지난 연말에도 탈북민들을 위해 2억 원을 기부하고 공동모금회에 또 1억원을 입금했다.

지금까지 누적 액수는 모두 43억원. 앞으로 공동모금회에 기부할 목표는 100억원이라고 했다. 새해엔 힘겹게 살아가는 흙수저들에게 꿈과 희망으로 다가갈 금수저들의 복음이 노블레스 오블리주로 이어지길 기대한다.

대구미술협회 사무처장·미술학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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