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요칼럼] 강사를 실직으로 내몰고 있는 강사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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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9-03-20   |  발행일 2019-03-20 제30면   |  수정 2019-03-20
지난해 국회 통과한 강사법
재정확보방안 못 담아내고
사실상 대학에 비용 떠넘겨
오히려 강사 대량해고 우려
강사 줄면 교육질 저하 초래
[수요칼럼] 강사를 실직으로 내몰고 있는 강사법
윤재석 경북대 사학과 교수

“벚꽃이 피고 지는 순서대로 대학이 망할 것”이라는 항간의 속설이 지난해 8월 대학기본역량진단평가로 가시화되기 시작하였다. 이러한 상황에서 재정지원이 끊기게 될 대학의 실업 문제도 심각하거니와 그간 항상적인 실직의 위험과 저임금으로 고통받아 온 대학 강사의 명운은 더욱 암담해질 전망이다. 구조조정 대상으로 평가된 대학은 물론이고 자율개선대학으로 선정된 소위 양질의 대학조차도 각자도생의 각축전 속에서 시간강사에 대한 강의의존도 낮추기에 진력할 것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전국 대학 강의의 약 34%를 맡고 있지만 대학 내에서는 정체불명의 ‘지식소매상’, 박사학위 소지자이면서 대졸 초임연봉의 절반도 받지 못하는 저소득층, 4대 보험마저 외면하는 존재, 이것이 7만5천여 대학강사의 자화상이다. 2010년 조선대의 서정민 박사가 시간강사의 열악한 처지를 비관하며 스스로 목숨을 끊었고, 이에 2011년 강사에게 교원의 지위를 보장하는 ‘강사법’이 국회를 통과했다. 사고가 나고, 죽음이 생기고, 여론이 비등해야 이따금씩 제정되는 법안이 늘 그러하듯 강사법 역시 졸속 법안의 전형으로 지적되어 왔다. 대학들이 재정난을 이유로 강사법 시행을 반대하면서 8년간 시행 유예를 거듭하다가 지난해 11월 개정안이 국회를 통과한 것이다. 이미 법제화되었으나 한 번도 시행된 적이 없는 법안을 다시 개정한다는 것도 기이한 일이지만 애당초 시행 유예의 빌미가 되었던 재정확보방안을 이번 법안에도 담아내지 못한 것은 교육부와 국회의 큰 실책이다.

개정된 강사법에 의하면 올해 8월부터 대학은 강사에게 법적으로 교원 지위를 부여해야 한다. 아울러 임용 기간은 1년 이상을 원칙으로 하고, 방학 중에도 임금을 지급해야 하며, 4대 보험도 가입하도록 해야 한다. 언뜻 보면 이 법은 그간의 강사 문제를 일거에 해결한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올해 교육부가 국공립·사립대 강사 처우 개선비로 책정한 288억원은 한국대학교육협의회가 추산한 3천556억원과 너무나 동떨어진 수치다. 후자의 셈법이 맞다면 교육부가 강사의 처우를 개선한다는 것은 어불성설이고, 거의 모든 강사 처우 개선비용을 일선 대학에 떠넘긴 꼴이다. 따라서 이 법이 오히려 강사의 대량 해고와 이로 인한 대학교육의 질적 저하 및 학문생태계의 붕괴를 가져올 것으로 일찌감치 예견되었고, 현재 그 부작용은 속속 드러나고 있다. 특히 사립대학 중 재정이 열악한 대학은 물론이고 적립금을 잔뜩 쌓아놓은 것으로 알려진 대학조차 재정 부담을 이유로 시간강사를 해고하는 묘수 찾기에 나선 것이다. 강사가 주로 맡는 교양강좌의 수를 줄이고 전임 교수의 강의시수를 대폭 늘리는 고전적 방안은 물론이고, 강사법에 저촉되지 않는 각종 정체불명의 교원 채용과 대형 강좌의 개설, 1년 미만 임용이 가능한 팀티칭 강좌의 개발, 정규 강좌의 계절학기로의 전환, 심지어 속칭 ‘강좌 쪼개기’까지 등장하고 있는 실정이다. 이러하니 강사법 통과로 처우개선과 신분보장을 기대했던 강사들이 오히려 실직 위기에 내몰리게 된 것은 어쩌면 당연한 귀결이다. 속칭 “위에 정책이 있으면 아래에 대책이 있다”는 고약한 공식이 교육부의 비호 하에 대학에서까지 적용되고 있는 것이다.

현행대로라면 강사법의 부작용은 심각하게 나타날 것이다. 수강 대란과 콩나물 강의실의 대거 등장은 80년대 초반 졸업정원제 시절을 방불케 하는 교육의 질적 저하를 초래할 것이다. 더욱이 학문후속세대의 단절로 인한 지식기반사회의 붕괴는 국가적 재앙으로 이어질 위험까지 있다. 지금까지 OECD 수준의 교육예산 확보와 강사 임금의 현실화 및 양질의 연구 환경 제공, 교수 충원율의 엄수와 교양대학 및 평생교육기관의 설치에 의한 강사의 정규직화 확대 등 수많은 대안이 제시되어 왔다. 전문 지식인이 자긍심을 갖고 교육과 연구에 전념할 수 있는 행·재정적 지원이 무엇보다 절실하다. ‘국민 모두 더불어 행복한 나라다운 나라’라는 구호가 말잔치로 끝나지 않아야 이 정부는 성공할 것이다. 대학강사 문제와 교육복지는 바로 그 한복판에 서 있는 것이다.윤재석 경북대 사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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