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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물관을 품은 쌀빵’ 내 삶의 터닝 포인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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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춘호기자
  • 2019-03-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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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人生劇場 소설기법의 인물스토리] 멀티 사업가 전상욱

전상욱 사장은 박물관의 여러 소장품을 보면서 새로운 사업구상을 한다.
지구촌박물관 1층 청라언덕 박물관빵 진열대 전경.
‘처삼촌 벌초’는 왜 대충으로 끝이 났을까. 살면서 늘 그 속담이 의문이었다. ‘친척과 동업은 상극’이란 의미를 담고 있는 건 아닌지 모르겠다. 아무튼 지금 나는 처외삼촌(이동렬)은 물론 나와 세 살 터울인 외삼촌과도 사업을 하고 있다. 친구들은 그런 날 ‘별종’이라고 놀린다.

난 물에 빠진 사람을 보면 일단 뭐부터 도와줄까를 생각한다. 신앙의 힘이라기보다 먹고살기 힘든 ‘현실’한테서 배운 내 나름대로의 교훈이다. 세상이 팍팍하기 때문에 누군가는 어떤자의 절망에 희망으로 개입해줘야 세상이 돌아간다. 그 희망조차 없으면 절망은 단번에 사망으로 지고 만다. 지금 우리 주변엔 그런 안타까운 죽음이 너무 많다. 물질적 풍족이 파생시킨 ‘정신적 빈곤’이 아닌지….

“2년전 전재산 던져 지구촌박물관 연 처외삼촌
운영난에 절벽으로 내몰리고 있다는 딱한 소식
엄청난 문화 연대기 소멸위기 막아야겠다 결심”

화석진열관 같은 1층 베이커리커피숍 리모델링
빛바랜 적벽돌 등 독특한 분위기 ‘시크릿 가든’
벤치가 된 유명 고가의 누마루 앉아 마시는 커피
수호신격 기운 돌사자 ‘박물관사자빵’ 론칭 준비



어느 날 처외삼촌이 곤경에 처해 있다는 소식을 들었다. 2년전 전재산을 던져 대구 중구 계산동에 지구촌박물관을 열었는데 관람객이 너무 없어 가족과 갈등을 빚고 점차 절벽으로 내몰리고 있다는 소식이었다. 솔직히 난 그때까지만 해도 박물관에는 별로 관심이 없었다. 그냥 처외삼촌의 딱한 처지만 돕고 싶었다. 이 박물관에 쌀빵 전문 뷔페를 만들게 될 줄 상상도 못했다. 처외삼촌은 박물관 열정만 대단했지 경영 마인드는 턱없이 부족했다. 이대로 두면 침몰할 것 같았다. 그렇게 되면 한 개인뿐만 아니라 그 소장품이 가진 엄청난 문화적 연대기도 동시에 소멸하고 마는 것. 그건 모두에게 큰 손실이다. 그걸 막고 싶었다.

일단 시대와 소통하는 박물관이 절실했다. 박물관 특유의 육중한 이미지부터 걷어내고 싶었다. 그래서 화석진열관 같은 박물관 1층부터 베이커리커피숍으로 리모델링했다. 쇠를 녹이는 오래된 고로를 테이블로 활용했다. 1층에 딸린 정원은 우리의 자랑이다. 정말 독특한 분위기의 시크릿가든이다. 반들거리는 인공적인 이미지에 길들여진 소시민에겐 순간 절해고도로 유배온 듯한 기분이 들 정도로 고태(古態)와 퇴락미(頹落美)가 푸짐하다. 금이 가고 빛이 바랜 적벽돌의 벽도 그대로 살렸다. 가을엔 은행나무 때문에 호젓한 미학을 더해준다. 벤치가 된 유명 고가의 누마루에 앉아 커피를 마셔보라. 몇 세기 전 일상을 품어볼 수가 있을 것이다. 그 매력 때문인지 거기서 팀미팅 하는 직장인도 늘고 있다.

딱 5천원이다. 그걸 내면 박물관도 보고 빵도 먹고 수다도 떨다 갈 수 있다. 박물관은 맘의 평화, 쌀빵은 몸의 평화를 지켜준다. 난 그렇게 믿는다.

박물관빵시대를 열면서 처외삼촌의 외골수 골동품사랑을 조금씩 이해하게 됐다. 난 이전에 내 친구가 시작했다가 파산시킨 쌀빵 브랜드인 ‘라팡’을 인수해 온라인 판매 시스템으로 전국에 팔고 있다. 다시 그 운영축을 박물관으로 옮겨놓은 것이다. 라팡이 ‘청라언덕 박물관빵’ 시대를 연 것이다. 새로운 빵스토리를 첨가할 것이다. 박물관 4층에 처외삼촌이 분신처럼 여기는, 이 박물관의 수호신격인 돌사자가 하나 있다. 워낙 기운이 좋아 그 사자를 위한 의기양양 ‘박물관사자빵’도 론칭할 것이다. 매일 고개만 숙이고 있는 한국 청년백수들이 박물관 돌사자한테서 천직의 원기를 찾았으면 좋겠다.

나는 47세의 사업가 전상욱. 사람 얼굴을 한 비즈니스모델을 구축해나가고 있다. 커튼·이불업계에선 ‘윈텍스’란 브랜드로 나름 이름을 갖고 있다. 커튼에서 박물관 빵으로 건너온, 나름 파란만장한 내 삶. 그 이야기를 시작하기 전 ‘사자 사나이’인 처외삼촌의 우직한 인생부터 풀어보고 싶다.

영천시 임고면에서 태어난 처외삼촌. 17세가 되던 해 기둥이었던 아버지를 여읜다. 가난한 집안에 더 큰 가난이 덮친다. 그를 챙겨줄 사람은 그 어디에도 없었다. 겨울날의 허기는 더 지독했다. 툭하면 남의 밭에 있는 무로 배고픔을 달랬다. 공부는 아득히 멀어져갔다. 길바닥으로 나설 수밖에 없었다. 빚을 내 어렵사리 삼륜차를 구했다. 고향 선배와 동업했지만 무경험 탓에 이내 빈털터리가 된다. 가난의 기세는 좀처럼 숙질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대구로 왔다. 변변한 직장이 없던 시절이었다. 맨바닥만큼 숭고한 공간은 없었다. 막노동의 나날. 육체의 한계. 하지만 그 한계를 견디면 시간은 더 풍요로 불어났다. 기본기를 다진 뒤 북구 칠성동에 있는 자전거 부속품 제작소인 삼립산업에 취직한다. 하지만 더 견디기 힘든 시련이 닥쳤다. 선반 작업 중 오른쪽 손가락 한 마디가 절단된다. 손가락을 잃었지만 생존의 일념만은 잃지 않았다. 당시 대구는 양계산업의 메카. 변두리에 수많은 부화장, 양계장, 닭시장이 산재해 있었다. 서구 비산동 서부시장에서 계란 도매업을 시작했다. 계란업에서 더 진군했다. 축산업 및 정육사업에 뛰어들었다. 섬유특수 등으로 인해 신흥 부자가 폭증했다. 한우 수요를 겨냥해 ‘예천식육점’을 연다.

그런 즈음 나는 강원도 영월 탄광촌 탄부의 아들로 미래가 가려진 거무튀튀한 일상을 보낸다.

글·사진=이춘호기자 leekh@yeongn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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