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지영의 마음 톡톡] 영화 ‘말모이’와 소중한 한글

  • 뉴미디어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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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9-02-22   |  발행일 2019-02-22 제39면   |  수정 2019-03-20
정신이자 생명인 우리말과 글
‘배우기 쉽고 과학적인 문자’ 세계가 극찬
외국어 남발, 우리글 독해율 최하위 부작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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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말모이' 한장면

‘말모이’영화를 보러가면서 “말모이 말모이” 중얼거리며 갔는데 집에 오는 길에도 나는 “말모이 말모이”하고 중얼거리고 있었다. 갈 때 느낌과 올 때 느낌이 달랐다. ‘말모이’라는 말이 친근해지고, 말이 모아져 있는 사전의 의미도 풍성해지는 것 같았다. 말이 모이는 곳에 뜻이 모인다는 공동체정신과 사람을 귀히 여기는 우리의 문화가 배어있는 말이라 어감이 좋다.

1940년 일본의 수탈이 극에 달해가던 때 우리의 정신마저 빼앗기 위해 우리의 글을 못 쓰게 하고 말도 못 하게 했다. 이어 강제로 모든 국민에게 창씨개명을 해 일본 이름을 쓰게 했다. 고도화된 식민통치방식인 민족문화말살정책을 편 것이다. 말모이는 그 정점에 달해 있던 1944년의 일이다.

1910년대 편찬 첫 우리말사전 원고 ‘말모이’
일제 민족말살 대항 조선어사전편찬작업
목숨까지 내놓고 지키려 했던 우리말·글
조선어학회 회원들의 활약·애국심에 감동
‘배우기 쉽고 과학적인 문자’ 세계가 극찬
외국어 남발, 우리글 독해율 최하위 부작용


김판수(유해진)는 아들의 학비를 마련하기 위해 류정환(윤계상)의 가방을 노리고 소매치기를 한다. 류정환은 조선어학회 대표였는데 이 사건으로 인해 김판수는 조선어학회와 얽히게 되고 그 과정에서 까막눈 김판수가 한글을 깨쳐간다. 어느 날 구석에 쭈그리고 앉아 ‘운수좋은 날’을 읽고 눈물을 훔치고 있다. 그 장면에 가슴이 뭉클했다. 여기저기서 ‘ㄱㄴㄷㄹㅁㅂ’을 성냥개비로도 쓰고 말놀이도 하는 것을 보면서 아는 것과 모르는 것에 대해 생각해 보았다. 영화는 글을 모를 때의 세상과 글을 익혔을 때의 세상이 달라 보인다는 것을 판수를 통해 보여준다. 글을 익힌 판수가 깨달아 앎으로 인해 다른 세상을 경험하고 사유하게 된다.

극장 입구에서 판수는 단체 관람을 온 학생들 틈에서 아들을 보고 반가워 “덕진아!”하고 부른다. 선생은 빨리 들어가라며 “가네야마”라고 부른다. 판수는 아들 이름 “덕진아 덕진아”를 중얼거리다가 뭔가 변화된 기미를 감지한다. 집으로 오니 순희가 말한다. “아버지 근데 나 이제 김순희 아니고 가네야마래요. 난 김순희가 좋은데.” 딸의 이 말을 듣고 판수는 골똘히 생각에 잠긴다. 마누라 잃고 홀아비로 아들딸 키우며 밑바닥 삶을 살아가던 판수지만 한글을 깨치고 바라보는 시선에 변화가 온 것이다. 정환이 이끄는 조선어학회를 돕겠다고 나선다. 영화가 끝나고 자막에 촬영기록을 한글로 표기한 점도 감동과 여운을 안겨주었다.

‘말모이’는 우리말의 소중함을 일깨워주는 영화, 우리말에 긍지를 느끼게 하는 영화, 우리말이 어떻게 지켜져 왔는지를 보여주는 영화, 말이란 그 나라의 정신과 얼이 스며들어 있다는 것을 깨닫게 하는 영화다. 또 우리말을 지키고자 했던 조선어학회 회원들의 애국심이 잘 표출된 영화이고 우리가 쓰는 표준어를 정하기 위해 전국의 사투리를 다 모아 공청회를 열어 결정하는 과정을 보여주는 영화다. 우리가 몰랐던 것을 잘 표현해준 이 영화는 말 한마디보다 영상의 힘이 얼마나 큰지를 실감나게 한다.

말모이는 1910년대 편찬된 최초의 현대적 우리말사전 원고다. 조선광문회에서 주시경 선생과 그의 제자 등 언어학자들이 참여해 편찬했으나 출판에는 이르지 못했다. 당시 제작된 초기 원고는 이후 조선어학연구회로 넘어가 조선어 사전의 밑바탕이 됐다. 말모이의 원고를 받은 조선어사전편찬회는 1929년부터 사전 편찬 작업을 시작했다. 일제의 민족 말살정책에 대항하여 우리말을 지키기 위해 한글 학자 108명이 은밀하고도 대대적인 말모이 작전과 학자들의 연구를 거쳐 1942년 초고가 완성됐다. 하지만 인쇄를 하기 직전에 일제의 극심한 탄압으로 사람들이 옥에 갇히고 원고까지 빼앗기고 말았다. 이후, 1945년 광복 직후 원고가 서울역에서 발견되고, 이를 바탕으로 1947년 처음 ‘조선 말 큰사전’ 1권이 나왔다. 그리고 조선어학회는 한글학회로 이름을 바꾸었고, 사전도 ‘큰사전’으로 이름을 바꿔 1957년까지 6권이 모두 나왔다.

세종대왕이 창제한 우리 한글에 대해 네덜란드 언어학자 보스(F.vos)는 “한글은 세계에서 가장 훌륭한 문자”라고 평하고 있으며 영국의 샘슨(G.sampson) 교수도 “한글은 발성기관의 소리되는 모습을 따라 체계적으로 창제된 과학적인 문자일 뿐 아니라 문자 자체가 소리의 특징을 반영하고 있다”고 극찬했다. 배우기 쉽고 익히기 쉬운 우리말인데 놀랍게도 우리나라는 문자독해율이 낮다고 한다.

한글을 읽는 능력만으로는 세계에서 가장 낮은 문맹률을 보이지만 자기나라 말로 만든 책을 이해하는 능력은 25% 정도라고 한다. 75%가 한국말로 된 책을 읽어도 뜻을 모르고 이해가 부족해 독해율이 저조하다. 대학을 졸업한 고학력자들의 문서독해능력을 비교하는데, 조사대상인 22개국 중에서 우리나라 점수가 최하위였다. 국민에게 한자를 가르치지 않아서 그렇고 외국어를 많이 남발하기에 그 뜻을 정확히 알지 못해서 그렇다고 한다. 낫 놓고 기역(ㄱ)자도 모르는 한글 문맹이 아니라 곡괭이 놓고 고무래 정(丁)자도 모르는 한문 문맹이라는 우스갯소리도 생겨났다.

지난해 수능시험 국어문제가 어려웠다고 법석이기에 문제를 찾아 읽어보았다. 긴 지문을 읽는데 우리나라 사람이 쓴 글인지 외국인이 쓴 글을 번역해 놓은 것인지 구분이 안 되었다. 문장이 비비 꼬여 있었다. 이런 글을 배우고 익히는 학생들이 어떻게 좋은 글을 쓸 것이며, 문맥을 정확히 이해하겠나 싶었다. 아무 힘 없는 나는 가슴만 답답하다. 우리말은 우리 혼이 담겨 있는 생명의 언어로 살아 숨 쉬는 언어다. 우리 한글을 죽은 말로 만들어서야 되겠는가. 전 세계에 3천개의 언어가 있으며 그중 사전을 가지고 있는 말은 20개밖에 안된다. 우리는 우리말 사전을 가지고 있다. 세계에서 인정하는 우리말에 자긍심을 가져야 한다. 글을 쓰는 사람으로서 우리말이 없었다면 지금 어느 나라 언어로 글을 쓰고 있을까 생각하니 지금 쓰고 있는 우리말이 참으로 귀하다. 정환이 판수에게 사과하러 가서 “민들레가 왜 민들레인 줄 아십니까? 문 주변에 흐드러지게 많이 피는 꽃이라 해서 문들레, 그래서 민들레가 되었다 합니다”는 대사는 가슴을 먹먹하게 했다. 우리의 정신과 얼과 말맛이 스며있어서다. 우리의 말과 얼을 지키려고 피 흘리고 목숨을 내놓은 한글학자들에게 고맙고 감사하다. 다가오는 3·1절 100주년을 맞아 그들의 우리글 사랑이 더욱 뜻 깊다. 시인·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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