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때 그 감성…LP는 살아있다

  • 이춘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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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9-04-19   |  발행일 2019-04-19 제33면   |  수정 2019-04-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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벚꽃은 휘리릭~. 꽃 진 자리에 꽃보다 더 고혹한 새싹들이 거대한 녹색의 경전을 펼쳐놓는다. 화광(花光) 품은 봄밤은 멋진 LP음반(이하 LP). 봄바람은 턴테이블 카트리지 바늘처럼 그 음반을 긁으면서 한 도시가 감당할 수 있는 만큼의 심금을 선사한다. 밤을 머금은 수성못 호면(湖面)을 보라. 그것 역시 괜찮은 LP다.

LP 산업은 사라졌는데
LP 업소는 오히려 성장
네온사인 간판 불빛·바…
그 시절의 뮤직과 스토리
허전함 채워주는 마법


뮤직은 휴식하는 자의 맘을 쥐락펴락한다. 주말 밤은 단연코 사람보다 뮤직이 갑이다. 라이브뮤직 수준을 보면 한 도시의 문화적 안목이 어느 정도인가를 가늠할 수 있다. 커피로는 뭔가 1% 부족하다. 음악 옆에 술이 없다면 스트레스가 깔끔하게 지워지지 않는다. 뮤지션은 음반을 내고 팬들은 그걸 소비한다. 음반만으로 뭔가 부족하다면? 팬들은 그 뮤지션을 라이브 무대로 부른다. 시민들이 그들을 잘 애용할수록 뮤지션의 실력은 심우주로 뻗어나가 더 깊은 영적파워를 돌려준다. 그런 문화유전자 탓에 미국인은 라이브바에서 블루스·재즈·포크뮤지션을, 영국인은 펍(PUB)에서 비틀스, 퀸 같은 브리티시 록스타를 배양시킬 수 있었다.

지난 주말 나는 대구의 ‘LP ROAD’를 흥얼거리면서 걸었다. 2015년 연재를 시작했다가 동면 중이었던 ‘LP마니아를 찾아서’ 후속편 취재 일환이었다. 동행한 싱어송라이터 신재형, 그리고 TBN 대구교통방송 낭만 DJ로 유명한 김병규·김윤동 등과 함께 이런저런 LP공간을 둘러봤다. 대구가 ‘LP의 성지’ 같았다. 미처 체크해보지 못한 업소들이라서 기대감을 갖고 바라볼 수 있었다.

LP산업은 붕괴됐는데 LP업소는 오히려 더 성장하고 있다는 게 신기해 보였다. 시장에선 퇴출됐지만 되레 아웃됐기에 더욱 빛을 발한다. 그게 ‘아날로그의 저력’이다. LP파워는 결코 과거지향적이 아니다. 미래지향적인 구석이 있다. 지난해 방천시장 김광석길에서 열린 LP축제도 그걸 암시해준다. LP세상에서는 이상하게 클래식이 별로 힘을 발휘하지 못한다. 재즈와 포크, 그리고 그 사이에 록이 존재한다. 재즈는 고독하고 포크는 고고하고 록은 고뇌스럽다. 재즈에는 맥주보다 와인보다 실은 독주 한잔이 제격이다. 포크는 맥주, 록은 맞는 술이 없다. 록 자체가 ‘술’이기 때문이다.

나는 포크가 좋다. 미국 포크뮤직의 자존심으로 불리기도 하는 닐 영의 ‘올드맨(Old man)’을 듣는다. 마법을 거는 듯한 그의 고음은 현재와 미래 때문에 생긴 상처를 과거버전으로 치유해준다. 이런 음악은 카페·레스토랑보다 술기운이 더 농밀하게 파고드는 펍이나 바가 제격. 네온사인 간판 불빛도 봄밤의 우수를 완성시키는 누룩이다.

아날로그 유전자를 품은 LP맨. 이들은 치명적인 트라우마를 갖고 있다. 좀처럼 음악을 벗어나 살기 어렵다. 통기타 가수, 로커 등은 한때 광기를 발휘하다가 사회인으로 잘 변신하는데 LP 마니아들은 희한하게 유물처럼 품고 있던 음반을 앞세워 ‘권토중래’의 마인드로 가게를 연다.

LP 관련 카페·레스토랑·바 등이 대구 전역으로 확산 중이다. 얼추 30개는 될 것 같다. 1980년대 초까지 대구의 웬만한 다방은 모두 DJ박스를 가진 음악다방이었다. 하지만 반주기와 가라오케식 노래방이 급습하면서 음악다방도 된서리를 맞게 된다. 나중에는 디스코텍 시대가 되고 60~70년대를 주름잡았던 통기타라이브는 거의 20년 암흑기를 맞게 된다. 그 암흑기를 극복하기 위해 20여년전 등장한 게 LP업소다.

맨먼저 방문한 곳은 수성못 동쪽 두산동 먹거리촌 북쪽 구역에 있는 ‘스쿨(SCHOOL)’. 지역 LP업소 중에선 맏형격이고 가장 핫한 공간으로 성장했다. 스쿨을 찾아가는 길은 미로를 방불케 한다. 그 언저리 부지는 모두 열한 덩어리로 쪼개져 있다. 중심부에 야외공연장을 축으로 한 원형 교차로가 있다.

스쿨 근처에 ‘리플레이(LEPLAY)’와 ‘ZZ TOP’이 있다. 리플레이는 87년 신촌 기차역 근처(이화여대 후문 쪽)에서 록 카페 ‘ROCK’을 오픈했고 2013년 1만여장의 LP, 2천여장의 CD, 500여장의 영상 디스크를 품고 대구로 온 강호성이 차린 공간이다.

스쿨의 권용한 사장을 만났다. 검정 트레이닝복 차림에 스포츠캡을 푹 눌러쓰고 있었다. 그는 “스쿨로 입장하려면 해가 서산으로 넘어간 뒤라야 제격”이라고 말한다. 파란 네온사인이 인상적인 스쿨의 간판. 이젠 이 거리의 명물이 됐다. 하지만 대낮에는‘생얼’의 여성 같다. 그는 기자에게 그걸 보여주기 싫어했다. 밤의 스쿨을 기다리면서 근처 커피숍에서 그와 커피한담을 나누었다. 지난 시절의 그만의 LP스토리. 결코 빛바래지 않았다. 오히려 광채가 느껴졌다.

글·사진=이춘호기자 leekh@yeongn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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