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네 토크] ‘극한직업’ 류승룡

  • 윤용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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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9-02-01   |  발행일 2019-02-01 제43면   |  수정 2019-02-01
“마약반 5인방이 만드는 ‘웃음협동조합’…감독 특유의‘말맛’제대로 먹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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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웃음 협동조합’이 만들어내는 ‘코믹 쿡’이다.” ‘극한직업’에 대한 류승룡의 비유가 재밌다. 그의 말처럼 ‘극한직업’은 갖가지 재료가 서로 어우러져 완성된 별식을 대한 느낌이다. 산해진미가 가득한 일류 한정식의 고급스러움보다는 동네 맛집 고수가 내놓은 서민적인 요리에 가깝지만 오감을 자극하는 감칠맛이 시종 식욕을 자극한다. 류승룡 역시 “처음 시나리오를 받았을 때부터 킥킥거리며 재미있게 봤다. 내가 하고 싶고, 잘 할 수 있을 것 같았다”며 만족감을 표했다. ‘극한직업’은 범죄조직 소탕을 위해 마약반 5인방이 위장창업한 치킨집이 일약 맛집으로 입소문을 타게 되면서 벌어지는 좌충우돌을 그렸다. ‘스물’ ‘바람 바람 바람’에 이은 이병헌 감독 특유의 촌철살인 대사를 재료삼아 이제껏 누구도 맛본 적 없는 진기한 요리를 완성시킨 류승룡은 해체위기의 마약반을 진두지휘하는 고반장 역이다. 팀원도 챙겨야 하고, 가족도 챙겨야 하고, 본인의 자리도 챙겨야 하기에 늘 바쁘고 고달픈 소시민 가장이자 리더의 모습이다. 게다가 적정선의 유머까지 곁들여야 하는 결코 녹록지 않은 캐릭터다. 하지만 코믹과 드라마를 자유자재로 넘나들었던 대체불가의 배우 류승룡은 “이를 담아낼 배우는 류승룡밖에 없다”는 이병헌 감독의 신뢰와 기대를 저버리지 않았다.

“처음부터 끝까지 계속 이렇게 재미있고 행복하게 찍을 수 있을까 싶을 만큼 만족스러웠던 현장이었다”는 그는 캐릭터와 최적의 싱크로율을 자랑하며 누구도 따라할 수 없는 류승룡표 생활 연기를 유감없이 펼쳤다. ‘희극지왕’의 귀환이 더없이 반가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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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장의 반응이 뜨겁다.

“감사하고 고맙다. ‘극한직업’은 이병헌 감독님의 설계가 워낙 탄탄했다. 덕분에 우리는 시나리오대로 연기하면 됐는데, 마약반 5인방의 케미와 촘촘한 코믹망, 감독님 특유의 말맛이 잘 어우러졌다고 생각한다. ‘웃기고 재밌는 영화를 만들겠다’는 감독님의 의도가 제대로 먹혔다는 점에서 기쁘고 반갑다.”

▶코미디에 최적화된 당신과 이병헌 감독의 시너지가 궁금했던 작품이다. 현장에서의 호흡은 어땠나.

“처음에는 ‘내 연기가 마음에 들지 않은 건가’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아무런 말씀이 없었다. 하도 궁금해서 ‘나 지금 잘하고 있는 겁니까’라고 물어봤더니 그제서야 ‘너무 잘하고 계세요’라고 말해주었다. 비로소 안심했다.(웃음) 감독님은 이미 촬영에 들어가기 전부터 배우들 각각의 성향과 연기패턴, 캐릭터 접근까지 모든 것을 다 꿰뚫고 준비해 놓은 상태였다. 때문에 현장에선 일사천리로 촬영이 진행됐다. 그래도 뭔가 아쉬워 소소한 애드리브를 양념격으로 구사했다. 아주 조금.”(웃음)

▶‘류승룡표 코미디’를 보여줄 수 있다는 점에서도 반갑게 마주했을 것 같다.

“정말 반가웠다. 다양한 장르가 있고 다양한 캐릭터가 있지만 이번처럼 한 작품에서 많은 것을 보여줄 수 있는 기회는 드물다. 고반장은 공처가이면서 좋은 아빠, 또 책임감 있는 직장상사로서 되게 열심히 사는 인물이다. 형사 캐릭터에 으레 따라붙는 선굵은 액션과 코믹스러운 모습들까지 보여줄 수 있다는 점에서도 반가웠다. 그럴수록 스스로에게 다짐한 건 절대 혼자 튀지 말아야겠다는 점이었다. 이 작품은 마약반 5인방이 한 몸처럼 움직여야 제대로 된 결과물을 도출해낼 수 있다. 내가 ‘웃음 협동조합’이라고 명명한 이유이기도 한데 배우들 모두 그 점을 인지하고 공감했다. 간혹 힘들어 보이는 팀원이 있으면 누가 먼저라 할 것 없이 힘과 용기를 북돋워 주었다. 이 모든 게 처음부터 끝까지 유기적으로 잘 이루어졌다.”

▶배우와 캐릭터의 싱크로율이 유난히 좋았다. 반장으로서 팀원들의 매력을 하나씩 꼽는다면.

“개인적으로는 이하늬씨가 칭찬을 많이 받았으면 한다. 하늬씨는 모든 현장에서 리더 역할을 하며 배우들을 편안하게 이끌었다. 이병헌 감독이 ‘무결점이 결점인 배우’라고 말했을 정도다. 외모도 예쁘지만 예의가 바르고 열심히 하려는 열정과 노력, 진심이 많이 느껴졌다. (이)동휘씨는 가벼움과 진지함의 중심을 감각적으로 너무 잘 잡아 주었고, (진)선규씨는 ‘이렇게 착할 수 있을까’ 싶을 정도로 착한 친구다. 경직돼 있는 현장 분위기를 풀어주는 역할을 했다. 또 잘생김을 담당한 공명씨는 지치고 나태해질 수 있는 순간에 신선한 똘끼로 계속 우리를 자극했다. 이처럼 누구 하나 도드라지거나 뒤처진 사람 없이 출연진 모두가 만족하고 행복하고 즐거웠던 현장이었다.”


“시나리오 받을 때부터 킥킥거리며 보는 재미
동네 맛집 고수가 만드는 식욕 자극 별식 느낌
공처가이자 좋은 아빠, 책임감 있는 상사 캐릭터
연기하며 절대 혼자 튀지 말아야겠다고 생각
현장 편안하게 이끈 배우 이하늬 칭찬하고 싶어”

“어떤 작품이든지 흥행 예상하고 선택하진 않아
신선함과 마음 움직이는 무언가 느껴지면 결정
배우들 모두 취향 비슷, 술 대신 차마시며 수다
드라마 일부러 피하진 않지만 긴호흡 장르 선호
현장가면 오히려 충전, 동료와 함께 하는게 행복”



▶배우 류승룡의 매력이라면 진지함 속에서 ‘툭’ 건네는 유머인데 특히 이 작품에서 극대화된 것 같다.

“이병헌 감독 덕이다. 모든 영화는 감독의 예술이라는 말처럼 배우보다는 감독의 색깔이 드러나게 되는데 ‘극한직업’ 역시 이병헌 감독의 색깔이 짙다. 그 분이 평소에는 포커페이스에 가깝다. 그러다가 아무렇지 않게 툭툭 던지는 한마디 한마디가 되게 유머러스하고 기발하다. 그런 자신의 장기와 노하우를 고반장 캐릭터에 많이 녹여냈다. 나를 세밀히 관찰하고 인수분해해 배우 류승룡이 잘할 수 있는 부분을 최적화시켰고, 내가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부분까지 채워주었다. 너무 감사했다.”

▶전작 ‘염력’ ‘7년의 밤’의 흥행참패를 보상받는 느낌이었을 것 같다.

“어떤 작품이든 흥행 결과를 예상하고 선택을 하진 않는다. 사실 결과를 예상한다고 해도 그렇게 되는 경우는 많지 않다. 그보다는 처음 시나리오를 읽었을 때의 신선함이나 내 마음을 움직이는 뭔가가 있을 때 마음이 간다. 작품도 다 자기 짝이 있는 것 같다. 이번의 경우는 정말 모든 것에서 궁합이 잘 맞았다. 이야기에서 느껴지는 삶의 무게라든지, 직장과 가정에서 권위적이지 않은 모습이 인간 류승룡과도 많이 닮아 있었다. 녹록지 않은 현실이지만 그럼에도 유쾌함과 코믹함을 잃지 않은 점이 좋았고 리더로서의 멋있음, 여유로움까지 녹아 있어 매력적이었다. 굳이 나에 대한 보상이라면 작업과정에서의 만족감이라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오래 전 술과 담배를 끊은 것으로 알고 있다. 촬영이 끝날 때마다 어떻게 시간을 보냈나.

“술을 안 먹어도 할 건 많다. 그런데 이번엔 감독님을 제외하고는 배우들 모두 술을 좋아하지 않았다. 모이면 술 대신 차를 마시면서 하루 종일 수다를 떨었다. 또 촬영장 주변의 맛집을 찾아 다닌다거나 시간 여유가 있을 때는 주변 관광지를 둘러봤다. 다들 운동을 좋아해서 같이 모여 운동하는 재미도 쏠쏠했다. 이처럼 취향이 비슷하기가 쉽지 않은데 신기하게도 우린 다 잘 맞았다. 언론배급시사회가 끝나고 오랜만에 다 모였을 때도 이자카야에서 술 대신 따뜻한 차를 마시면서 밤 늦도록 얘기를 나눴다.”

▶지난달 25일 넷플릭스를 통해 ‘킹덤’이 방영됐다. 전세계 가입자들을 대상으로 한 작품이라는 점에서 또 다른 기회가 될 수도 있을 것 같다.

“전세계 1억3천900만명의 가입자를 둔 넷플릭스에서 방영이 되는 것이니 기대감이 없을 수 없다. 물론 인생은 계획한 대로 되는 건 아니지만 나름 좋은 기회가 됐으면 하는 바람이 있다. 하지만 그보다는 많은 분들이 고생해서 만든 작품이고 우리나라의 역사와 문화를 세계인들에게 제대로 알려서 그들이 열광하고 좋아하고 관심을 갖는다면 그것만으로도 더할 나위 없을 것 같다. 그래서 올해는 어떤 인생이 펼쳐질지 나 스스로도 기대된다.”

▶2010년 ‘개인의 취향’ 이후 줄곧 영화에만 출연했다. 언제쯤 TV 시청자들과도 만남을 가질 예정인가.

“일부러 드라마를 기피하는 건 아니다. 다만 아직 영화 장르에 대한 탐구와 호기심이 남아 있다. 솔직히 드라마는 순발력을 굉장히 요구하는데 나는 그게 좀 부족한 편이다. 오랫동안 연극 무대에서 활동을 해왔기 때문인지 아직 긴호흡의 장르가 편하다. 그나마 영화는 연극과 닮은 점이 많아서 선호하는 편이다. 결론적으로 말하면 내가 아직 부족한 게 많다. 그래서 드라마에 출연하는 분들이 존경스럽다. ‘킹덤’은 영화처럼 긴 호흡으로 찍었기 때문에 별 어려움은 없었지만 계기가 된다면 드라마에도 출연하고 싶다.”

▶그간 다양한 작품과 캐릭터를 보여줬는데 혹시 욕심이 나는 역할이 있나.

“아직 만나보지 못한 캐릭터들이 많다. 어떤 역할을 하고 싶다고 욕심을 낼 필요가 없는 게, 내가 생각했던 것 이상의 기발한 캐릭터들이 나를 찾아왔다. 변발한 ‘최종병기 활’의 만주족 장수 쥬신타나 ‘명량’의 일본장수 구루지마, ‘7번방의 선물’의 6살 지능 용구 등은 내가 한 번도 생각하지 못했던 캐릭터들이다. 그런 역할들은 내가 하고 싶다고 맘대로 할 수 있는 게 아니다. 때문에 다음엔 어떤 작품이 나를 기다리고 있을지 항상 설렌다. 나만 잘하고 있으면 되는 거다.”

▶나만 잘하고 있으면 된다는 건 여전히 연기적 긴장감과 부담감이 있다는 얘기인가.

“그렇다. 배우에게 긴장감과 부담감은 반드시 필요하고 당연한 거라고 생각한다. 부담감을 순화시키면 책임감이라고 할 수 있는데 그게 없으면 매너리즘에 빠질 수 있고 자칫 정신줄을 놓게 된다. 여전히 중요한 촬영이 있을 때는 긴장감과 부담감 때문에 며칠 전부터 잠이 오질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연기하고 있는 지금 이 순간이 너무 소중하고 감사하다.”

▶행복하다고 느낄 때는 언제인가.

“현장에 있을 때다. 휴대폰을 충전하듯 현장에 가면 저절로 충전이 된다. 그게 신기하다. 현장에 가면 편안하고 동료 배우들을 만날 수 있으니 반갑고 신난다. 그리고 그들과 함께 고민하고 해답을 찾아가는 과정에서 결과물이 하나씩 만들어질 때 느껴지는 성취감과 희열이 너무 좋다. 아무리 생각해도 배우는 내 천직인 것 같다.”

글=윤용섭기자 yys@yeongnam.com
사진제공=CJ엔터테인먼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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