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미 어린이집 아동학대 ‘정서적 학대’만 인정 논란

  • 조규덕
  • |
  • 입력 2019-03-11 07:40  |  수정 2019-03-11 07:40  |  발행일 2019-03-11 제9면
검·경 “상처 있어야 신체적 학대”
때리고 밀쳤는데” 학부모들 반발
법원선 사건처리 검찰회부 검토

[구미] 구미에서 어린이집 보육교사들이 신체적 학대행위를 했는데도 검찰·경찰이 ‘정서적 학대’만 인정해 논란이 일고 있다. 학부모 반발로 검찰이 재수사를 결정했지만 논란은 사그라지지 않고 있다.

사건은 지난해 8월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구미 고아읍 한 민간어린이집 보육교사가 아동을 때리고 밀치는 등 신체적 학대를 했다는 신고가 경찰에 접수됐다. 경찰이 해당 어린이집 CCTV 영상 분석 등 수사를 벌인 결과 보육교사 2명이 5개월간 아동 5명에게 76건의 학대행위를 한 것으로 밝혀졌다. CCTV 영상엔 보육교사가 아이를 밀어 얼굴을 방바닥에 부딪히게 하는가 하면 다리로 아이를 짓누르거나 밀어 넘어뜨리는 등 신체적 학대행위가 고스란히 담겨있다. 피해 아동 부모들은 “보육교사가 점심시간에 밥을 억지로 아이 입 속으로 넣다가 토한 음식을 다시 먹였다”면서 “이후 아이들이 공포에 질린 듯 오줌을 싸거나 틱장애 증상까지 보였다”고 호소했다.

당시 경찰은 CCTV 영상 60일치를 분석해 아동들에 대한 보육교사의 유형력 행사와 정서적 학대가 있었음을 확인했다. 그러나 아동에 대한 보육교사의 유형력 행사는 ‘사회통념상 신체학대’엔 해당하지만 ‘상해 및 그에 준하는 정도’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판단했다. 신체에 멍이 들거나 부어오르는 등 손상이 있는 경우에만 법원이 신체적 학대행위를 인정하기 때문이다. 아동복지법 17조의 11개 금지행위 가운데 3호엔 ‘아동 신체에 손상을 주거나 신체 건강 및 발달을 해치는 신체적 학대행위’라고 규정하고 있다. 구미경찰서 관계자는 “유형력의 행사가 신체 손상에까지 이르지는 않더라도 아동 정신건강 및 발달엔 해를 끼치기 충분하다고 판단해 기소의견으로 검찰에 송치했다”고 말했다.

그러나 사건을 넘겨받은 검찰이 형사 사건으로 처리하지 않고 가정법원으로 보내면서 문제가 커졌다. 보육교사의 정서적 학대만 인정해 형량이 훨씬 가벼운 아동보호사건으로 본 것. 검찰이 가해교사 2명을 처벌해 달라며 제시한 의견은 사회봉사와 상담을 받으라는 게 전부였다.

이에 학부모들은 즉각 반발하며 ‘제대로 된 수사’를 촉구했다. 현재 대구가정법원은 이 사건을 아동보호사건으로 처리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고 보고 검찰로 돌려보내는 것을 검토 중이다. 검찰도 당초 ‘혐의없음’으로 기소하지 않았던 어린이집 원장을 기소하기로 결정하는 등 재수사할 방침이다.

한편 전문가들은 이번 논란의 주된 원인이 신체적 학대에 대한 ‘사회통념상 개념’과 ‘아동복지법상 개념’ 간 괴리 때문이라고 지적한다. 학부모들은 “때리고 밀치는 행위를 했으므로 신체적 학대행위에 해당한다”고 주장하는 반면, 검·경은 아동복지법상 신체적 학대행위를 ‘신체에 손상이 있는 경우’에만 적용할 수 있다는 입장을 내세웠다.

이에 대해 우혜정 변호사는 “유형력의 행사만 있고 신체손상이 없으면 법원은 신체적 학대가 아닌 정서적 학대로 판단하는 경향이 있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법원은 신체적 학대와 정서적 학대가 모호하다는 주장에 대해 법관의 해석과 조리로 명확해지니 명확성 원칙에 위반되지 않고 따라서 법률개정도 필요없다는 입장인 것 같다. 헌법재판소에서도 계속 그렇게 판단하고 있다”고 말했다. 시민 조모씨는 “일반인들이 인식하는 신체적 학대와 법에서 규정하는 신체적 학대 사이에 큰 괴리가 있다. 아동복지법에서의 신체적 학대 개념이 사회통념과 일치하도록 관련법 개정이 시급하다”고 말했다.

조규덕기자 kdcho@yeongnam.com

기자 이미지

조규덕 기자

기사 전체보기

영남일보(www.yeongnam.com),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사회인기뉴스

영남일보TV





영남일보TV

더보기




많이 본 뉴스

  • 최신
  • 주간
  • 월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