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미서 410년 전 미라 발견…조선 중기 학자 고응척 선생

  • 송종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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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9-03-11 07:23  |  수정 2019-03-11 09:30  |  발행일 2019-03-11 제2면
정경세 선생의 추모글 함께 발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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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월 구미 해평면 금산리 안동고씨 선영에서 발견된 조선 중기 학자이자 시인인 두곡 고응척 선생의 미라 모습. (안동고씨 문중 제공)

구미에서 조선 중기 문인이자 학자인 두곡 고응척 선생(1531∼1605)의 미라가 발견됐다. 10일 서라벌문화재연구원에 따르면 미라는 지난 1월 구미 해평면 금산리 안동고씨 선영에서 묘를 이장하던 중 확인됐다. 미라가 안치된 회곽 안 목관에선 의복·솜이불·베개·버선 등이 나왔다. 아울러 우복 정경세 선생(1563~1633)의 필체로 추정되는 추모글인 ‘만장(挽章)’도 함께 발견됐다.

회곽묘는 석회·세사·황토로 회곽을 만들고 그 안에 목관을 안치하는 전통적 유교 방식이다. 임진왜란 직후 사대부 장례 때 주로 사용됐다. 서라벌문화재연구원측은 “미라를 수습한 뒤 서울대 의과대학에서 시신 옷과 부장품을 벗겨내는 해포 작업을 해왔다”면서 “목관 위 명정을 확인한 결과, 미라가 고응척 선생인 것이 드러났다”고 밝혔다. 이어 “임진왜란 이후 복식사 등 학술 연구를 위해 후손의 동의를 얻어 CT(컴퓨터단층촬영)와 유전자 분석 등을 진행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두곡 고응척 선생은 안동이 본관으로 1549년 사마시에 합격했으나 고향에서 학문 연구에 천착했다. 1561년 문과에 급제해 이듬해 함흥교수로 부임했다. 1563년 사직해 고향(경북 선산)에서 도학을 연구했다. 대학의 여러 편을 시조로 읊어 교훈시로 만드는 등 사상적 체계를 시·노래 등으로 표현했다. 여러 해 동안 ‘대학’을 탐독한 그는 때론 식사까지 거르며 학문에 열중했다. 이를 두고 마을 사람들은 그를 ‘미친 사람’처럼 여겼다고 한다. 1594년 풍기군수·회덕현감 등을 지내다가 다시 사직한 뒤 낙향했다. 1605년 경주 부윤으로 부임했으나 곧 사직했다. 1702년 선산 낙봉서원(洛峯書院)에 제향됐다. 저서로는 ‘두곡집’ ‘대학개정장’이 있다. 시조작품으론 ‘도부’ ‘탄시’ ‘차기음’ ‘두곡우음’ 등이 있다.

경주=송종욱기자 sjw@yeongn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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