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을 열며] 민의는 어디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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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9-03-18   |  발행일 2019-03-18 제30면   |  수정 2019-03-18
민의를 완전하게 반영하는
선거제도 아직 존재않지만
獨 연동형비례대표제 주목
비례대표 확대 거부 한국당
민의의 심판이 두렵지 않나
[아침을 열며] 민의는 어디에?

여야 4당이 연동형 비례대표제 도입과 공수처 설치, 검경수사권 조정을 묶어 패스트 트랙에 올리는 것에 전격 합의했다. 비례대표 의석을 현행 47석에서 75석으로 늘리고 50% 연동형 비례대표제를 도입하는 방안에 민주당과 민주평화당, 바른미래당, 정의당이 합의한 것이다. 자유한국당은 애당초 비례대표를 늘리는 것과 연동형 비례대표제 도입을 극구 반대하더니 결국은 비례대표를 아예 폐지하고 전적으로 지역대표만으로 국회를 구성하되 의석수를 현행 300석에서 270석으로 줄이자는 이상한 안을 당론으로 채택하기에 이르렀다.

현재 한국의 국회의원 수는 인구나 다른 선진국과 비교해서 너무 적은 편이다. 그리고 지역대표제가 갖는 지역이기주의적 폐단과 비례대표제가 갖는 각종 장점은 널리 알려져 있다. 내각중심제+연동형 비례대표제를 갖는 유럽이 민의를 비교적 고루 반영하고 사회적 약자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 ‘사회적 유럽’이란 별명을 갖고 있는 반면, 대통령중심제+지역대표제를 갖는 미국은 돈이 선거를 지배하고 민의가 배제되면서 철저한 약육강식형 정글자본주의로 전락해 극명한 대조를 보여준다. 우리가 선거제도에 관한 한 유럽 쪽을 지향해야 하는 것은 너무나 자명하다.

선거제도 중 민의를 100% 반영하는 완전한 제도는 없지만 그래도 현실에 존재하는 선거제도 중 가장 민의를 잘 반영한다고 평가받는 것이 독일의 연동형 비례대표제다. 만일 독일식 정당명부제를 도입하게 된다면 한국의 의회는 300석 의석 중 지역대표와 비례대표가 각각 절반을 차지하게 될 것이다. 나는 이것을 이상적 국회 모습으로 본다. 그러나 하루아침에 이상적 상태에 도달하기는 어려우니 우선 비례대표 의석을 47석에서 75석으로라도 늘려보자는 정치개혁특위 안은 일종의 타협안으로 그 고심을 이해할 만하다. 물론 총 의석수를 늘리면 그만큼 비례대표를 늘리기 쉬워지는데, 국민의 국회 불신이 워낙 심해서 한 석도 의석을 늘리기 어려우니 이 정도 타협안 말고는 한 발짝도 앞으로 나갈 수 없는 게 우리 현실이다. 얼마 전 어느 방송 프로그램에서 200명의 시민 배심원을 초청해 국회의원 수를 늘리되 의원 세비를 삭감해서 총 예산은 늘지 않도록 하자는, 내가 보기엔 상당히 합리적이고 전향적인 안을 제시했는데, 나의 예상과는 반대로 과반수 지지에 턱없이 미달해 기각되고 마는 것을 본 적이 있다. 우리 국민의 국회 불신이 그만큼 큰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총 의석수는 그대로 두고 비례대표를 75석으로 늘리는 것은 유일한 실현 가능한 개혁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이렇게 되면 지금껏 민의 이상의 의석을 누려온 자유한국당과 민주당의 양대 거대정당이 손해를 보고 군소정당은 이득을 얻게 된다. 그래서 자유한국당이 극력 반대하는 것이고, 민주당도 미온적이다. 그러나 이것이 워낙 명분 있는 개혁안이므로 민주당이 내놓고 반대하기 어렵고, 거기에 공수처 설치와 검경수사권 조정이란 숙원 과제를 끼워넣어 통과한다면 그런대로 해볼만한 거래라고 판단하는 모양이다.

공수처 설치는 시급하고 절박한 과제다. 장자연, 김학의 사건이 터무니없이 축소·은폐된 마당에 승리, 정준영 사건까지 터져 민심은 자못 흉흉하다. 사람들은 이 땅에 도대체 사회정의란 게 있느냐고 묻는다. 권력과 돈만 있으면 못할 게 없고 무슨 짓을 해도 문제될 게 없다는 천박한 풍조가 우리 사회에 만연해 있다. 장자연의 후배 윤지오와 김학의 사건의 피해 여성이 언론에 나와 애타게 호소하는 것은 짓밟힌 인격의 억울함을 풀어달라는 것과 사회정의를 세우자는 것이다. 이처럼 인간에게는 수오지심이 있고 불의를 보면 못 참는 성정이 있는데, 유독 그것이 결핍된 곳이 한국의 검찰이다. 국민이 검찰을 국회만큼이나 불신하니 공수처를 설치해서 사회정의를 세울 수밖에 없다. 자유한국당은 공수처도 반대하고 비례대표 늘리는 것도 반대하는데 내년 총선에서 민의의 심판이 두렵지 아니한가.

이정우 (한국장학재단 이사장·경제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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