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산책] 다문화주의의 함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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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9-04-01 08:19  |  수정 2019-04-01 08:19  |  발행일 2019-04-01 제24면
[문화산책] 다문화주의의 함정
김기수<대구예술발전소 예술감독>

절기상 봄의 도래를 알리는 춘분은 또한 ‘세계 인종차별철폐의 날’이어서 대구에서도 지난달 21일 지역 거주 난민, 다문화 가정, 이주노동자들이 모여 ‘인종차별철폐 기자회견’을 가졌다. 1960년 3월21일 남아프리카공화국에서 인종분리정책에 반대하는 평화시위 도중 시민 69명이 숨지는 사태가 발생하자 유엔이 1966년 이날을 ‘인종차별철폐의 날’로 제정한 이래 세계 곳곳에서 인종주의를 근절하기 위해 움직이기 시작했다. 대구에서도 언젠가부터 매년 이러한 이벤트를 벌여왔지만 좀처럼 언론이나 시민의 주목을 끌지 못하고 있다.

그간 정부나 지자체는 이러한 문제에 대한 대안으로 다문화주의 정책을 실시해왔다. 다문화주의란 다양한 민족으로 구성된 사회에서 문화적 다양성을 관리하는 정책을 일컬으며, 특히 문화적 차이를 상호 존중하고 각 민족의 고유한 문화와 관습을 법적으로 보장하는 정책이다. 이론적으로 그럴듯해 보이지만 이 땅에서 인종적, 문화적 차별의 문제가 해소되고 있다는 증거는 없어 보이고, 차별에 관한 뉴스는 끊이지 않는다. 왜 그럴까? 문제는 교육에 있을 것이다. 정책자, 교육자, 시민, 청소년 및 아이들 모두가 올바른 철학과 진정한 의지를 공유하는 교육 말이다.

동시대 철학자 슬라보예 지젝은 다문화주의 정책이 실제로 다국적 자본주의의 문화논리로서 새로운 형태의 인종주의로 작동해 왔다고 비판한다. 관건은 현재 다문화주의 정책이 참으로 중심·지배 문화와 주변·피지배 문화의 서열을 없앨 수 있느냐에 있다. 이를테면, 우리는 베트남 이주민들이 신속히 한국문화에 동화되기를 기대하지만 그들의 문화를 배우려는 데는 무척 소극적이지 않은가. 인종과 문화의 평등에 대한 호소는 아무리 이상적인 것처럼 보일지라도 정책적, 교육적으로 결코 포기해서는 안 될 우리 시대의 가치관이다.

우리는 일제강점기 때 인종적 차별을 겪었던 민족이면서 또한 G20에 진입한 이래 차별 철폐를 행하는 입장에 놓이게 되면서 이제 새롭게 깨우치고 되새겨야 할 교훈과 맞닥뜨리게 된 것 같다. 가령 우리는 미국에 보낸 딸아이가 그곳에서 인종차별을 겪는 것에 분개한다면 이주민의 딸아이가 이곳 유치원에서 차별받는 것을 당연시할 수는 없지 않겠는가. 나의 딸아이가 백인아이와 함께 춤추며 공부하는 모습을 보고 싶다면 또한 이곳 이주민의 아이들과 함께 노래하며 어울리는 모습에 거리낌이 없어야 하지 않을까. 참으로 문화국민, 문화시민이 되려면 이러한 허들을 넘지 않고서 어찌 가능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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