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춘호 기자의 푸드 블로그] 봄꽃과 영춘탕 이야기

  • 이춘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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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9-03-01   |  발행일 2019-03-01 제41면   |  수정 2019-03-01
花사한 봄 메신저…남해서 올라와 입맛 깨우는 도다리쑥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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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월 초 대구수목원에서 맨 먼저 봄을 알린 복수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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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해안 쑥은 크게 두 종류. 맨 먼저 땅을 뚫고 나오는 게 해쑥이다. 뒤에 마른 가지에서 피어나는 게 새쑥. 사진은 매물도에서 캐온 해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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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포·나주 등 서남해안권에서는 경남 남해안권과 달리 홍어 내장, 보리싹, 된장 등을 풀어 만든 보리싹 홍어애국으로 봄을 맞이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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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월 중순 남해 매물도에서 캐온 해쑥으로 통영의 대표적 요리 연구가 이상희씨가 끓여낸 올해 첫 도다리쑥국. <이상희 제공>


영춘탕(迎春湯), 혹은 신춘심기일전탕(新春心機一轉湯). 같은 의미겠지만 생각만 해도 허리를 곧추세워주고 정신을 번쩍 들게 하는 절식이다. 그 탕 옆에 신춘반(新春飯), 신춘주(新春酒), 신춘병(新春餠), 신춘채(新春菜) 등이 에워싸면 더 그럴싸할 것이다. 그 시절에는 음력(陰曆)의 기승전결에 밑줄을 긋고 살았다. 농사는 생명의 근본이고 그 농사의 얼개는 음력 24절기 속에서만 갈무리됐기 때문이다.


◆ 제주-수선화, 남도의 섬은 동백세상

심마니에게 가장 먼저 봄을 알려주는 나무는 ‘생강나무’다. 울릉도의 경우 나리분지 고로쇠수액도 봄을 알려준다. 그 수액은 전호, 부지갱이, 명이나물보다 더 먼저 봄을 전해준다.

제주도의 경우는 수선화가 봄의 전령사 구실을 한다. 1980년대까지만 해도 한라산 복수초와 조생종 유채꽃이 전령사였다. 2000년대로 넘어오면서 추사 김정희의 유배지인 서귀포시 대정 추사기념관이 급부상하고 그가 사랑한 봄꽃인 수선화가 투어객까지 몰고 올 정도로 인기를 누리게 된다. 토종 제주수선화는 ‘몰마농꽃’으로 불린다. 육지의 수선화는 홑꽃잎인데 제주도는 겹꽃잎인 게 특징이다. 또 다른 수선화는 육지에서도 흔하게 볼 수 있는 ‘금잔옥대수선화’로 불린다.

아직 남도는 여전히 동백꽃이 봄의 메신저로 활약 중이다. 동백은 한반도의 아랫도리를 붉게 물들인다. 부산 동백섬, 여수 오동도, 통영 욕지도, 거제 지심도, 남해 향일암, 강진 백련사, 해남 대흥사 등 유명 동백 산지가 한 벨트로 묶여진다. 이젠 남도의 모든 섬이 다 동백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동백도 이른 동백과 늦 동백으로 갈라진다. 이른 동백은 얼추 2월 중으로 다 만개한다. 늦 동백은 4월에야 절정이다. 충남 서천군 마량포구 동백정과 전북 고창군 선운사가 그 절정부를 확 움켜쥔다. 마량포구 동백정은 봄 주꾸미축제로도 유명하고 일출과 일몰을 동시에 볼 수 있는 천혜의 포인트다.

물론 제주도도 탄탄한 동백 군락지를 여럿 갖고 있다. 제주 동백꽃은 남도에 비해 꽃잎도 얇고 심플해 하늘거리는 포스다. 분홍에 가까운 붉은 빛이다. 하지만 남도의 동백은 두껍고 검붉다. 대표적인 동백군락지는 서귀포시 안덕면 상창리에 있는 ‘카멜리아힐’, 서귀포시 남원읍 ‘동백마을’, 제주시 조천읍 ‘동백동산’, 서귀포시 남원읍 위미리 ‘애기동백나무군락’ 등이다. 카멜리아힐은 사계절 동백을 볼 수 있는 국제적 동백공원.

◆시인묵객이 노래한 이른 매화 ‘고매’

세월의 기척에 무척 예민했던 선비들. 입동(立冬)에서 대한(大寒)까지 연결된 동절기를 딛고 2월4일 어름에 한해의 출발을 알리는 ‘입춘(立春)’이 발흥된다. 그때 선비들은 벚나무, 목련, 진달래, 산수유 등이 아니라 반드시 매화의 꽃망울을 기준으로 겨울과 봄을 저울질했다. 일반 매화보다 더 이르게 피는 ‘고매(古梅)’가 더 귀하게 대접받는다.

대한~입춘, 매화의 수관은 팽팽하게 불어난다. 선비들은 기상하자마자 그 꽃 앞에 선다. 한해의 새 진기를 흡수하려는 것이다. 지난 겨울 묵정밭이 된 자신의 눅눅한 몸을 정갈하게 필터링하기 위해 먼산 보며 기상을 갈무리한다.

훈풍의 결은 부드럽고 온화해진다. 수많은 시인묵객이 이른 봄의 나른한 정조를 노래했다. 그 정조를 가장 리얼하게 품은 게 바로 ‘상춘곡(賞春曲)’이 아닐까. 한국 가사문학의 종조로 불리는 불헌당 정극인. 그는 조선 세조의 왕위찬탈을 보고 낙담한 나머지 고향인 전북 정읍시 칠보면 무성리로 낙향해버린다. 그가 거기서 지은 국내 첫 가사가 바로 상춘곡이다. 거기에 등장하는 두 단어, ‘답청(踏靑)’과 ‘욕기(浴沂)’. 답청이란 ‘들놀이’, 욕기란 ‘물놀이’를 말한다. 상춘곡은 봄을 맞아 환희심을 흥얼거리며 느릿하게 걷는 ‘미음완보(微吟緩步)’하는 선비의 유유자적하고 고고청청한 봄날의 기상을 멋지게 표현한 것이다.

겨울 속의 봄, ‘동중춘(冬中春)’의 흐름을 잡지 못한다면. 그는 헛 공부한 선비다. 가을에서 겨울로 넘어가는 건 몰라도 되지만 겨울에서 봄으로 넘어가는 걸 놓치면 그건 한해 ‘맘농사’를 망치는 수순이라 여겼다.

◆ 대구수목원 봄의 첫 전령사 복수초

언젠가부터 나도 봄의 징조를 하나도 놓치지 않으려고 노력한다. 때가 됐다 싶으면 제주도 한림읍 한림공원과 달서구 대구수목원에 서둘러 전화를 걸어 봄꽃 안부를 묻는다. 한림공원은 이미 1월1일 즈음에 수선화가 피어났고 지난 2월1~28일은 매화축제를 벌였다. 10만여그루의 수선화와 매화가 멋진 앙상블을 울려낸다.

대구수목원은 지난달 3일 맨 먼저 복수초가 눈을 떴다. 음력 12월 섣달에 개화하는 ‘납매(臘梅)’도 그 뒤를 잇는다. 납매는 일반 매화꽃보다 꽃잎이 오동통하게 반들거리는 게 특징이다.

나는 지난달 4일 입춘 즈음에 집 근처 대명9동 한 원룸 앞 화단에 핀, 모르긴 해도 대구 주택가에서 가장 먼저 눈을 뜨는 조생종 매화꽃을 친견한 바가 있다. 그 매화는 일반 농원형 매화에 비하면 꽃잎도 자잘하고 얇아서 더 고혹적이다. 지난달 21일 한 지인이 보내준 봄사진이 있다. 한학자 김홍영씨가 지키고 있는 중구 남산동 문우관 뜰의 목련이 기지개를 켜기 시작했다. 곁에 있는 매화도 이미 가지의 반을 꽃으로 덮고 있었다.


◆ ‘보리싹홍어애국’등 봄식탁 풍성

겨우내 입안은 메주 띄우는 토방처럼 퀴퀴하고 꿉꿉하다. 봄을 맞이할 때는 말갛게 입맛을 교체해야 한다. 예전 입춘 때는 움파, 미나리싹, 무 등 5가지 재료로 만든 ‘입춘오신반(立春五辛飯)’을 절식으로 먹었다. 정월대보름에 등장하는 묵나물과 부럼도 ‘영춘식’이랄 수 있다.

현재 가장 인기를 얻고 있는 영춘탕은 통영~거제권 중심의 ‘도다리쑥국’, 그리고 목포·나주를 축으로 한 ‘보리싹홍어애국’이다. 내륙으로 들어오면 햇미나리가 ‘영춘채’로 사랑받고 있다.

봄맛을 요리로 제대로 표현해 낼 줄 아는 ‘남자 숙수’같은 사내가 통영에 살고 있다. 사진작가 겸 멍게비빔밥 전문 ‘멍게가’ 대표 이상희씨다. 충청도 출신으로 음식을 공부하던 그는 식재료를 찾아 전국을 돌아다니다가 통영의 다양한 식재료에 반해 1980년대말 거기에 정착해버린다. 그는 남해의 식재료를 연구하며 통영 식문화 연대기를 축적해나가고 있다. 특히 이른 봄에는 근처 서호시장으로 가서 그해 첫 해쑥과 도다리로 쑥국을 직접 끓여먹는 걸 낙으로 알고 살아간다. 그는 지난 1월14일 매물도에서 캐온 해쑥을 서호시장 나물좌판에서 사왔다. 그는 그런 동선을 수첩에 다 기록해 놓는다.

그와 남해 도다리와 봄쑥 관련 전화 인터뷰를 했다. 그는 “자신이 통영에 왔을 때만 해도 이 국의 존재감은 그렇게 높지 않았다”고 했다. 통영에서 즐길 수 있는 봄국이 도다리쑥국만 있는 게 아니었기 때문이다. 통영이 봄도다리쑥국의 고장으로 알려진 건 다분히 언론 탓이다. 덕분에 동광식당, 분소식당 등은 줄서서 먹어야 되는 핫플레이스가 돼버렸다. 2015년 남해에서 처음으로 도다리쑥국축제를 열었다. 이제 거제, 삼천포, 사천, 마산, 진해, 남해 등은 물론 내륙까지도 이 국의 영향권에 들고 있다. 웬만한 남해권 횟집은 이무렵 무조건 가게 앞에 도다리쑥국 메뉴판을 내건다. 한 그릇에 1만5천원선.

그는 토박이들이 즐겨 찾는 40여년 역사를 가진 무전동 ‘팔도식당’을 좋아한다. 쑥국과 함께 생미역국, 새끼 돔의 일종인 ‘상사리’, 노란 실뱀장어처럼 보이는 ‘뱅아리’ 등도 통영의 봄식탁을 풍성하게 만드는 어종이다. 삼천포에서는 도다리쑥국과 함께 ‘황칠이쑥국’도 인기다. 황칠이는 ‘삼세기’라는 못생긴 바닷고기를 말하는데 토박이들은 보통 ‘삼식이’라 부른다.

남해 어민들 중에는 봄철에 물메기나 조개에 쑥을 넣어 국을 끓여 먹는 이들도 많다. 아무튼 영춘탕엔 어패류보다 쑥이 주연인 셈이다.

대구도 도다리쑥국 마니아가 점점 많이 생겨나고 있다. 아직 대구에선 이렇다 할만한 고수급 쑥국이 보이지 않는다. 그런데 고령시장 내에 한 집이 있다. 10년 전부터 이 국을 팔기 시작한 고령시장 내 ‘미주식당’. 주말에는 워낙 많은 단골이 몰려 줄을 서야 된다. 유달리 국물이 곰국처럼 뽀얀 게 특징이다.

◆ 남해안 도다리와 해쑥의 궁합

남해안 쑥도 두 종류가 있다. 바닷가 양지쪽, 그 마른 덤불 속에서 땅을 뚫고 올라오는 새 쑥이 바로 ‘해쑥’, 조금 뒤 마른 가지에서 달리는 여린 쑥을 ‘새쑥’이라 분류했다. 이씨만의 분류법인데 나름 일리가 있다. 둘은 맛은 물론 향기에서도 차이가 많이 난다.

해풍이 훈훈해지기 시작하면 남해안의 아낙네들은 일제히 큼직한 바구니나 비닐포대기를 하나씩 들고 한산도, 매물도, 비진도 등 통영 앞바다의 섬들을 부지런히 돌아다닌다. 볕이 잘 드는 언덕에 여기저기 돋아나 있는 쑥을 맘껏 깨기 위해서다. 일반 식당에선 양이 턱없이 부족한 해쑥을 갖고 국을 끓일 수 없다. 거의 새쑥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 2월초부터 새쑥이 범람할 때면 통영 강구안 주변 식당들은 모두 쑥국에 편중된다. 이때만 갑이 쑥, 어패류는 을이 된다.

도다리와 닮은 문치가자미에 대한 온갖 언설이 난무한다. 도다리, 광어, 가자미…. 가자미목 가자밋과와 넙칫과의 가장 중요한 특징 가운데 하나가 바로 눈이 한쪽으로 쏠리는 것이다. 일명 ‘비목(比目)’이다. 배를 바다 바닥에 붙이고 생활하는 습성 때문에 눈이 등에 붙어 있기 때문이다. 과연 봄이 왜 제철일까? 모든 생선들이 산란 전에 가장 영양가가 있기 마련. 도다리의 산란이 가을에서 겨울 사이임을 감안해 볼 때 봄은 살이 차오르는 시기로 실제 가장 맛있을 때는 늦여름부터 가을 사이라고 한다.

2000년대 들어 도다리의 어획량이 급감하면서 이에 대한 수요를 가자미, 특히 많이 잡히는 ‘문치가자미’로 대체한 것이다. 통영 바닥에선 문치가자미를 통상 도다리라 한다.

이춘호기자 leekh@yeongn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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