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호짜리가 1억…행위예술 50년의 내공 담았다

  • 조진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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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9-03-12   |  발행일 2019-03-12 제24면   |  수정 2019-03-12
이건용展 내달까지 리안갤러리
현상학·인식론 등 이론적 기반
“미술은 당대 사람들 위한 발언”
100호짜리가 1억…행위예술 50년의 내공 담았다
이건용 작
100호짜리가 1억…행위예술 50년의 내공 담았다

100호짜리 캔버스를 벽에 걸어놓고 옆으로 돌아서서 팔을 휘둘렀다. 한동안 왼팔로 휘두르더니 돌아서서 오른팔로 다시 원을 그렸다. 캔버스는 쳐다보지도 않았다. 그가 휘두를 때마다 캔버스에 선이 그려졌다. 중첩된 선은 하트 형상으로 나타났다. 반복된 몸짓 가운데 사람들을 향해 “누구나 할 수 있다”며 씩 웃었다. 자신의 신체에서 파생된 하트 형상을 보고선 “내 신체에서 이렇게 아름다운 하트가 나오다니…”라며 과장된 제스처를 취했다. 최근 리안갤러리에서 이뤄진 이건용 작가(77·사진)의 퍼포먼스다. 지난해 페이스(PACE) 베이징 개인전에서 인기를 끌었던 퍼포먼스이다. 리안갤러리 전시를 위해 작가가 특별히 진행했다. 단순하고 반복된 몸짓이지만, 50년의 ‘내공’이 담겨 있다. 작가는 ‘한국 행위예술의 대부’로 평가받고 있다.

리안갤러리를 비롯해 갤러리 현대와 세계적인 화랑인 페이스 갤러리의 주요 작가로 활동하는 작가는 현재 가장 주목받는 한국 작가 중 한 명이다. 100호짜리 평면 작업이 1억원을 호가한다. 세계 4대 갤러리로 불리는 페이스 갤러리의 영향력이 한몫을 했다. 리안갤러리는 페이스 갤러리에 작가를 소개했다. 군산대 명예교수인 작가는 대구와도 인연이 깊다. 2007년 제8회 이인성미술상 수상자였고, 1974~79년 대구에서 개최된 현대미술제에서 퍼포먼스를 선보였다.

작가는 그림 그리기를 어렵게 생각하지 말라고 했다. 신체가 그렸다고 생각하면 된다는 게 작가의 말이다. “그림은 신체와 평면이 만나는 현상이다. 지고한 철학을 이야기할 것도 없이 실재적이고, 지각적이며, 관계론적 현실”이라고 밝혔다. 신체의 조건을 통해 형태가 파생됐다고 말하는 작가는 170㎝인 자신의 신체를 기준으로 퍼포먼스와 평면 작업을 진행했다. 작가의 대표작인 ‘신체 드로잉’이다. 자신의 키에 맞춘 베니어 합판 뒤에서 팔을 넘겨 어렵게 앞면에 선을 그었고, 캔버스를 뒤에 두고 정면을 바라본 채 자신의 팔이 허용하는 한도 내에서 선을 긋기도 했다. 다양한 신체 드로잉을 전개했다. 하트 퍼포먼스도 마찬가지다. 작가는 “내가 무엇을 어떻게 그리겠다고 생각한 게 아니다. 내 머리가 아니라 신체의 조건이 그렸다”고 강조했다.

작가의 신체 드로잉은 1979년 리스본 국제전에서 대상을 받았다. 당시 심사위원들은 “회화사의 혁명”이라며 작가의 작품을 극찬했다. 가난한 탓에 비행기 티켓을 구할 수 없어 시상식에 가지 못 했지만, 대상 상금으로 당시 4만달러의 거금을 받기도 했다. 같은 해 브라질 상파울루 국제비엔날레에 초대를 받았을 때는 부인이 집을 팔아 여행 경비를 주기도 했다. 지금 작가는 부인을 “나의 예술감독”이라고 부른다.

신체로 그린 그림이지만, 이론적 기반이 탄탄하다. 현상학과 인식론이 토대가 됐다. 장자의 철학도 반영됐다. 작가의 또 다른 대표작으로 꼽히는 ‘장소의 논리’가 그렇다. 바닥에 원을 그려놓고 몸을 움직여가며 “저기, 여기, 거기”라고 외치는 퍼포먼스다. 장소를 통한 존재 여부를 묻는 것으로 리안갤러리에서도 연출했다. 작가는 “미술은 양식이 아니라 사유의 출발이다. 자기 생각을 갖고 출발하는 게 중요하다. 당대의 사람을 위한 발언이 곧 미술이다. 나는 작품 하나하나를 완성할 때마다 엄청나게 글로 풀어낸다”고 밝혔다.

작가는 일상성을 강조한다. 신체 드로잉도 일상적 행위에서 파생된 작업이다. “3~4세 어린아이가 크레파스로 벽에 선을 긋는 것은 일상적으로 일어나는 일이다. 크레파스 선이 벽에 그려지는 것처럼 내가 이야기하는 것은 복잡하지 않다. 단순하면서도 일상적이다.” 작가에게 일상성은 대중과 소통하는 길이자 예술을 공감하는 수단이다. 리안갤러리에선 매일 받고 버리는 포장박스에 회화를 입혀 다양하게 설치했다. 일상에서 매일 접하는 재활용 쓰레기를 예술의 영역으로 들어오게 했다. 미술과 전시공간, 나아가 예술이 무엇인가를 묻고 있다. 4월30일까지. (053)424-2203

조진범기자 jjcho@yeongn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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