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정래 칼럼] 세월호 이후는 오지 않는다

  • 조정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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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9-04-19   |  발행일 2019-04-19 제27면   |  수정 2019-04-19
[조정래 칼럼] 세월호 이후는 오지 않는다

잔인한 4월인가. 야만의 언어가 난무한다. 한글이 무참하게 유린되고 난도질된다.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언어라는 평가가 무색하다. ‘세월호 유가족들, 자식의 죽음에 대한 세간의 동병상련을 회 쳐 먹고, 찜 쪄 먹고, 그것도 모자라 뼈까지 발라 먹고 진짜 징하게 해 처먹는다’ ‘세월호 그만 우려먹으라 하세요. 이제 징글징글해요’ ‘불쌍한 아이들 욕보이는 짓들이죠’. 세월호 유족들을 겨냥해 자유한국당 전현직 국회의원들이 벌인 모욕과 막말 퍼레이드는 우리의 말문을 막히게 한다. 5·18 망언에 이어 짐승의 언어가 망자를 조롱하고 범접한다.

세월호 희생자 추모 물결을 정면으로 거스르는 세력은 이처럼 세월호 이전이나 이후나 여전하다. 지난 5년간 한결같았다. 김재원 의원은 ‘세월호 특조위는 세금도둑’이라 했고, 김진태 의원은 ‘세월호는 인양하지 맙시다. 괜히 사람만 또 다칩니다’라고 했으며, 또 다른 의원은 세월호 참사를 교통사고에 견주기도 했다. 그러면서 그들은 ‘그만, 잊자’며 국민 피로도를 앞세웠다. 이들의 정치언어가 시궁창 수준인 건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라 새삼스러운 게 없지만, ‘사건’을 ‘사고’로 둔갑시키고 격하하는 인식의 수준 이하와 타인의 상처에 공감하지 못하는 정서적 불통은 인간 이하다. 차마 잊을 수 없는 걸 잊으라고, 앵무새처럼 되뇐다.

더 큰 문제는 ‘사회 4류들’이 만들어낸 이 같은 패러다임에 부지불식간에 끌려들어가는, 알 만한 사람들의 무신경이다. ‘이제, 그만 하자’ ‘생업으로 돌아가자’는 등의 계몽적 문구에 생각없이 얹히는 건 살아남은 자들의 책임을 방기하고 유기하는 불순한 태도다. 이러한 ‘키치적 유형화의 전형’과 ‘유형화된 문법에 저항’하는 일에서부터 비로소 참사의 ‘은폐된 기원’은 찾아지기 시작한다. 세월호 참사를 사고화(事故化)하려는 기도는 희생자 개인의 불운과 불행을 전면에 부각시키며 책임까지 사사화(私事化) 속에 탕진함으로써 사회적 책임의 몫을 희석하고 회피하려는 비겁이다.

진실규명과 책임자 처벌, 그리고 용서도 마찬가지다. 예언자적 글쓰기의 전범을 보이고 있는 철학자 김영민은 ‘용서는 없다’는 짧은 글에서 “너와 나의 상처는, 너와 내가 울고 웃으며 다룰 수 없는 상처는, ‘용서하라’는 것을 도그마(dogma)로 가진 자들의 날름거리는 쇠 혓바닥에 의해 재차 능멸 당한다. 아, 오늘도 조갯살 같은 내 상처를 조개껍질 같은 네 용서가 은폐한다, 조롱한다, 강간한다”고 일갈하며 “오히려 하고 싶어도 할 수 없는 궁지(Aporie) 속에 용서의 비빌이 있다. 용서는 그저 불가능할 것일 뿐이다”고 설파했다. 아우슈비츠가 아직도 아우슈비츠이고, 세월호가 여전히 세월호일 수밖에 없다는 것으로 읽어도 맞춤할 것 같다.

세월호 유가족들은 어떠한가. 상처는 상흔으로나마 남아 영원히 치유되지 않을 터이고, 그들의 시간은 5년 전 4월16일에 멈췄다. 세월호 유가족들과 부대끼며 그들의 이야기를 그린 영화, ‘생일’의 시나리오를 쓰고 연출을 한 이종언 감독은 한 언론 인터뷰에서 “고통스러워하는 한 인간이 상처를 극복하고 치유하는 과정을 그린다기보다 너무 큰 고통을 겪고 있는 한 인간이 그 아픔을 극복하기란 얼마나 어려운가, 그것을 보여주는 데 더 집중했다”고 밝혔다. 살아남은 자들이 망자(亡者)와 유족들에 대한 상응한 예의를 보여주지 못한 채 오히려 상처를 덧나게 하고 있으니 상처의 치유는 입에도 올리기도 민망하다.

세월호 특조위의 진실규명을 방해한 혐의로 재판을 받고 있는 피고인들은 ‘기억이 나지 않는다’며 발뺌으로 일관하고 있다. 그들의 잊고 싶은 어두운 기억은 ‘잊지 말자’는 끊임없는 기억 투쟁을 촉발한다. 기억 전쟁은 불의를 바로잡고 사회를 변혁하는 과정에 봉사해야 한다. 세월호의 정치적 이용이란 혐의가 아무리 짙어져도 진실규명이란 대의명분을 좌초시키는 암초가 돼선 결코 안 된다. 세월호 이후 5년을 보내면서 우리 사회가 더 안전해졌느냐는 물음에 긍정적인 답변을 할 수 없는 지금, 세월호는 인양됐지만 진실은 끌어올려지지 않은 이상, 아무리 ‘국가 개조’를 외치더라도 국민이 안전한 세월호 이후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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