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은경의 영화의 심장소리] ‘골드’(스티븐 개건·2016·미국)

  • 뉴미디어부
  • |
  • 입력 2019-03-15   |  발행일 2019-03-15 제42면   |  수정 2019-03-20
우리에게는 돈이 얼마나 필요할까
20190315

오랜만에 아들과 함께 영화를 봤다. 자주 있는 일은 아니기에 뭔가 내용이 있는(?) 영화를 보여주고 싶었다. 잠시 고민하다 고른 영화가 바로 ‘골드’다. 실화라는 말에 끌렸고, 경제에 대해 뭔가를 배울 수 있을 것 같았다. 보고난 느낌은 이랬다. 무엇보다 흥미진진하다는 것. 함께 본 아들도 재미있다고 했다. 또한 경제에 관한 한 뭔가 배울 게 있긴 있었다. 이 영화의 미덕은 일단 재미있다는 것인데, 금맥 찾기에 혈안이 된 주인공의 좌충우돌 활약상은 보는 이의 ‘심장을 쫄깃하게’ 만든다. ‘할리우드 블랙리스트’(제작자들이 탐내는 최고의 시나리오)에 선정되었을 만큼 스토리가 탄탄하다. 무엇보다 ‘인터스텔라’의 배우 매튜 맥커너히가 잘생긴 외모를 감춘 채 명품 연기를 선보인다. 대머리에 중년의 배불뚝이 아저씨를 연기하느라, 햄버거만 먹으며 21㎏을 살찌웠다는 후문이다.

대략의 이야기는 이렇다. 인생 역전의 한 방을 노리는 ‘케니’는 최대 규모의 금광 발견을 꿈꾼다. 모두가 비웃지만, 신념을 가지고 지질학자와 함께 인도네시아 정글로 간다. 계속되는 실패 속에서 좌절에 빠져있던 순간, 엄청난 규모의 금을 발견하는 데 성공한다. 함께 한탕을 노리는 수많은 투자자들의 눈길이 그에게 쏠리고, 작은 회사의 주식은 순식간에 치솟는다. 그런 그에게 예상치 못한 반전이 일어난다. 영화는 1993년 캐나다에서 실제 일어났던 사건을 소재로 만들었다. 허구의 인물들을 주인공으로 내세웠지만, 의외로 실제 이야기들이 곳곳에 들어가 있는 것에 놀라게 된다. 어디까지가 영화적 허구이고, 실제 이야기인지를 찾아보는 것도 하나의 재미가 되겠다. 실제로 이런 일이 일어났다는 사실에 어처구니가 없어질 것이다.

밀턴은 ‘실락원’에서 탐욕을 상징하는 악마 ‘맘몬’을 타락한 천사라고 말한다. 천사 중에서도 가장 치사한 성격의 소유자로 항상 고개를 숙이고 황금이 깔린 보도만을 내려다보고 있다고 한다. 인간이 광석이나 보물을 파내게 된 것도 맘몬의 근성이 옮겨졌기 때문이라고 한다. 밀턴은 이렇듯 사악한 존재로 표현했지만, 영화는 금을 좇는 주인공을 다분히 애정을 가지고 바라본다. 특히 그의 욕망을 꿈과 연결시킨다. 욕망이란 단어는 어딘지 부정적인 느낌을 주지만, 꿈은 보다 긍정적인 느낌을 준다. 욕망이 보다 본능적인 것이고 꿈은 보다 이상적인 것이라면, 케니가 바라는 것은 꿈에 가깝다. 거액을 줄 테니 회사에서 자신의 이름을 빼라는 요구에 그는 응하지 않는다. 그는 욕망(돈)이 아니라, 꿈을 이루고자 했던 것이다. 그러므로 영화 속 연인 ‘케이’의 역할이 중요하게 느껴진다. 케니가 사람들의 환호 속에 있을 때 그녀는 말한다. “이 사람들은 당신을 이용할 뿐이야”라고. 결국 모든 것을 잃은 케니는 사랑하는 여인에게 돌아오게 된다.

꿈과 욕망이 뒤섞여 성취를 위해 물불 안 가리고 덤빈 한 사내의 몰락 과정을 지켜보는 것은 꽤 씁쓸하다. 돈을 따라 너도나도 광적으로 몰려드는 이야기가 경각심을 불러일으키기도 한다. 문득 채플린의 영화 ‘황금광 시대’가 생각난다. 채플린이라면 이 소재를 가지고 영화를 어떻게 만들까. 여기엔 채플린의 영화와 같은 진한 페이소스와 정감어린 해피엔딩은 없다. 영화는 자본주의의 맹점을 비판하는 한 편의 풍자극이다. 그러면서도 뒷맛이 씁쓸한 관객을 위해 지극히 영화적인 해피엔딩을 선물해 놓았으니, 할리우드 영화답다고 하겠다. 결국 ‘스팅’이나 ‘오션스 일레븐’ 같은 범죄 오락 영화 장르인 것이다. 하지만 현대사회의 모순과 탐욕을 꼬집는 한 편의 블랙코미디이기도 하다. 이런 구조적 모순과 탐욕 속에서 나 또한 한바탕 실체 없는 ‘도깨비춤’을 추고 있지는 않은지 돌아봤으면 좋겠다. “돈이 없는 사람은 가난하다. 돈밖에 없는 사람은 더욱 가난하다.” 누군가 말했던 이 명언을 기억해 두어야 하리라.

채플린은 “인생에서 필요한 것은 사랑과 용기와 구질구질하지 않을 만큼의 돈”이라고 했는데, 문제는 바로 이것인 것 같다. ‘구질구질하지 않을 만큼’이 어느 정도인지 사람마다 다르다는 것. 우리에게는 어느 정도의 돈이 필요한 것일까.

시인·심리상담사

20190315

영남일보(www.yeongnam.com),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위클리포유인기뉴스

영남일보TV





영남일보TV

더보기




많이 본 뉴스

  • 최신
  • 주간
  • 월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