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약산 김원봉 서훈 논란에 부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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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9-04-17 00:00  |  수정 2019-04-17
20190417

세종대왕은 성군이다.  하지만 양인들의 성군이었지 노비들의 입장에서는 노예제와도 같은 노비제를 확립하고, 기생들의 입장에서는 성적 자기결정권을 박탈한 기생제를 확립한 군주였다. 독립국의 상징과도 같은 하늘에 대한 제사를 폐지하고 정성으로 명나라를 섬긴 사대주의자였다.  현재에 와서 이러한 논리로 세종대왕을 비판하는 것이 과연 옳을까?  반대로 작은 일화를 들어 세종을 자유민주주의의 시조라고 칭송하는 것은 또한 옳을까?  아닐 것이다.  세종대왕은 그 시대의 성군으로 자리 잡음으로써 그 가치를 가지고 우리는 대왕이 창제한 훈민정음을 쓰는 혜택을 누리며, 그 시대의 시각으로 대왕을 바라보는 것이 역사를 대하는 건전한 자세이다.
 

약산 김원봉 선생(1898~1958)에 대한 서훈 논란이 뜨겁다. 약산은 밀양출신으로 1919년 의열단 단장이다. 이후 1935년 조선민족혁명당, 1942년 광복군 부사령관, 1944년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국무위원 및 군무부장으로 활동한 항일무장독립운동사의 가장 중추적인인물이다.
 

해방 후 1948년 남북협상 때 월북한 이후 그해 북한 최고인민회의 제1기 대의원, 국가검열상에 오르고, 1952년 노동상, 1956년 당 중앙위원회 중앙위원, 1957년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회 부위원장까지 지냈으나 1958년에 김일성에 의해 숙청되었다.
 

약산의 서훈을 반대하는 측에서는 북한에서의 행적을 문제삼고 있다.  심지어 약산이 서훈을 받는다면 김일성도 서훈을 받고, 김정은에게 보훈 연금을 주어야 한다는 씁쓸한 촌평도 나온다.  하지만 약산과 김일성을 같은 선상에 놓는 것에는 논리적으로 무리가 있다.
 

먼저 항일 운동의 업적은 비교조차 할 수 없다. 김일성의 가장 큰 독립운동 업적으로 주장하는 보천보 전투는 내용에 대해 논란이 있다. 하지만 약산의 서훈을 반대하는 측에서 조차도 그의 독립운동 업적에 대해서는 반론을 제기하지 않는다.  그리고 약산이 월북한 경위에 대해서도 살펴볼 필요가 있다.  약산이 북한에 있을 때 중국인 친구에게 보낸 편지를 살펴보면 "북조선은 그리 가고 싶지 않은 곳이지만, 남쪽의 정세가 너무 나쁘고 심지어 나를 위협하여 살 수가 없다"라고 적고 있다. 약산의 월북이 좌우 이념대립으로 혼란한 시대에 같은 민족 중 한 쪽에 서야만 했던 시대 비극의 축소판임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마지막으로 약산의 월북 후 행적도 살펴 보아야 한다.  약산은 6·25 당시 남침을 반대하였다. 이후에도 김일성 1인지배에 반대하는 행동을 하다가 "중국 국민당 장개석의 사주를 받은 국제간첩"이라는 죄목을 뒤집어 쓰고 숙청을 당한다.
 

우리는 많은 독립운동가가 재산을 정리하고 나라를 위해 헌신하였지만 나라에 인정받지 못하고 후손까지 빈궁하게 사는 것이 현실임을 본다.  약산은 혼란한 시대 분단된 선을 넘은 이유로 북에서는 숙청을 당하고, 남에서는 조롱을 당하고 있다. 분단된 조국이 아니라면 성장과 분배의 문제에 불과했을 이념 논쟁으로 풍찬노숙으로 보낸 그의 일생이 훼손되고 있다.
 

한국사회여론연구소(KSOI)는 최근 약산에 대한 여론조사를 하였다.  59.7%는 "이념을 떠나 독립운동가로서 정당한 평가가 필요하다"고 답했으며, 34.2% "월북한 인물들에 대해서는 독립유공자로서 평가가 불가능하다"라고 답하였다.  2배 가까이 더 많은 국민들이 서훈을 바라고 있지만, 보훈청에서는 사회적 합의가 이루어지지 않은 인물에 대해서는 서훈을 하지 않겠는 입장이다.
 

더 많은 국민들이 약산을 알고 공감해 사회적 합의가 이루어졌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약산에 대한 평가가 오히려 미래 통일 대한민국에서 더 빛날 수 있다라는 희망도 가져본다.  하지만 지금 중요한 것은 약산을 약산의 자리에 놓아 두는 것이다. 살을 에는 되바람을 맞아가며 만주를 호령했던 패기와, 자유민주주의와 사회주의가 혼재했던 혼란의 시대에 길을 택한 독립운동가의 고뇌를 지금의 시선으로 마음껏 재단하는 오만을 범하지는 않아야 한다.

 이원호 (구구단(究丘團·대구를 연구하는 독서모임) 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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