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준의 바다인문학] 감태

  • 김수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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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9-03-08   |  발행일 2019-03-08 제38면   |  수정 2019-05-01
봄이 오기전 분주한 갯밭…감태지·무침·국, 개운 하면서 단맛 도는 ‘고향의 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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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뜻 매생이처럼 보이는 감태. 날이 따뜻해지면 안개처럼 증발해버리는 게 특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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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울의 봄을 연상하는 감태밭이 바다의 잔디광장처럼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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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산스러운 갯벌노동이 무엇인지를 잘 보여주는 감태 채취 현장. 어르신의 억센 노동력은 혈육에 대한 그리움에서 발원한다.

매화꽃이 피면, 감태지가 익어간다

전라도에서는 감태김치를 ‘감태지’라고 부른다. 감태지는 동치미처럼 중독성이 있다. 쌉쌀달콤한 감태 맛에 한번 길들여지면 평생 잊지 못한다. 고향의 맛이다. 어머니의 손맛이다. 설 명절에는 말할 것도 없고 늦여름까지 감태를 두고 먹는다. 도시의 달콤한 맛에서 비롯된 더부룩함과 텁텁함을 단번에 정리하는 맛이 감태지다. 정월보름이 지나고 나무에 물이 오르고 매화가 꽃망울을 터뜨릴 때쯤이면 감태지가 정말 맛있다. 보름 잡곡밥에 감태지가 정말 잘 어울리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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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숙성된 ‘감태김치’. 토하젓과 함께 가장 남도스러운 반찬 중 하나다. 아래쪽은 감태라이스.

겨울 뻘밭에 자란 후 봄에 포자 방출
12∼2월 채취…수온 올라가면 사라져
시골식당 운좋게 맛본 삭힌 ‘영감감태’
무안 어디에든 밥상에 올리는 감태지
갯밭 모여든 아낙네 부지런한 손놀림
선명한 청록색 띠고 부드러운 것 좋아
말린후 된장에 숙성, 양념한 감태장아찌
가루·분말 만들어 간식·과자에도 첨가

환경오염 탓 서식지 갯벌 줄어드는 추세
음식 유산 보전 ‘맛의 방주’프로젝트

◆가시파래보다 감태다

감태는 녹조식물 갈파래과 해조류로 ‘가시파래’로도 불린다. 갯벌이 발달하고 조차가 큰 서남해안 갯벌에 많이 자란다. 특히 오염되지 않은 민물이 들어오는 내만이나 강어귀에서 잘 자란다. 길이는 10~30㎝, 긴 것은 수m에 이른다. 가는 통줄기로 되어 있고 곁가지로 이어지면서 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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란다. 겨울에 갯벌이나 나뭇가지, 양식시설에 붙어 자라며 봄이면 포자를 방출하고 날씨가 따뜻하면 감태는 녹아서 사라진다. 그리고 포자는 가을에 생식이 이루어져 다시 겨울에 뻘밭에 붙어 자란다. 갯벌이 발달한 서산과 태안, 무안·신안·장흥·완도 등 서남해안, 경남 사천 연안에 잘 자란다. 부산 신항만 개발 이전에는 낙동강 하구 가덕도 일대에서도 유명했다. 자연산에 의존했지만 최근에는 양식도 이루어지고 있다. 주로 감태를 날것으로 무쳐먹고 굴이나 무와 함께 밑반찬으로 요리하며 과자나 스프 등 가공식품 첨가물로도 사용한다.

감태라는 이름에 익숙하지만 진짜 감태 이름을 가지고 있는 해초는 따로 있다. 제주바다에서 자라는 다시마목 미역과 감태가 주인공이다. 이 감태는 바위에 뿌리를 내리고 바닷속에 숲을 만들어 어류 등 해양생물의 서식지를 제공하는 갈조류 해초다. 제주와 울릉도 바다에서 서식하며 뿌리와 줄기가 있고 잎은 미역과 다시마처럼 넓다. 뻣뻣하고 쓰고 떫은 맛이 난다. 일제강점기 감태에서 요오드를 채취하기 위해 해녀들에게 공출을 하기도 했다. 철분, 칼륨 등 미네랄과 식이섬유인 알긴산과 후코이단 등이 많다. 톳·미역·모자반 등과 비슷한 성분으로 황산화물질이 풍부하다. 제주사람들은 뜯거나 바닷가로 밀려온 감태를 모아 땔감이나 밭에 거름으로 사용하기도 했다. 해중림으로 해양생물들이 알을 낳고 서식하는 생활터전으로 그 가치가 높아 해양생태계 보전을 위해 채취를 금지하고 있다.

◆갯벌의 진객

대나무 가지를 갯벌에 꽂고 김발을 매어 양식하던 시절에 감태는 매생이와 함께 천대받는 ‘잡태’였다. 밭농사로 말하자면 농약을 치거나 손으로 뽑아야 할 잡초에 해당된다. 파래가 섞인 김이 오히려 더 맛이 있는데 소비자들이 반질반질 윤기 있는 깨끗한 김을 원하니 그리 만들어야 했다. 김 양식에 염산이 등장한 것이 어민들 탓만은 아니다. 지금은 파래가 섞인 김을 찾는 사람이 늘었다. 몸에 좋다고 하니 입맛도 바뀐 것이다. 긴 실을 둘둘 감아 내놓아 ‘감태’라 했다지만 씁쓸한 맛 뒤에 따라오는 단맛 때문에 붙였을 가능성이 높다. 12월 초순에 나오는 매생이 처럼 부드럽고 가는 감태를 ‘찰감태’라 한다. 입안에 착 감긴다. 감태의 채취 시기는 12월부터 2월까지다. 날씨가 따뜻해지면 뻣뻣해져 식감도 떨어지고 수온이 올라가면 갯벌에서 사라진다. 손님처럼 잠깐 왔다 사라지는 진객이다. 게다가 물때도 잘 맞아야 채취할 수 있다.

◆진짜 손님은 영감감태

전남 장흥 회진 갯벌에서 감태를 만난 것은 봄비가 부슬부슬 내리는 날이었다. “이것은 약비여. 며칠 있다 오먼 감태가 잔디밭 갔을 것이여. 약비는 보리밭만 좋은 것이 아니여. 감태에도 좋아.”

비옷도 없이 오롯이 비를 맞고 있는 내게 회진포구에 사는 주민이 해준 말이다. 매생이를 보러 왔다가 감태라니. 회진에서 감태를 이렇게 만날 것이라고 생각도 못했다. 회진감태 향을 따라 올 데가 없다는 자랑도 덧붙였다. 그러고 보니 영감감태를 만난 것도 장흥이다. 무안에 이어 감태지를 맛있게 먹어본 곳이 장흥군 대덕읍 대도식당이다. 감태는 육수가 있어야 잘 자란다. 강어귀나 기수역이나 섬마을 앞 갯벌에서 볼 수 있는 것도 이런 생태환경 때문이다.

읍사무소 옆 대도식당. 장어전골로 동네에서는 꽤 알려진 집이다. 장어이야기를 하려는 것이 아니다. 그곳에서 제대로 삭힌 감태 맛을 보았다. 칠월 중순, 장마철로 접어드는 날이었다. 겨울에 갈무리해 보관했다가 담근 감태김치다. 아내와 함께 시골장도 볼 겸 주말나들이에 나섰다. 다른 일로 대덕읍을 방문했다가 들른 시골식당이다. 반찬을 내놓고 보글보글 장어탕이 끓을 때쯤 주인이 들어왔다. 동네 경로당에 식사준비를 해 주고 온다며 기다리게 해서 미안해 한다. 그러면서 감태를 좋아하느냐고 물었다. 아내와 나는 감태를 참 좋아한다. 안주인이 그릇에 담아온 감태지는 제대로 삭았다. 아무에게 내놓지 않는 감태란다. “이게 영감감태요. 영감감태.”

이건 또 뭐람. 그렇게 바닷가를 쏘다녔지만 무안감태, 신안감태, 태안감태 등 지역이름을 붙인 감태는 들어봤지만 영감감태는 처음이다. 눈치챘겠지만 안주인이 영감님 밥상에만 올리는 감태란다. 영감처럼 가까운 단골에게만 주는 감태다. 두 번째 방문에 이런 대접을 받아도 되는지 황송했지만 감태는 정말 입에 딱 달라붙었다.

◆감태지에 길들여진 사람들

정말 감태지를 일상으로 밥상에 올리는 곳은 무안이다. 무안읍, 지도읍, 망운, 해제, 현경, 심지어 바닷가가 아닌 곳에 있는 어느 식당을 가도 감태지가 나온다. 시장에서 천 원짜리 몇 개만 주면 한 그릇 퍼주고 덤을 주는 것이 감태였다. 그만큼 갯벌이 좋고 깨끗하다는 증거다. 겨울에 잠깐 나왔다 사라지기 때문에 부지런하지 않으면 먹기 힘들다.

그 갯벌에서 감태를 매는 어머니들을 만났다. 갯벌이 드러나자 큰 함지박을 든 어머니들이 하나둘 ‘큰솔낭끝’으로 모여들었다. 바람이 찬지라 먼저 도착한 이장댁은 잔솔가지를 모아 불을 붙였다. 갯골을 건너 밀섬으로 가려면 물이 더 빠져야 한다. 건너편이 신안군 압해도다. 함지박에 줄을 매어 허리에 질끈 묶었다. 허리를 굽혀 감태를 매어 함지박에 담는다. 한 걸음 한 걸음 따라가는 것이 힘들다. 오른쪽 발을 빼면 왼쪽 발이 깊이 박히고 왼발을 빼면 오른발이 박힌다. 그런데 어머니들은 뚜벅뚜벅 잘도 간다. 함지박에 감태가 가득하면 망에 담아두고 이어 감태를 맨다. 무안군 망운면 성내리 갯벌 모습이다. 자식들에게 어머니가 만든 감태지를 먹이기 위해서다. 먹으면 얼마나 먹겠는가, 한 보따리 챙겨서 보낼 욕심으로 엄동설한에 갯밭에 나온 것이다. 무안에서 감태작업이 가장 활발한 곳은 성내리 외에 내리와 탄도만 일대 갯벌이다. 채취한 감태는 설이나 정월보름 대목장에 직접 감태를 팔러 나서기도 한다. 완도, 신안 지역에서는 갯벌감태지를 상품화하고 있다.

◆감태는 변신 중

감태는 청록색이 선명하고 만졌을 때 물러지지 않으면서 부드러운 것이 좋다. 갯벌에서 자라기 때문에 채반에 담아 흐르는 물에 조물조물 씻는다. 너무 오래 씻거나 담가두면 쌉쌀하고 달콤한 맛이 사라진다. 가장 손쉬운 요리는 감태김치와 감태무침이다. 감태김치는 장, 참기름, 다진 마늘과 고추를 넣고 무친 다음 통깨를 뿌리면 된다. 사흘 정도 숙성을 시킨 다음 먹는다. 다시마 국물을 넣어 감태국으로 먹기도 한다. 이들 모두 감태지로 불린다. ‘지’는 ‘김치’의 전라도 말이다. 감태무침은 감태에 무를 채 썰어 양념해서 새콤달콤하게 무친다. 싱싱한 굴을 넣기도 한다. 숙성된 감태는 더욱 부드러워지고 개운하면서 단맛이 입안에 남는다. 얼간을 하는 것은 금방 먹기 위해서다.

말린 감태를 된장 속에 박아 두고 숙성시킨 후 양념을 해서 먹는 감태장아찌도 있다. 감태는 굴과 무와 무쳐먹고 전을 부치기도 한다. 감태를 김처럼 가공해서 따뜻한 밥에 싸서 양념장에 찍어 먹기도 한다. 전라도에서는 감태를 이렇게 삭히고 숙성시켜 여름철에도 상에 올린다. 요즘처럼 김치냉장고 등 숙성시설의 도움을 받을 수 있으니 다행이다. 옛날에는 흐물흐물 삭고 녹은 감태를 먹었다. 오래두고 먹는 방법은 역시 ‘마른감태’다. 요즘은 김과 감태를 섞은 ‘감태김’을 상품으로 내놓기도 한다. 겨울에 구입해 냉동시켜 두고 필요할 때 꺼내서 해동한 후 조리를 하면 좋다.

서산에서는 감태김으로 짭짤한 재미를 보고 있다. 감태김은 구우면 줄기나 잎이 너무 가늘어 쉽게 탄다. 참기름이나 들기름을 바르고 가는 갯벌천일염을 살짝 뿌려 먹거나 팬 위에서 살짝 구우면 좋다. 감태국으로 먹거나 수제비, 칼국수 등에도 넣는다. 밀가루 음식은 감태를 넣어 반죽을 해서 조리를 한다. 감태김밥에 감태라이스볼까지도 선보이고 있다. 가루나 분말로 만들어 간식이나 과자에 첨가하기도 한다. 정말 무한 변신 중이다. 식용만 아니라 피부미용으로 감태를 이용하기도 한다. 마른 감태를 가루로 만들거나 물감태를 갈아서 밀가루나 녹말가루와 섞어 피부에 바른다. 피지제거나 보습효과가 뛰어나다.

그런데 개발로 감태서식지인 갯벌이 줄어들고 있다. 남아 있는 곳도 생활폐수와 공장폐수가 연안으로 유입되고 수온상승으로 위태롭다. 겨울밥상이 허전해지고 있다. 국제슬로푸드협회는 감태를 지키고 서식지와 생산자를 보호하기 위해 감태지를 소멸위기의 음식문화유산으로 보전하고 육성하는 프로젝트인 ‘맛의 방주’에 올렸다.

가장 기억에 남는 감태는 무안군 유일한 섬 ‘탄도’로 가는 길에 보았던 감태갯벌이다. 전남도가 추진하는 가고 싶은 섬으로 선정된, 갯벌이 섬을 둘러싸고 있다. 세발낙지 하면 ‘탄도낙지’라 할 만큼 갯벌이 좋다. 봄이 오는 길목 그 갯벌은 온통 감태밭이었다. 추위가 심할수록 감태는 파랗다. 엄동설한에 봄의 전령이 그렇게 바다로 갯벌로 오는가 보다. 어머니의 따뜻한 웃음과 함께.

(광주전남연구원 책임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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