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요진단] 집단우울증에 걸린 구미시민들

  • 장용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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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9-03-26   |  발행일 2019-03-26 제30면   |  수정 2019-03-26
명품 비결은 특별하지 않아
보이는 곳에는 정성스럽게
안보이는 곳은 더 정성스레…
반도체클러스터 유치 실패
통큰 지원으로 보듬어주길
[화요진단] 집단우울증에 걸린 구미시민들

구미에서 ‘SK하이닉스 유치기원’을 바라는 플래카드는 찾아볼 수 없다.

1천장이 넘는 플래카드가 2개월 동안 시민들의 여망을 표출했지만 지난달 22일 사실상 경기도 용인으로 지정되면서 이제는 모두 사라졌다. 이날 용인시 원삼면 주민들은 밤새 잔치를 벌였다고 한다. 면내 가게에는 술이 동났다고 한다. SK하이닉스 반도체 클러스터사업은 10년간 120조원을 들여 일자리 1만7천여개를 창출하는 프로젝트이니만큼 그 기쁨은 오죽했을까.

구미시민들은 ‘SK하이닉스 구미유치’라는 말을 입에 달고 다녔다. 정파를 떠나서 한마음으로 뭉쳤고, 파격적인 지원을 약속했지만 결과는 역시 ‘수도권’이었다. 43만 구미시민들은 웃음을 잃었다.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집단우울증에 걸린 상태다.

유명한 조선후기 실학자 한 분이 유배 당시 자식들에게 보낸 서신에서 “아무리 형편이 비루해도 한양 사대문(四大門)을 떠나지 말라”고 당부했다고 한다. 수도권을 떠나서는 안 된다는 이 말이 지금 구미시민들에게 뼈저리게 다가온다. SK하이닉스 유치과정에서 해당기업 최고경영진이 지역을 어떻게 보는지에 대한 일단(一端)을 들을 수 있었다. “지리적으로 수도권에서 떨어져서 경쟁력이 낮고 고급인재가 가려하지 않는다. 지역 인프라도 낮다”는 것이었다. 그렇다면 구미에 있는 IT 관련 대기업 임직원들은 덜 떨어진 사람들이란 말인가. 일견 이해되는 부분도 있지만 지역을 하대(下待)하는 것 같아 씁쓸하다.

구미시민들은 그래도 유치에 한가닥 희망을 걸었다. ‘수도권 공장 총량제’나 ‘지방경제활성화’라는 이 정부의 정책을 믿었기 때문이다. 나아가 지난해 6·13지방선거에서 ‘보수의 심장’인 구미에서 장세용 더불어민주당 후보가 구미시장으로 당선됐다. 더불어민주당 비례대표인 김현권 의원이 고향인 의성을 떠나 ‘구미 을’에서 총선준비를 하는 것을 보면서 기대를 가졌다. 그러나 구미에 대한 이 정부의 관심은 눈꼽만큼도 없었다. 아예 보수의 잔당(殘黨)으로만 여긴 나머지 대구경북을 고사시키려는 게 아닌가 하는 의문을 가질 정도다. 김경수 경남도지사가 부재 중인 경남도를 비롯한 PK만 챙기려는 것과는 비교가 된다.

보수에 대한 구미시민들의 호감도도 그리 크지 않다. 대구경북이 집권했을 때도 뭐 하나 시원하게 해준 게 없기 때문이다. 그저 표나 구걸했을 뿐 정권 잡으면 수도권과 PK챙기기에만 나섰다. 혹여 요구라도 하면 ‘양반체면에 보채서는 될 말인가’라고 핀잔이 돌아왔다. 그결과 대구경북의 경제상황은 어떤가. 한마디로 ‘대추나무에 걸린 연(鳶)’ 신세로, 각종 경제지표가 사상 최악이다.

문재인 대통령이 22일 대구를 다녀갔다. 이날 칠성시장 상인들의 환대가 화제다. 최근 각종 여론조사에서 문 대통령에 대한 사나운 민심이 표출됐지만 정작 현장에서는 야유 한마디 없었다. 오히려 상인들의 친절한 표정에서 “제발 대구경북을 살려달라”라는 애달픈 심정이 절절이 묻어났다. 정치인들에겐 지지표가 중요하다. 하나 대통령이 되면 달라야 한다. 반대했던 사람도 국민이고, 모두 보듬고 안아줘야 할 대상이 아닌가. 장인이 대물림하는 명품을 만드는 비결은 그리 특별하지 않다고 한다. 단지 ‘보이는 곳은 정성스레, 보이지 않는 곳은 더욱 정성스레 손길을 준다’는 게 비법이다. 최근의 낮은 지지율도 대부분 대통령 측근 등의 일탈 등에서 비롯된 것이지 문 대통령이 진정으로 미워서 그런 것은 아니라는 여론도 만만찮다.

지난 8일 김부겸 행정안전부 장관이 복귀 첫 일정으로 국회의원회관에서 ‘대기업 유치와 구미형일자리토론회’를 가졌다. 실의에 빠진 구미시민들에게 큰 용기를 주기에 모자람이 없었다. 지난해 8월 이해찬 민주당 대표가 구미에서 첫 현장최고위원회의를 열고 “대구경북지역을 특별관리지역으로 지원토록 하겠다”고 천명한 바 있다. 이번 문 대통령의 대구방문도 이와 궤를 같이 한 것이길 바란다. 지역 특히 오갈데 없고 기댈 곳조차 없는 구미와 TK를 살리는 길은 문 대통령의 통큰 지원뿐이다. 앞으로 낭보가 이어지길 빈다.

장용택 중부지역본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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