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야성의 시장 먹거리 별천지

  • 이춘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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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9-03-22   |  발행일 2019-03-22 제33면   |  수정 2019-03-22
20190322
2016년 6월3일 대구에서 처음 출범한 서문야시장. 매일 오후 7시부터 밤 11시30분까지 이어진다. 엄선된 80명의 청년장사꾼들이 동1문과 서1문 사이 350m 구간에서 장사를 한다. 이 사업은 서문시장글로벌명품시장육성사업단이 야시장 운영을 위탁관리하고 있다.

지난 16일 오후 7시 서문시장. 아치가 세워진 동쪽 제1문을 지나 서쪽으로 걸어갔다. 6개의 매머드 상가빌딩(1지구, 2지구, 5지구, 동산상가, 아진상가, 명품프라자)의 출입문이 굳게 닫히고 있다. 낮의 서문시장이 일제히 폐점을 하고 있다. 현재 서문시장에서 장사하는 가게는 얼추 5천여개. 빌딩과 빌딩 사잇길에 갯바위 따개비처럼 빼곡하게 들어찬 노점도 무려 1천여개가 포진해 있다. 주인들은 내일을 위해 국방색 비닐천막으로 가게를 꼼꼼하게 묶어준다. 목재소 대형톱의 굉음만큼 우렁찼던 낮의 장터. 예전 같았으면 다음 날 새벽녘까지 적막강산으로 가라앉았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은 그렇지 않다. 낮의 서문시장이 지면 동시에 밤의 서문시장이 화려하게 피어나기 때문이다.

용역업체 질서유지 요원이 발 빠르게 전면에 배치된다. 노란색 푸드카트 같은 매대 부스가 자연스럽게 제자리를 찾아갈 수 있게끔 길을 유도해준다. 이때부터 자정 무렵까지 더없이 컬러풀한 ‘서문시장의 2막’이 개막된다. 낮에는 공구거리였다가 밤이면 연탄불고기와 우동의 진수를 보여주는 북성로 포장마차촌과 비슷한 시스템으로 굴러간다.

동1문~서1문 거리는 350m. 한국 최강 건어물상가 앞 대로는 80명의 셀러가 이끄는 부스가 도열함에 따라 ‘으랏차차 야식촌’으로 둔갑해버린다.

주차타워(옛 3지구)를 기준으로 동쪽존과 서쪽존 사이를 조금 띄워놓아 파워풀한 동선에 쉼표를 달아줬다. 야시장 중앙에는 ‘버스킹존’으로 불리는 상설공연장이 있다. 대구의 실력파 버스커가 총출동한다.

오후 8시를 넘어서자 부스마다 줄서는 손님들로 인산인해. 몸과 몸이 자연스럽게 부딪힌다. 맨 서쪽 구역에 있는 올해 3년차 ‘스시가스나’. 6천원짜리 ‘소고기불초밥’으로 유명한데 40여명이 군침을 삼키며 기다리고 있다. 시퍼런 불꽃을 문 부탄토치가 연신 소고기를 구워낸다. 이곳에서 최고로 사랑받는 화력원은 단연 부탄토치다.

2016년 6월3일 서문야시장이 개막됐다. 이건 2013년 국내 첫 야시장으로 대박을 친 부산부천깡통시장의 운영스타일을 서문시장글로벌명품시장육성사업단이 벤치마킹한 것이다. 대구시와 중구청이 일자리 마련 차원에서 청년장사꾼을 불러들였다. 초창기 맨 동·서쪽 부스는 상대적으로 손님이 적었다. 공정한 운영을 위해 부스 운영규칙이 새로 마련됐다. 이제는 매일 반시계방향으로 한 칸씩 서쪽으로 이동된다. 불만이 있을 수 없다. 참 공정한 룰이다.

인파를 헤쳐가면서 전구간을 두 번 왕복했다. 오대양육대주의 별별푸드가 동시다발적으로 합창하는 것 같았다. 부스마다 뿜어내는 알록달록한 향기가 방문객의 속을 더욱 허기지게 만든다. 토요일이 가장 붐비는데 반 이상은 외국인과 타지 관광객이다. 메뉴는 한식에서 벗어난 게 많다. 구이, 꼬치, 철판요리, 스시, 퓨전 아이스크림과 마카롱 등 외국계 트렌디푸드가 압도적이다. 닭발, 막창, 볶음밥 등도 서문시장 버전에 맞게 더 젊고 재밌게 해석해 론칭한다. 모두 다 한 경쟁력을 갖고 있다. 그래서 무난한 건 보이지 않는다. 다들 독특하고 재밌고 재기발랄하다.

영하 40℃ 철판 위에 액체화된 재료를 납작하게 깔아 얼린 뒤 잽싸게 철주걱으로 돌돌 말리게 긁어 종이컵에 담아주는 장면이 너무나 인상적인 ‘철판아이스크림’, 큐빅으로 굳힌 우유를 동그란 도너츠처럼 튀겨낸 뒤 그 위에 슈가파우더와 콩가루, 그리고 딸기를 세트로 담아내는 ‘우유튀김’, 아이스크림을 소로 사용한 만두 ‘아이스크림튀김만두’, 고소한 맛의 막창과 매운 불막창을 동시에 맛 볼 수 있는 ‘반반막창’, 키조개·가리비·석화·꼬막 등을 모듬으로 즐길 수 있는 ‘조개92’, 순대처럼 보이지만 실은 채소류를 삼겹살로 돌돌 말아 구워낸 ‘야채뚱생’, 사이다와 참기름병에 밀크티를 담은 촌스럽지만 모던해 보이는 ‘팬더밀크티’ 등은 역발상 아이디어가 돋보인다.

특히 ‘개다방’ 이보은 사장은 회사원에서 장사꾼으로 변신해 연착륙했다. 그녀는 신개념 반려견 간식에 독보적인 노하우가 있다. 80여가지의 반려견 전용 간식메뉴를 직접 개발했고 그 일부를 부스에 깔았다. 닭고기를 베이스로 한 꼬단푸딩, 황태프레첼, 채소쿠키 등 모든 메뉴가 수제. ‘진진목공방’은 웃음을 자아내는 ‘뽑기코너’ 같다. 자신이 만든 목공품을 팔기 위해 심심풀이 못박기 게임을 도입했다. 3천원을 내면 망치를 준다. 송판에 미리 박아둔 못을 끝까지 박으면 된다. 남자는 3방, 여자는 6방 만에 완전히 박으면 선물을 준다.

깊어지는 어둠. 사람은 더 환하게 불어난다. 나는 갑자기 상공에서 보는 야시장 정경이 궁금해 주차타워 8층 옥상으로 올라갔다.

글·사진=이춘호기자 leekh@yeongn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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