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사일편(一師一便)] 주황빛 목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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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9-03-25 07:55  |  수정 2019-03-25 07:55  |  발행일 2019-03-25 제15면

갑자기 추워진 날 점심시간이었습니다. 선생님들이 앉아계신 식탁과 교장 선생님과 제가 앉아있는 식탁 사이의 한 뼘 거리가 유난히 멀게 느껴졌던 그때, 한 입 가득 밥을 머금고 창밖을 보니 그 목련이 주황빛을 띠고 있었습니다. 수줍어 상기된 듯한 그 빛깔 때문에 우아하게만 보이던 목련이 더욱 청순하고 순수하게 보였습니다.

“교장 선생님, 우리 학교 목련이 원래 저런 색이었네요. 주황빛이 참 예쁩니다. 저런 색깔의 목련은 못 본 것 같습니다.” 교장 선생님께서는 마음이 아픈 듯 눈길을 주지 않고 대답하셨습니다. “냉해를 입은 거예요.” 밥 한술을 넘기기 위해 유난히 많은 국물을 떠먹었습니다.

하나의 목련은, 비록 조금 더 기온을 살피고 완전히 겨울이 물러갔다는 확신이 들 때 꽃을 피우는 것이 좋다는 것을 알았지만, 앞서고 싶었습니다. 다른 꽃들보다 일찍 피고 더 빨리 열매를 맺고 싶었습니다. 남들보다 빨리 한다는 것은 부지런하고 성실하다는 평을 듣기 때문입니다. 아침 일찍 일어나서 부지런히 움직이고 앞서서 미리미리 공부해서 경쟁에서 이겨야 좋은 소리를 듣습니다. 그래서 꽃을 피웠던 겁니다. 그런데 냉해를 입고 한심하다는 소리를 들었습니다.

둘의 목련은, 참 신중했습니다. 언제 필지 결정하기 위해 기온과 바람의 변화, 그리고 아이들 옷차림도 꾸준히 관찰해왔습니다. 다른 꽃들이 피든 말든 상관하지 않았습니다. 날씨가 충분히 따뜻해졌고 이제 완전히 봄이 되었기 때문에 꽃을 피우기 적당한 때라고 스스로 판단했습니다. 그래서 꽃을 피웠던 겁니다. 그런데 냉해를 입고 한심하다는 소리를 들었습니다.

다른 사람의 실패에 대한 비난과 빈정거림은 가당치 않은 듯합니다. 나의 실패에 대한 다른 사람들의 그것들도 웃어넘길 수 있으면 좋겠는데 쉽지 않습니다. 노래나 하나 들어야겠습니다. 장기하와 얼굴들의 ‘그건 니 생각이고’가 생각납니다. 그런데 냉해 입은 목련 꽃잎은 다시 나나요? 뭐, 내년에는 나겠죠. 초등학생들이 신주머니를 톡톡 차며 신나게 지나갑니다.

이성호<대구 명곡초등 교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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