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반도 평화시대, 대구경북 프로젝트 .6] 개방 준비된 북한 경제

  • 박종문 윤관식
  • |
  • 입력 2019-02-12   |  발행일 2019-02-12 제8면   |  수정 2019-02-20
北성장축 ‘경제개발구’ 추진동력 상실…제재 해제돼야 투자 기대
20190212
경의선도로 남북출입사무소 내에 있는 개성공업지원재단 사무실 입구에는 서울과 개성의 시간을 알리는 전자시계가 걸려 있다. 원래 북한이 30분 늦었으나 지난해 4·27 판문점 남북정상회담 후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남북시각을 맞추자고 해 서울 표준시로 통일했다. 윤관식기자 yks@yeongnam.com
20190212
지난해 11월 새단장을 마친 도라산 전망대 전경. 남북 간 상호비방 금지 및 GP 파괴 후 관광객이 크게 늘고 있다. 윤관식기자 yks@yeongnam.com

북한이 국제사회의 엄청난 압박에도 굴하지 않고 핵무력을 완성한 이유는 무엇일까. 북한주민의 삶이 어려운 현실에도 불구하고 국가자원을 몽땅 핵개발에 쏟아 넣는 이유는 어디에 있을까. 김정은 정권은 2013년 3월31일 당 중앙위원회 전원회의 결정을 통해 ‘경제건설 및 핵무력 병진노선’을 경제정책의 기조로 채택했다. 그리고 2018년 4월20일 당 중앙위원회 전원회의에서는 ‘경제·핵 병진추진’의 완성을 선언하고 새로운 전략 노선을 채택했다. 즉 핵무력이 완성된 만큼 경제건설 총력 집중을 선언한 것이다. 이제 김정은 국무위원장 책상 앞에는 ‘경제건설’, 즉 인민을 잘 먹고 잘살게 하는 목표가 남아 있는 것이다. 핵을 지렛대로 인민을 잘살게 하기 위한 담대한 도전에 나선 것이 지금의 북미 및 남북미 대화 국면이다.

北 80년대 중반부터 장마당 허용
北中 접경지대 통상구 개방 등
자본주의 시장경제체제로 변화

김정은 집권후 경제활성화 노력
온라인 쇼핑몰·대형마트 등 건립

北 경제 개방 정책 추진하면서
특구·개발구 27개 지정됐지만
핵실험으로 국제사회 외면받아
“핵 지렛대로 인민 잘살게 하자”
남·북·미 대화국면 예의 주시

◆사회주의 소유제도 변화

북한 경제체제는 사회주의 소유제도에 토대를 둔 계획경제체제다. 북한 헌법에는 국가와 사회협동단체(협동농장 등)가 생산수단을 소유한다고 명시돼 있다. 국가소유는 영토 내 모든 자원과 철도, 항공, 운수, 체신, 공장, 기업, 항만, 은행 등 제한이 없다.

그러나 1990년대 이후 국가계획경제가 원활하게 작동하지 않고 시장화 현상이 확대되기 시작하면서 북한은 1998년 헌법을 개정했다. 이후 사회협동단체와 개인 소유 범위를 부분적으로 확대해 오고 있다. 경제활동을 통해 얻은 수익의 개인 소유 및 상속을 인정했다. 개인토지 경작물, 장사를 통해 얻은 수입을 개인 이 소유하도록 한 것이다. 이로 인해 축적된 개인자본이 가동 중단된 공장이나 기업, 상업기관에 투자돼 사실상 개인이 소유하는 단계로까지 발전했다. 그리고 제도적으로는 주택과 같은 부동산의 사적 소유가 불가능하지만 당국 묵인 하에 개인 간 거래되고 있다고 한다. 북한 주민은 소토지, 살림집, 매대를 3대 재산권으로 인식하고 있다.

◆구소련과 중국에 치우친 대외무역

김일성시대부터 ‘자립적 민족경제 건설 노선’을 세운 북한은 대외 경제관계를 최소한의 수준으로 유지하는 자력갱생 발전을 추구했다. 냉전시대 북한의 대외경제 의존도는 미미한 수준으로 1990년 42억달러가 대외무역 최대 규모였다. 그러나 구소련 해체와 사회주의 경제권 몰락 후 북한 대외무역은 1998년에 14억4천만달러까지 추락했다. 국제경제체제가 시장경제체제로 단일화되면서 북한은 대외무역이 축소되고 외화난에 시달리게 됐다.

그럼에도 2000년대 들어 북한 대외무역은 회생의 길을 걷는다. 2000년 19억7천만달러에 불과했던 북한 대외무역은 2005년 30억달러, 2010년 41억7천만달러, 2014년 76억1천만달러로 성장했다. 2016년에는 대북제재에도 불구하고 65억1천만달러를 기록했다. 2011~2016년 연평균 대외무역 규모는 68억1천만달러로 김정일 집권 후반기(2006~2010) 연평균 34억6천달러에 비해 두 배 이상 확대됐다. 그러나 현재 북한의 대외무역 시스템은 큰 문제를 안고 있다. 우선 원자재 중심 수출과 공산품·소비재 그리고 원유같은 국가전략물자 수입이라는 전형적인 후진국형 무역구조를 보이고 있다는 점이다. 때문에 만성적인 무역수지 적자를 나타낸다. 광물자원 수출비중이 55~65%나 된다. 원자재를 수출하고 원유 및 소비재를 수입하는 구조라 무역적자를 벗어날 수 없다. 둘째는 냉전시대 구소련 의존 비중이 높았다면 탈냉전 후에는 급속히 중국으로 쏠렸다는 점이다. 북한의 대중 무역의존도는 2000년 24.4%에서 2016년에는 무려 92.7%로 대외무역 자체가 사실상 북·중 1대 1 구조를 보였다. 북중 국경지대 광물자원을 압록강을 통해 중국으로 수출하고 중국 동북3성으로부터 전략물자 및 생필품을 수입하는 구조다. 향후 지나친 중국의존도가 문제가 될 전망이다.

◆북한에 피어나는 시장경제체제

북한은 1980년대 중반부터 국가계획경제 시스템이 제대로 작동되지 않아 식량배급 등에서 공급부족 현상이 나타나자 부분적으로 개인생산 활동 및 10일장 형태의 농민시장(장마당)을 허용했다. 1990년대 중반부터는 북·중 접경지대 통상구를 개방하고, 국가지정 무역기관 외에 지방기관도 대외무역을 하도록 했다. 그 결과 1990년대 말 북한에는 전국 규모의 유통 네트워크가 형성됐다. 이 같은 시장경제가 급속히 발전하면서 김정일 정권은 국가통제 필요성을 느끼고 2009년 11월30일 화폐개혁을 단행하고 종합시장을 철폐하려 했으나 2개월 만에 실패하고 말았다. 이는 사회주의국가인 북한에서도 더 이상 국가가 시장을 완전히 통제할 수는 없다는 사실을 확인해 준 중대한 사건이다.

김정은은 아버지 김정일의 화폐개혁 실패를 교훈삼아 오히려 시장을 적극 활용해 북한경제를 활성화하고 경제시스템을 강화하는 정책을 펴고 있다. 특히 자본가라 할 수 있는 ‘돈주’와 주민이 보유하고 있는 화폐자산을 경제활력을 불어넣는 데 이용하는 단계로까지 진화했다. 북한 돈주들은 초기 사채놀이에서 벗어나 시외버스·택시·물류 등 지방운수업, 도소매업, 국영상점 투자를 거쳐 최근에는 건설업, 채굴업, 제조업 등 공식 경제 분야까지 투자를 확대하고 있다. 김정은은 집권 이후 돈주들의 역할 확대와 함께 시장기능 확대도 묵인하고 있다. 김정은 위원장은 의류, 신발, 식품 공장 등을 현지 지도하면서 국산화를 강조하는 한편 시장경제 요소인 소비자 선호도를 고려한 상품의 생산과 판매를 독려했다. 또 한편으로는 온라인 쇼핑몰이나 대형상점(마트)을 건립하는 등 자본주의 시장요소를 국영 부분으로 확대하는 노력도 계속하고 있다.

◆대외개방 준비는 됐지만…

사회주의 경제권 붕괴로 불가피하게 시작된 1990년대 북한경제의 개방·개혁정책은 한편으로는 체제위협 요인으로 인식되면서 소위 ‘모기장식 개방’에 머물렀다. ‘문은 열되 모기장은 친다’는 의미다. 1991년 12월 처음으로 함경북도 최북단 항구도시인 나진·선봉을 경제특구로 지정했다. 중계무역, 수출가공, 관광 및 금융중개를 수행하는 국제교류거점으로 육성하기 위해 47억달러 투자유치 계획을 세웠으나 10년 동안 1억2천만달러 유치에 그쳤다. 그마저도 화교자본 70%, 조총련 20%로 중국과 서방국가의 철저한 외면을 받았다. 위기감을 느낀 북한은 2000년대 들어오면서 변방의 경제특구를 확대해 나갔다. 기존 나진·선봉특구에 이어 신의주, 개성, 금강산까지 4대 경제특구를 지정했다. 그러나 신의주특구는 초대 행정관인 화교사업가 양빈이 중국 당국에 체포되면서 무산됐고, 개성과 금강산특구는 순항하다가 남북관계 경색으로 중단된 상태다.

김정은 정권은 기존 4대 경제특구 외에 지방에도 경제개발 특구를 지정했다. 2013년 5월29일 경제개발특구법 제정 후 2016년 12월 말까지 중앙급 경제특구 5개, 중앙급 경제개발구 17개, 지방급 경제개발구 4개 등 모두 26개를 지정했다. 이후 발표한 평양 인근 강남경제특구까지 포함하면 경제특구 및 경제개발구가 27개에 이른다. 김정은시대 경제특구의 특징은 중국식 모델을 따라 경제특구·개발구를 중앙급, 지방급으로 이원화한다는 점이다. 또 경제특구·개발구 지역 밖 북한기업도 새로운 경제특구·개발구에 진출할 수 있고, 경제특구·개발구의 외국자본이 지대 밖의 북한기업과도 연계될 수 있도록 한 것이다. 촘촘한 모기장을 엉성한 모기장으로 바꾼 것이다.

그러나 김정은 정권의 경제개발구 정책은 시행 이후 한 곳도 추진된 적이 없다. 경제개발구 신설 선포 후 핵과 미사일 실험을 진행하면서 국제사회의 외면을 받고 있기 때문이다. 활발한 교류에도 불구하고 중국은 여전히 북한 경제특구 공동개발에 소극적인 자세다. 여기에 더해 북한 내 시장개혁 부진, 개성공단 중단, 전력부족과 열악한 인프라, 낙후된 물류체계, 대북제재 등으로 추진동력이 상실된 상태다. 제재 해제가 돼야 서방국가의 투자를 기대할 수 있다.
박종문기자 kpjm@yeongnam.com

영남일보(www.yeongnam.com),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기획/특집인기뉴스

영남일보TV





영남일보TV

더보기




많이 본 뉴스

  • 최신
  • 주간
  • 월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