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산책] 碑林

  • 뉴미디어부
  • |
  • 입력 2019-03-21 08:22  |  수정 2019-03-21 08:22  |  발행일 2019-03-21 제23면
[문화산책] 碑林

‘비림(碑林)’이라는 말이 있다. 비석이 많이 모여 있는 공간을 숲에다 비유한 표현이다. 대구시에도 여러 곳에 비림이 있다. 경상감영공원, 달성군청, 고산초등학교, 경북대박물관, 칠곡향교의 비림 등이 대표적이다. 이 중 규모가 가장 큰 비림은 달성군청 앞마당에 조성된 것으로 비의 수가 42기다. 그다음이 경상감영공원으로 29기다. 이들 비림에 서 있는 비의 종류는 대체로 송덕비·불망비·선정비·거사비·애민비·혜민비 등인데 이를 한데 묶어 송덕비라고도 한다. 송덕비는 고을 수령에서부터 관찰사에 이르기까지 선정을 베푼 목민관에 대해 백성들이 그 덕을 칭송하고 감사하는 뜻으로 세운 비다.

송덕비와 관련하여 아주 재미있는 이야기가 하나 전한다. 전국의 해설사들 사이에서는 ‘어느 과천현감 송덕비 이야기’로 잘 알려진 스토리다. 조선시대 때 경기도 과천은 한양과 삼남지방을 연결하는 길목이었다. 그런 만큼 과천관아에는 지방과 한양을 오가는 고관대작들의 출입이 잦았다. 그래서 과천현감 중에는 부당한 방법으로 재물을 모아 고관들에게 인사청탁성 뇌물을 상납하는 자가 많았다. 또한 현감직을 마치고 떠날 때 송덕비를 남기고자 하는 이들이 유독 많았다. 이는 과천이 사통팔달 교통의 요지인 만큼 보는 눈들이 많았기 때문이다.

어느 과천현감이 임기를 마치고 고을을 떠나는 날, 자신의 송덕비에 뭐라고 새겨져 있는지가 궁금했다. 현감이 몰래 장막을 들추고 들여다보니 비에는 다음과 같이 5글자가 새겨져 있었다. ‘금일송차도(今日送此盜·오늘 이 도둑놈을 보내노라).’ 현감은 태연하게 헛웃음을 한 번 짓고는 그 옆에다 ‘명일래타도(明日來他盜·내일 또 다른 도둑놈이 올 것이로다).’ 5글자를 새겨 넣고 고을을 떠났다. 그러자 고을의 한 아전이 그 옆에다 5글자를 더 새겨 넣었다. ‘차도래부진(此盜來不盡·이놈의 도둑놈들은 끝이 없구나).’ 며칠 후 송덕비 앞을 지나가던 한 선비가 비문을 읽어보고는 그 옆에다 또다시 5글자를 추가했다. ‘거세개위도(擧世皆爲盜·세상에는 온통 도둑놈들뿐이구나).’

전통놀이 중에 비석치기라는 놀이가 있다. 작은 돌들을 일렬로 세워놓은 뒤 다른 돌을 이용해 서 있는 돌을 쓰러뜨리는 놀이다. 비석치기놀이의 유래는 크게 ‘비석(碑石)’과 ‘비석(飛石)’으로 나뉜다. 전자는 길가에 세워져 있는 고을수령들의 송덕비를 고깝게 여겨 침을 뱉거나 돌을 던진 것에서 유래가 되었다는 설이고, 후자는 비석돌을 향해 ‘날아가는 돌’에 방점을 둔 유래설이다. 맞고 틀리고의 문제를 떠나 비석치기놀이에 전자와 같은 유래설도 있다하니 비림을 바라보는 마음이 마냥 편치만은 않다.

송은석 (대구문화관광해설사)

영남일보(www.yeongnam.com),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문화인기뉴스

영남일보TV





영남일보TV

더보기




많이 본 뉴스

  • 최신
  • 주간
  • 월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