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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EO칼럼] 주가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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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9-02-12

권 업 대구테크노파크 원장
2015년 유럽 재정위기로 경기침체가 전 세계로 번지는 가운데 인도 출신 기업인들이 화제가 되었다. 씨티그룹 CEO 비크람 판디트, 구글의 니케시 아로라, 펩시코의 여성 CEO 인드라 누이, 인도 타타그룹의 라탄 타타 등의 활약상이 세계적인 관심을 모았다. 시사주간지 타임지에서는 이를 커버스토리로 다루면서 “인도의 최대 수출품은 CEO”라고 할 정도였다.

왜 하필 세계적인 경기침체기에 인도 출신 기업인들이 주목받고 있을까. 인도 출신 기업인들은 유창한 영어에 다민족, 다종교 국가 특유의 문화적 포용력도 있지만, 무엇보다 그들은 예기치 못한 위기상황에서 신속한 문제해결 능력을 유감없이 발휘해왔기 때문이다. 인도 출신 기업인들은 인력, 자본, 기술 등 뭐 하나 충분치 않은 인도의 열악한 환경에서 살아남은 사람들이다. 명문공과대학 IIT(Indian Institute of Technology) 입학이 개인뿐만 아니라 집안, 심지어 사는 마을 전체의 최대 관심사인 나라다. 워낙 가진 것이 없으니 다른 대안도 마땅치 않아 삼수, 사수, 오수를 하더라도 오로지 IIT만 바라보는 것이다. 경쟁이 얼마나 치열한지는 불문가지다.

인도 농촌 사람들은 농사용으로 자동차가 필요할 때 돈 한 푼 없어도 포기하지 않는다. 주변에 굴러다니는 재료를 끌어 모아 세상에 단 하나밖에 없는, 하지만 자신에게 꼭 필요한 수제품 차를 만드는 것이다. 양수기 모터나 폐차된 낡은 지프의 부품을 이리저리 주워 모아 겨우 움직이게 만든 다음, 차체를 떼어내고 나무판자로 짐칸을 만들고 지붕을 씌우는 식이다. 자동차라기보다는 움직이는 그 무엇에 가깝다. 인도에서는 흔히 볼 수 있는 이런 엉성한 차를 ‘주가드(Jugaad)’라 부른다.

2009년 가격이 69달러에 불과한 초투쿨이란 주가드 개념의 냉장고도 발매되었다. 위에서 열고 닫는 이 냉장고는 컴프레서와 냉매를 사용하지 않는 데다 기존의 냉장고가 200개의 부품을 사용하는데 비해 초투쿨은 10분의 1에 불과한 20개의 부품만 사용한다. 초투쿨이 소비하는 전력량은 기존 냉장고의 절반 수준이며, 고성능 단열재를 사용하므로 전력 공급 없이도 몇 시간 동안 냉장 상태를 유지할 수 있다. 전기가 들어오지 않는 지역에서도 건전지를 사용해서 작동 가능하다.

인도의 타타그룹이 만든 초저가 자동차 ‘타타 나노’는 대표적인 주가드의 시장버전이다. 2009년 출시된 타타 나노는 업계의 통념을 깨고 출시된 단돈 2천400달러짜리 차다. 인도 저소득층의 구매력에 맞춰 파워핸들, 에어컨, 심지어 라디오까지 빼고 부품 대다수를 플라스틱으로 대체하여 볼트 대신 접착제로 조립했다. 타타 나노는 선풍적인 인기를 끌며 출시 전 100만대가 예약판매됐고 2010년 미국 최고 혁신상인 에디슨 어워드 금상을 받았다.

힌두어 주가드는 이제 인도 기업인의 경영철학을 상징하는 용어로, 제한된 자원을 가지고 위기상황에 적응하고 경영상 문제를 신속하게 해결하는 방식을 의미한다. 그들이 회사가 웬만큼 어려워도 끄떡하지 않고 차분하게 대응책을 마련하고 빈틈없이 실행하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던 것이다. 그들이 자라온 인도의 열악한 환경 탓이 큰 듯하다. “사람은 곤경에 부닥쳐 지혜를 짜내고 곤란으로 인해서 지혜를 이룬다(因困成智)”라는 조선시대 문장가 강희맹의 가르침을 기억하자.권 업 대구테크노파크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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