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은경의 영화의 심장소리] ‘파운더’ (존 리 행콕 감독·2016·미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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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9-02-15   |  발행일 2019-02-15 제42면   |  수정 2019-03-20
맥도날드 창립의 숨은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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널리 알려진 이야기 속에는 우리가 미처 몰랐던 숨은 이야기들이 많이 있다. 영화 ‘파운더 The Founder’에는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패스트푸드점인 ‘맥도날드’의 창립 과정에 얽힌, 숨은 이야기가 담겨 있다. 1954년 믹서기 판매원인 52세의 레이 크록은 놀랄 만큼 획기적인 신개념의 식당과 마주친다. 맥도날드 형제가 개발한 독창적인 스피디 시스템 식당이었다. 새 시대를 열 놀라운 사업이 될 것을 직감한 레이 크록은 다른 지역에도 똑같은 식당을 열자고 맥도날드 형제를 설득한다. 하지만 사업 확장을 위해서라면 물불을 가리지 않는 레이와 원칙을 내세우는 형제는 사사건건 부딪친다. 그들의 원칙주의에 답답함을 느낀 레이 크록은 스스로 ‘파운더’, 즉 창립자가 되기로 결심하고 맥도날드 형제에게서 벗어날 궁리를 한다. “사업은 서로 먹고 먹히는 전쟁”이라 말하던 그는 마침내 교묘한 방법으로 맥도날드 형제를 따돌리고 ‘파운더’가 된다.

재미있는 사실은 대부분의 사람들이 레이 크록을 맥도날드의 창립자로 알고 있으며, 레이 크록 역의 배우 마이클 키튼조차도 맥도날드 형제의 존재를 몰랐다고 고백한 것이다. 맥도날드에서도 1955년이 창립자 레이 크록이 일리노이 주에 1호점을 세운 해라고 말한다. 하지만 영화가 들려주는 실제 이야기는 다르다. 맥도날드의 진짜 1호점은 형제가 캘리포니아 샌버너디노에 세운 것이었다. 시스템을 만든 것은 맥도날드 형제다. 하지만 미국 전역, 나아가 오늘날 세계적인 프랜차이즈로 뻗어가도록 키운 것은 레이 크록이었다. “콜럼버스는 미국을 발견했고, 제퍼슨은 미국을 건국했고, 레이 크록은 미국을 맥도날드화 했다”라는 말이 있을 정도다. 그의 성공 신화는 많은 기업인이 롤 모델로 삼고 있다. 뿐만 아니라 그는 타임지 선정 20세기 가장 중요한 인물 100인에 선정되기도 했다. 오늘날 창의적이고 혁신적인 식당을 창안한 맥도날드 형제를 기억하는 사람은 거의 없고,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고 사업 확장에 매진한 레이 크록을 ‘파운더’로 기억하고 있을 뿐이다.

영화를 보고나면 어쩐지 씁쓸한 느낌을 지울 수 없게 된다. 오늘날 공식적인 기록들은 레이 크록이 맥도날드 형제에게 270만달러를 주고 모든 권리를 샀다고 기록하고 있다. 그러나 영화에 의하면 270만달러와 함께 수익의 1%를 로열티로 지급하기로 한 구두 계약은 결코 지켜지지 않았다. 구두 계약을 입증하지 못했던 형제는 자신들이 고안한 맥도날드의 상호를 쓸 수도 없었다. 최초의 맥도날드 1호점인 그들의 가게는 ‘빅 엠’이란 이름으로 변경할 수밖에 없었고, 얼마 지나지 않아 맥도날드 이름을 내건 가게 때문에 문을 닫는 뼈아픈 경험을 하게 된다. 바로 이런 사실 때문에 딕 맥도날드의 손자는 “50년 동안 할아버지 이야기가 밝혀지길 기다렸다”고 말했다. “우리는 절대 그를 이길 수 없어”라고 자조 섞인 한탄을 했던 맥도날드 형제로서는 못내 억울한 감이 있었던 것이다.

독창성에서는 누구보다 앞섰으나 가족을 앞세우며 원리 원칙대로 하려던 맥도날드 형제는 변화에 발빠르게 대응하고 공격적으로 사업을 확장하려는 레이 크록을 결코 이길 수 없었다. 이쯤 되면 다윈의 저 유명한 말 “강한 종이 살아남는 것이 아니라, 변화에 적응하는 종이 살아남는다”를 실감하지 않을 수 없다. 그리고 이것은 정치, 경제, 사회 모두에서 확인하게 되는 법칙이기도 하다. 아닌 게 아니라 역사는 철저히 승자의 기록일 뿐이다. 그러나 숨 가쁘게 돌아가는 경쟁사회에서 잠깐 멈추어 생각해본다. 그것이 과연 전부일까. 역사의 기록은 철저히 승자의 편이겠지만, 패자 쪽에도 눈길을 돌리고 그들의 목소리를 들어보는 것이 바로 문화와 예술의 몫이 아닐까 한다. 그래서 우리는 진정한 삶의 의미를 한 번 더 되새기게 되는 것이다. ‘아메리칸 드림’의 성공 신화를 이룬 레이 크록, 영화를 통해 그의 삶을 입체적으로 들여다보며 그가 얻은 것과 잃은 것이 무엇인가를 곰곰 생각해본다. 영화를 보고나면 레이 크록이 창립자로 기록된 1955년이 아니라 진짜 파운더였던 맥도날드 형제의 1948년 샌버너디노 지점을 기억하고 싶어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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