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경 딛고 일어선 영남일보, 녹슬지 않는 철갑옷을 입었다”

  • 이효설,손동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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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9-04-19 07:31  |  수정 2019-04-19 11:47  |  발행일 2019-04-19 제3면
[영남일보 복간30년] 복간 1호 ‘영남시평’에 칼럼 쓴 신일희 계명대 총장
20190419
1989년 4월19일 영남일보 복간 1호 ‘영남시평’(오른쪽) 칼럼을 썼던 신일희 계명대 총장이 복간 30주년을 맞아 특별 인터뷰를 갖고 있다. 손동욱기자 dingdong@yeongnam.com

1989년 4월19일자 영남일보 복간 1호 9면 ‘영남시평’ 코너에는 신일희 계명대 총장(81)이 쓴 ‘민주화시대 대학교육’이란 제목의 칼럼이 실려 있다. 신 총장은 시평에서 “대학교육은 민주시민 배양에 초점이 맞춰져야 한다”고 전제한 뒤 진정한 민주시민의 상(像)을 규정했다. 그것은 크게 자유주의·평등주의·전문성으로 압축되며, 극좌와 극우의 대립을 경계할 것을 더불어 주문했다. 한 세대 전의 ‘일침(一鍼)’이지만 지금도 여전히 유효하고 관통하는 가르침이 아닐 수 없다. ‘복간 1호’ 인연 후 30년이 흘렀다. 영남일보는 복간 30주년을 하루 앞둔 18일 오후 늦게 신 총장을 다시 만났다. 복간의 ‘상징’이 된 신 총장에게 영남일보의 지난했던 역사와 미래를 비롯해 시대적 과제, 대구경북의 갈 길 등 질문을 청했다.

▶복간 1호에 시평을 썼다.

“얼마전 같다. 실감이 안난다. 무려 9년 동안 폐간되지 않았나. 긴 터널을 뚫고 영남일보가 복간됐을 때 정말 반가웠다. 지역 대표언론이란 점도 반가움의 이유였지만 그보다 개인적 인연이 깊어 더 좋았다. 기쁜 마음으로 글을 썼던 기억이 난다. 얼마전 작고한 내 친구 박용규가 영남일보 복간 논설주간이었다. 언론통폐합이란 고초를 겪을 때 우린 자주 만났다. 속내를 털어놓고 같이 가슴 아파했다. 영남일보와 나는 30여년 전 비슷한 굴곡을 겪었다. 이후 다시 비슷한 시기에 영남일보는 복간했고, 나도 학교로 복귀했다. 우리는 기쁨도 같이 누린 셈이다. 그리고 복간되고 이재필 사장이 계명대(대명동)에 찾아오셨을 때 진심으로 기뻤다. 나가실 때 정문까지 나가 배웅해 드렸다. 이제껏 총장하면서 그런 적은 없었다.”

(신 총장은 1980년 전두환정권 때 대학에서 축출됐다. 그리고 영남일보 복간 1년 전인 1988년 민주화 바람을 타고 총장 직선제로 다시 계명대로 돌아왔다)

▶30년이 흘렀다. 당시와 현재의 사회 이슈도 달라졌다.

“30년 전엔 자유가 우리 사회의 중요한 이슈였다. 언론자유를 박탈 당한 시대였다. 이제 그런 문제에선 벗어났다. 대신 새로운 문제가 대두됐다. 자유주의, 평등주의는 여전히 중요한 가치다. 여기에 인권의 중요성이 강조되고 있다. 그런데 자유가 방종이 되고, 인권이 변두리화하고 있다. 내 멋대로 하는 건 자유가 아니다. 또 인권보다 중요한 가치도 있는 거다. 사람 됨됨이가 더 중요하다. 어린이의 잘못을 지적하면 인권 침해가 되는 시대 아닌가. 오래 전 술자리에서 생긴 일에서 인권이 화두가 되고, 미투가 사회적 이슈가 되고. 자꾸 이러면 인간의 존엄성이 변두리화한다.”


영남일보와의 인연
복간호 논설주간 맡았던 박용규가 내 친구
교육·언론 자유 박탈을 함께 겪고 아파해
민주화 바람타고 비슷한 시기에 현장복귀
당시에 기쁜 마음으로 시평 쓴 기억이 나
지역정서 반영 ‘담론의 폭’ 더 넓혀갔으면…

지역사회를 향한 제언
의견은 달라도 합리적 질문으로 대화해야
대구경북만의 매력 갖추면 청년들 안 떠나
학생들에게 ‘최고가 되라’가르쳐선 안 돼
함께 성장하는 특별한 인간으로 교육 필요



▶언론은 어떤가.

“언론이 이런 문제를 계도해야 한다. 보도가 아니라 계도해야 한다. 영남일보는 사회적 큰 흐름 속에 존재해 왔다. 질곡을 두루 경험한 당사자다. 폐간의 침묵, 지역 담론의 필요성을 깨닫게 했다. 고생의 대가, 반드시 따른다고 생각한다.”

▶영남일보의 보도관점에 대한 개인적 의견을 듣고 싶다.

“영남일보를 즐겨 읽는다. 4월18일자 신문에 보니까 북핵과 지역경제 문제를 다뤘더라. 관점이 좋았다. 북핵을 국제적 문제로 이끌어가는 시각, 그리고 대구경제가 국가의 문제라고 규정하고 이슈를 확대하는 자세가 좋다. 물론 결점도 있지 않겠나. 지역의 정서를 반영해야 하니 보수 성향을 강하게 노출하는 경향도 읽힌다. 담론의 기초가 있어야 한다. 뭐냐면 근본적인 보수의 자세를 지키면서 상대방도 존중해야 한다.”

▶담론의 기초라 하셨는데 좀 더 구체적으로 짚어달라.

“보수의 반대가 진보라면, 지금 진보가 없다. 좌편향만 있다. 진보는 뭔가. 보수와 같은 방향을 가되 좀 더 빨리 가는 거다. 시간과 절차를 단축시키는 것에 다름없다. 이것 없애고 저것 하는 것은 진보가 아니다. 영남일보는 좀 더 담론의 폭을 넓혀 달라. 물론 지역사회 특성상 위험이 따를 것이다. 힘든 작업이다.”

(30년전 영남시평에서 신 총장은 ‘민주화 시대 진정한 민주시민의 특성’에 대해 기술했다. 자유주의, 평등주의 사상을 두루 갖추고 전문적 분야에서 실력을 갖춘 지성인이야말로 민주시민라고 했다. 현시점에 필요한 민주사회의 척도에 대해 질문하자 대뜸 “질문할 수 있는 사회”라고 했다. 민주사회에선 대통령에게 누구라도 질문을 던질 수 있다고도 했다. 그러면서 사회가 총체적으로 평준화하고 있는 것 같다며 우려했다. 민주정부는 모든 것을 평준화하는 것이 아니라 개인의 능력을 개발하도록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복간호 시평에선 극좌와 극우 사이 극한적 대립에 대해 경계했다. 인공지능의 시대를 목전에 둔 지금도 당시의 주문이 통용되는 것 같아 아이러니하다.

“사회에 반대 의견은 필요하다. 그래야 성장한다. 단 상대방의 의견을 파괴·말살하는 그런 극좌와 극우는 안된다. 서로 의견이 다르더라도 합리적인 질문을 던지고 대화할 수 있어야 한다.”

▶대구경북의 큰 어르신이다. 우리 지역이 나아가야 할 길은 뭔가.

“나는 아직 어른이 아니다. 나이는 많이 먹었으나 어른은 아니다(웃음). 대구의 주된 관심은 경제다. 워낙 청년실업이 심각하다. 아직 지역에서는 생산능력을 갖춘 사업을 개발하지 못하고 있다. 차세대 산업이 없다. 대구시에서 물산업, 로봇, 의료, 자동차 등 밀어붙이는데 성공하길 바란다. 단 총력을 기울일 파트가 필요하다고 본다. 그래야 미래에 먹고 살 수 있다.”

▶개인적으로 제안하고 싶은 지역 산업이 있는가.

“대구시의 먹거리 산업 개발을 응원한다. 성공한다면 여기에 따르는 병행 가치가 있으면 좋을 것이다. 문화적 측면이 경제와 함께 가면 좋을 것이다. 경주, 합천 등 우리 지역 유교와 불교 문화자산이 어느 지역보다 풍부하지만 제대로 키우질 못하고 있다. 영남일보에서 좀 견인해 주길 기대한다.”

▶대구는 교육적 자산도 크다.

“서울 한두 곳 빼면 대구 경북이 신문화의 효시다. 19세기 말 의료원 개원 때 계성고·신명학교 등 새 교육이 들어왔다. 한강 이남에서 교육의 원산지라 봐도 된다. 지역에 대학도 많지 않나. 그럼에도 이런 가치를 잘 활용하지 않는 것 같다. 교육적 자산에 눈을 돌리면 대구가 문자 그대로 ‘큰 언덕’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청년 이탈이 심각한데 대책은 없을까.

“한국의 고질이다. 서울 아니면 2류 취급한다. 전세계에 이런 국가가 없다. 서울에 다 모여 있다. 서울에서 벗어나려는 노력을 의지적으로 해야 하지만, 선언적으로 될 일은 아니다. 대구 경북이 스스로 매력을 갖춰야 한다. 학생들이 서울로 떠나는 것 자체는 잘못이 아니지 않나. 지역사회가 이들에게 나가지 않아도 할 수 있다는 신념을 심어줘야 하는데 못하고 있다.”

▶영남일보는 강제통폐합, 법정관리 등 커다란 고비를 넘겨 왔다.

“위기를 잘 넘기면 기회가 된다는 말은 아마 신석기 때도 있었을 것이다. 어려움을 거칠수록 단련된다. 철은 녹슨다. 당연하다. 그런데 녹 슬어가면서 속은 더 이상 녹슬지 않는 철이 된다. 영남일보, 그동안 녹슬지 않았나. 그렇기 때문에 더 이상 녹슬지 않는 단단함이 생겼을 것이다. 그동안 고생 많았다. 그 고생이 이제 영남일보의 철갑옷이 될 것이다.”

▶계명대도 올해 창립 120주년을 맞이했다. 총장이 꿈꾸는 계명대의 미래는 어떠한 모습인지 궁금하다.

“학생들에게 ‘최고가 되지 마라’고 가르친다. 최고는 금방 바뀐다. 과학, 미술 등 어떠한 분야라도 ‘누가 최고냐’고 물으면 금방 답이 안 나온다. 대신 ‘하나 밖에 없는 인간이 되라’고 요구한다. 하나밖에 없는 것은 변치 않는다. 최고가 아닌 특별한 인간, 그러한 제자들이 계명대에서 나타나길 원한다. 또 최고는 남의 어깨를 밟고 올라서지만, 하나밖에 없는 인간은 동료가 성장하는 것을 함께 지켜보면서 자신만의 나무를 키워나갈 줄 안다.”

▶마지막으로 남기실 말씀은.

“우리는 언론을 존중하고 존경하고 따르고 싶다. 언론은 보도 기능뿐만 아니라 계몽의 기능을 가지지 않나. 보도로 그치지 말고, 지역사회에 올바른 방향을 제시해 달라. 영남일보가 꼭 그렇게 해달라.”

이효설기자 hobak@yeongn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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