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네 토크] ‘돈’ 조우진

  • 윤용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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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9-03-22   |  발행일 2019-03-22 제43면   |  수정 2019-03-22
증권가 수상한 거래 좇는‘금감원의 사냥개’…“사실은 화투도 칠 줄 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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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샘물’. 번뜩이는 아이디어가 끊이지 않는 샘물 같다고 ‘돈’을 연출한 박누리 감독이 조우진에게 붙여준 별명이다. 박누리 감독과의 첫 만남에서 조우진은 평소처럼 노트에 깨알같이 캐릭터 분석과 아이디어, 질문들을 적어와 일순간 감독을 긴장하게 만들었다. “취조당하는 기분이었다”며 웃어넘긴 박 감독은 조우진의 그 모습에서 집요함과 호기심이 가득한 극 중 한지철을 발견했다. ‘돈’에서 조우진이 연기한 금융감독원 수석검사 한지철은 한 번 물면 살점이 떨어질 때까지 절대 놓지 않는다고 해서 일명 ‘사냥개’로 불리는 인물이다. 언뜻 지금껏 그가 보여준 인상 깊은 캐릭터 열전의 연장선에 있을 만큼 장르적 색채가 진하게 느껴지는 인물이다. 하지만 조우진은 그가 현실에 땅을 디딘 평범한 인물로 보여지길 바랐다. “그래야 설득력 있게 관객에게 다가갈 것 같다”고 말한 그는 한지철이 지닌 집요함에 워커홀릭에 빠진 이혼남이라는 설정을 덧대 그를 입체적으로 완성했다. ‘돈’은 여의도 증권가에 입성한 신입 주식 브로커 조일현(류준열)이 베일에 싸인 작전 설계자 번호표(유지태)를 만나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다. 이들의 수상한 거래를 눈치챈 한지철은 협박과 작전, 인간적 호소를 오가며 그들을 쫓고 압박한다. 이번에도 여지없이 평범한 얼굴에서 뿜어내는 임팩트 강한 에너지와 기묘한 위압감을 발산하면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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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지철은 금감원에서 ‘사냥개’라는 별명이 붙은 인물이다. 전작들에서 보여졌던 강렬함보다는 유연함과 집요함을 강조했는데 이 또한 인상깊었다.

“캐릭터를 접하자마자 사냥개라는 별명처럼 무조건 세게 나가야 할지를 고민했다. 극 중 유일하게 긴장감을 높이는 인물이기 때문에 조금 파워풀하게 나가도 될 것 같았지만 그러면 너무 전형적으로 비쳐질 것 같았다. 일단 나부터 재미가 없었다. 그보다는 한지철이 왜 사냥개가 되었는지부터 따져보는 게 중요했다. 제일 먼저 떠오른 키워드가 집요함과 워커홀릭이었다. 그리고 현실과 맞닿아 있는 생활밀착형 인물이라는 점이 강조돼야 관객들이 충분히 납득하고 이해하면서 그를 바라볼 것 같았다. 그게 극의 흐름에도 도움이 될 수 있다고 생각했다.”

▶금감원 관계자들도 만나봤나.

“시도는 여러 번 했는데 만나지는 못했다. 업무 성격상 일과 관련된 이야기가 밖으로 노출되는 것을 꺼리는 것 같았다. 대신 기본적인 정보와 자료는 감독님을 통해 알아갔다. 사실 금감원 직원 역할이지만 이 일에 전문적으로 접근하거나 폭넓은 이해가 필요한 건 아니었다. 돈의 흐름만 좇아 장르적인 재미를 주면 됐기에 일부러 경제공부까지 하면서 그 쪽으로 깊게 파고 들지는 않았다. 주식을 잘 모르는 관객도 어렵게 느껴지지 않을 정도로만 접근했다. 그 과정에서 캐릭터 설정은 내 머릿속에 수집된 많은 인물 중 한 명을 떠올렸다. 매번 쓰는 방식인데 과거 만났던 인물들을 하나씩 떠올려 그중 어울리는 사람을 내가 연기할 캐릭터에 녹여냈다. 이번의 한지철 역도 지인 중 일에 미쳐 살던 한 사람을 떠올리며 만들어냈다. 당시 그 사람을 보면 가정이 있는 사람인지 의아할 정도였다. 일이 좋아서 야근을 밥 먹듯이 하고 휴일에도 대부분의 시간을 서재에서 보냈다. 아내가 싫어하지 않느냐고 물어 본 적이 있는데, 이런 나를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이었다면 결혼하지 않고 혼자 살았을 것이라고 했다. 여기에 힌트를 얻어 한지철이 워커홀릭 때문에 이혼당한 남자로 설정했다.”


집요스럽고 워커홀릭 때문 이혼 당한 남자
지인 중 일에 미쳐살던 사람 떠올리며 연기
세상 향한 동경, 목표보다 포부 가지고 살아
‘내부자들’ 터널 속에서 밝은 곳 인도한 작품
비슷한 캐릭터도 더 깊이 만드는 노력 필요
대구에서 상경해 온갖 알바, 연기적 자양분
에너지 많은 류준열, 유지태 선배 닮고 싶어
평범함이 경쟁력…흰 도화지 같다는 말 좋아



▶전작 ‘국가부도의 날’에서 재정국 차관을 연기했다. 인물의 성격은 다르지만 나라 경제의 중요한 업무를 수행하고 있다는 공통점이 있다. 어떤 차별점을 두고 접근했나.

“특별히 차별점을 두고 접근하진 않았다. 일단 다뤄지는 돈의 규모가 다르고 사람을 대하는 태도가 다른 인물이다. 재정국 차관이 자신의 생각과 감정을 최대한 억누르며 상대방을 권위적으로 대했다면, 한지철은 즉각적인 행동이나 표정을 여과없이 보여준다. 조금 공중에 떠있는 인물이라고나 할까. 굳이 비유하자면 바람개비 같은 사람이다. 주변이 조용할 때는 존재감이 별로 드러나지 않다가 사건이 터지고 일이 급박해지면 그제야 강한 바람을 맞고 돌아가는 바람개비처럼 그의 행동과 호흡도 빨라진다. 이 사람의 행동과 사고가 어느 정도 납득이 돼야 보는 사람도 그 인물에 감정이입을 할 수 있다는 점에 주안점을 두고 접근했다.”

▶주식은 해본 적 있나.

“돈에 대한 개념이 없다. 주식은 물론 화투도 칠 줄 모른다. 남들은 재테크를 해보라는데 솔직히 시간도 없고 관심도 없는 편이다. 다만 경제적인 상황이 연기에 걸림돌이 된 경험이 많다보니 돈을 벌어야겠다는 생각은 한다. 다행히 지금은 연기에만 집중해도 될 만큼 상황이 좋아지고 있어 행복하다.”

▶영화 ‘내부자들’(2015)로 주목을 받기 전까지 오랜 무명생활을 거쳤다. 그 과정에서 연기를 포기하지 않고 지금껏 지탱할 수 있게 만든 원동력은 뭔가.

“나 스스로 조우진이란 인물이 어떤 인물인지 찾고 싶었다. 세상에 태어나 단 한 번 사는 인생인데 그 안에서 살아가는 나라는 인간은 도대체 어떤 인간이고, 어떻게 살아야 후회 없는 삶을 살아가는 것인지 알고 싶었다. 목표보다는 포부다. 그리고 그것을 찾기 위한 가장 좋은 방법이 연기자라는 직업이었다. 그게 나로 하여금 세상을 향한 끝없는 동경을 품게 만들었다. 그 점에서 ‘내부자들’은 터널 안에 있던 나를 밝은 곳으로 인도한 작품이다. 작품은 물론 대사 하나가 소중했던 이전과 비교하면 지금은 너무나 행복하고 소중하고 감사한 순간이다.”

▶이후 다양한 작품으로 숨 가쁘게 달려왔다. 조우진만의 캐릭터를 만들고 싶은 욕심도 생길 법한데.

“최근 두어달 촬영이 없는 틈을 타 나를 되돌아 볼 기회가 있었다. 그동안 엄청 달리긴 달렸더라. 어쩌다보니 나에 대한 기대치가 높아졌고 주어진 분량과 비중이 내 의도와 상관없이 커졌다. 하지만 이제 겨우 나를 보여줄 수 있는 메뉴판의 기초작업이 끝났다고 생각한다. 배우는 상황에 맞게 매번 다른 색깔의 옷을 입어야 하지만 상황에 따라선 비슷한 결의 캐릭터를 더 확장하고 더 깊이있게 만들어내는 고민과 노력도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그 부분에 대한 남다른 의지를 갖고 있다. 그건 또 다른 의미의 초심이다.”

▶전작에서의 강렬하고 임팩트 있는 악역의 모습과 달리 한지철은 정의의 편에 서 있는 극히 평범한 인물이다. 이 점이 오히려 부담스럽지는 않았나.

“아무래도 악역을 통해 많은 사람들에게 회자됐으니 다시 강한 캐릭터를 해야 하는 건 아닐까에 대한 고민은 있었다. ‘국가부도의 날’만 보더라도 무게감이 실리는 역할인데 이번엔 직업도 그렇고 캐릭터도 그렇고 비교적 라이트한 편이다. 분명 관객들은 전작 이상의 임팩트있는 모습을 기대할 수 있다. 하지만 그런 고민을 할 시간에 이번에 주어진 역할을 어떻게 풀어나가고 접근할지를 고민하고 연구하는 게 훨씬 더 유익하고 효과적이라고 생각한다.”

▶연기자가 되어야겠다고 생각한 특별한 계기가 있었나.

“어려서부터 남 앞에 서는 것을 꺼리지 않았다. 사람들의 반응을 보면서 희열감을 느꼈고 그런 것들이 연기자가 되고 싶은 희망으로 차곡차곡 쌓여갔다. 보통 스무살이 되면 자신의 정체성에 대해 고민하게 된다. 무엇을 하고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에 대한 고민일 텐데 내가 남 앞에 서는 것을 좋아했지만 외향적이진 않았다. 성격을 바꿔보고 싶었다. 그렇게 연기자를 꿈꾸며 대구에서 혼자 상경했다. 집세와 밥값을 스스로 벌어야 했는데 알다시피 연극무대에 서는 것만으로는 먹고 살기가 힘들다. 그래서 무대에 서는 틈틈이 아르바이트를 시작했다. 일단 노래방, 비디오방, 소주방 등 ‘방’자가 붙은 일은 거의 다 거쳤다. 물류창고와 레코드점에서도 일했고 학비 마련을 위해 방위산업체에서도 오랜시간 근무했다.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다양한 사람들을 만날 기회가 생겼다. 돈을 주고도 살 수 없는 값진 경험이자 연기적 자양분이 된 셈이다. 그때의 경험들을 지금 유용하게 써먹고 있으니 말이다.”

▶류준열, 유지태와 함께 긴장감 감도는 삼각형을 완성했다. 그들과의 호흡은 어땠나.

“준열씨와는 ‘더 킹’과 ‘돈’에 이어 올해 개봉할 ‘전투’에서도 호흡을 맞췄다. 그래서 편하다. 처음 만났을 때도 그렇고 지금도 그렇고 크게 차이가 없을 만큼 싱그럽고 연기자로서 굉장히 모범적인 사람이다. 정말 치열하게 고민하고 소통을 중시하는 연기자인데, 본인인 물론이고 상대방에게도 큰 에너지를 끌어내게 만드는 힘이 있다. 많은 자극을 받았다. 유지태 선배는 배우를 떠나서 닮고 싶은 사람이다. 후배들에게 따뜻한 조언과 몸소 실천하며 현장을 이끌어가는 선배님인데, 평소 롤모델로 생각해왔던 선배님 상이다. 게다가 사회활동도 많이 하고 별다른 잡음없이 지금껏 활동하고 있으니 그저 존경스러울 따름이다. 뿌리 깊은 나무 같다.”

▶배우로서 조우진의 경쟁력을 말한다면.

“평범함이 아닐까. 그래서 이것저것 다 해볼 수 있었던 게 아닐까 싶다. 내가 그동안 출연했던 다양한 작품 속 직업도 그렇고, 캐릭터의 결도 그렇고 모두가 내가 지닌 평범함 때문에 기회가 찾아온 것 같다. 예전부터 ‘무엇을 맡겨야 할지 모르겠다’는 말을 많이 들었는데 이젠 그 평범함이 빛을 보는 것 같다. 나는 이목구비가 뚜렷하거나 캐릭터의 색깔이 확연히 보이는 사람이 아니기 때문에 흰 도화지 같다고들 말하는데 그 말이 듣기 좋다.”

글=윤용섭기자 yys@yeongnam.com
사진제공=쇼박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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