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순진의 사필귀정] 일벌백계 유감

  • 뉴미디어부
  • |
  • 입력 2019-02-13   |  발행일 2019-02-13 제30면   |  수정 2019-02-13
[박순진의 사필귀정] 일벌백계 유감
<대구대 경찰행정학과
교수>

일벌백계는 한 사람을 벌주어 백 사람을 경계한다는 뜻으로, 한 가지 죄에 대해 또는 한 사람에 대해 본보기로 심한 벌을 줌으로써 여러 사람에게 경각심을 불러 일으키는 것을 말한다. 지금은 거의 사라지고 없어진 악습이지만 과거 학교나 군대에서 조직의 규율과 질서를 확고히 다지기 위해 ‘이번 사건은 일벌백계로 다스릴 수밖에 없다’는 식으로 과도한 처벌이 이루어지곤 했다.

일벌백계로 이루어지는 처벌은 ‘시범케이스’라 일컫기도 했다. 시범케이스에 걸리게 되면 잘못을 저지른 당사자는 저지른 잘못에 견주어 몇 배의 가혹한 처벌을 감수해야 했다. 동료들은 까딱하다가는 자신도 가혹한 처벌의 대상이 될지 모른다는 두려움에 떨어야 했다. 시범케이스는 다른 사람의 본보기로 행사되는 것이라서 당사자에게는 부당하고 억울한 일이지만 당시에는 누구라도 항변할 수 없는 분위기에 짓눌려 감내하지 않을 수 없었다. 처벌받은 당사자는 물론이고 처벌을 목격한 대부분의 사람들은 본보기로 자행되는 가혹한 처벌에 대해 정당하게 받아들이지 않았다. 어쩌다 재수 없어 또는 잘못 걸려 억울하게 처벌받았다고 생각하는 일이 더 많았다.

범죄에 대한 처벌의 억제효과를 실증적으로 연구한 학자들에 따르면 범죄를 억제하기 위하여 처벌을 강화하는 것은 일반인의 기대와는 달리 그 효과가 매우 낮거나 명확하게 확인되지 않는다. 처벌을 엄격하게 하는 것보다 죄를 저지르면 반드시 체포하고 처벌하느냐 여부, 즉 처벌의 엄격성보다 확실성이 더 효과가 있는 것으로 밝혀졌다. 일벌백계식의 엄격한 처벌이 능사는 아니다. 일벌백계는 오히려 처벌의 정당성을 의심하게 만들 뿐이다. 죄를 지으면 반드시 처벌하되 죄에 상응하는 적정 수준의 처벌을 부과하는 것이 합리적이다.

학교에서부터 군대와 회사에 이르기까지 공공연하게 행해지던 이런 잘못된 악습은 사회가 민주화되면서 점차 자취를 감춘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최근 몇몇 특출한 사건이 주목받으면서 엄중한 처벌을 요구하는 여론이 형성되는 과정을 보고 있자니 우리 사회가 여전히 일벌백계를 선호하는 지난 시대의 구습을 벗어나지 못한 것은 아닌가 하는 의심을 문득 해보게 된다.

일반시민은 주위에서 일어난 일에 대해 그 전말을 소상하게 알기 어렵다. 하물며 직접 겪지 않은데다 저간의 사정이 잘 드러나지 않은 사건은 그 실상을 파악하기 쉽지 않다. 그럼에도 사이버 전사들은 넘치는 증오심으로 일벌백계의 강력한 처벌을 주장한다. 엄중한 처벌을 요구하는 여론을 보자면 언론매체에 보도된 기사나 인터넷과 SNS에 올라온 게시물 등에서 얻은 단편적이고 불완전한 정보에 휩쓸리고 선입견에 사로잡혀 사정을 가리지 않는다.

최근 유력 정치인과 법조인, 고위 공무원의 범죄와 재판을 둘러싸고도 논란이 거듭되고 있다. 지위가 높을수록 더 높은 도덕성이 요구되고 비리에 대해서는 더욱 엄격한 잣대가 필요하다. 하지만 드러난 일에 대해 일벌백계의 처벌을 요구하는 것이 온당한지는 생각해볼 일이다. 다른 이들에게는 어쩌다 유야무야된 일도 적지 않고 드러난 일 못지않게 드러나지 않은 일도 많을 것이다. 겉으로 불거진 일에다가 옴팡 뒤집어씌우는 것이 요즈음의 세태라지만, 요행으로 걸리지 않았다고 관행으로 치부하고 은근슬쩍 넘어가는 일 또한 없어야겠다.

영남일보(www.yeongnam.com),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오피니언인기뉴스

영남일보TV





영남일보TV

더보기




많이 본 뉴스

  • 최신
  • 주간
  • 월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