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찬일의 방방곡곡/길을 걷다] 남평 문씨 인흥 세거지 답사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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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9-04-19   |  발행일 2019-04-19 제37면   |  수정 2019-04-19
文이 흥하는 땅, 文氏가 터잡고 많은 인재 배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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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평문씨 인흥 세거지의 경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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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평문씨 인흥세거지 수백당 정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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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거당 돌담에 있는 아름다운 오죽나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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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봉정사 솟을 대문의 두마리 거북이 빗장 둔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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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거당 대문 안에 있는 토담. 일명 헛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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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평문씨 인흥 세거지의 광거당 정경.

4월은 고스란히 푸른 물결이다. 화원을 지나 인흥 마을에 들어서면서 눈망울 치켜 뜬 들녘이 아뜩하게 푸르다.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인흥 마을로 걷는다. 경주 안압지를 본떠 만든 인흥원 거기에 4월이 있다. 문득 생각하면 4월은 연둣빛 영혼들이다. 그 시리고 아팠던 세월이, 물결을 그리는 바람의 봄이 여기 배송으로 왔구나. 저렇게 달래 냉이 쑥이 자라고 나물 뜯는 여인의 가슴속, 4월의 사랑이 보이지 않게 나를 흔든다.

인흥 마을 동구에서 먼저 사방을 살핀다. 신선이 비파와 거문고를 켠다는 비슬산에서 뻗어나온 천수봉(千壽峰) 기슭에 자리한 남평문씨 세거지. 마을 앞으로 천내천이 흐르고 안산인 함박산도 고즈넉하다. 주산 천수봉이 바가지 모양의 둥근 부귀 봉이고 안산 역시 부드럽고 편안하다. 마을 삼면을 오행의 산들이 둘러싸 장원급제 어사화를 태운 마패의 말발굽 형태다. 풍수지리상 길지 중에 길지다. 한곳 트여진 북서쪽에 더 부는 찬바람이 매섭다. 그쪽에 소나무 비보(裨補) 숲을 만들었다. 이 솔 숲은 들녘과 마을을 구별하는 울타리 역할에 매서운 북서풍을 막아주는 방풍림, 터진 수구를 막아 부(富)를 가두어주는 수구막이 기능을 가졌다. 인흥(仁興)마을은 무(武) 보다 문(文)의 기운이 왕성하다. 그것도 상생(相生) 활인(活人)의 힘이 서린 차원 높은 땅이다.

인흥마을 삼면 둘러싼 오행의 산
어사화 태운 마패의 말발굽 형태
옛 인흥사 절터, 곳곳에 불교 유적
문익점 9세손 문세근이 대구 터전
문세근 9세손 문경호가 화원 옮겨

과거여행 온듯 흙내 가득한 돌담길
광거당 대문 열면 낮은 기와·토담
두마리 거북이 빗장 둔테 ‘귀갑문’
장인 기술에 압도·긴장감 ‘수백당’
민간 최고 수장 8천500책 문중문고


이런 하늘이 점지한 명당을 그냥 두겠는가. 이곳에는 아주 옛날부터 인흥사란 절이 있었다. 불교는 석가모니라는 대의왕(大醫王)이 깨달음이란 약(藥)으로, 생로병사의 고(苦)에 신음하는 병든 중생(衆生)을 치료하고 건져내 영원한 즐거움에 이르게 하는 비할 바 없는 종교다. 동물의 인간을 영원한 생명을 가지는 부처님의 경지까지 도달케 하는 인존(人尊) 내지 인문(人文)의 종교다. 절은 이 땅과 걸맞고 어울린다. 그런 탓인지 고려 말 일연(一然) 스님이 인흥사에 11년간 머무르면서 삼국유사 뼈대에 해당하는 역대 연표를 완성했다고 한다. 인흥 마을은 옛 인흥사 절터에 자리 잡은 만큼 아직도 마을 곳곳에 흩어져 있는 불교 문화유적이 고졸해 탄성이 절로 나오게 하고, 우리에게 ‘나는 무엇이며, 왜 괴로운가?’라는 현존재에 대한 끝없는 의문을 던지게 한다. 그러나 어느 시대인지 몰라도 어느덧 인흥사는 없어지고, 빈 들판이 된 이 땅에, 19세기 중엽 남평 문씨인 문경호(文敬鎬, 1812~1874)가 개기(開基) 입향조가 되어, 처음으로 사람이 살기 시작했다.

인흥(仁興)이란 지명에서 ‘인(仁)은 하늘, 땅, 만물을 하나로 만드는 것’ 또는 ‘온통 상냥하고 순한 것’ ‘어떤 신분의 사람에 대해서도 똑같이 체면을 지키고 면목을 잃지 않는 것’이 ‘어질다’의 뜻이라고 한다. 그리고 흥(興)은 ‘재미나 즐거움이 일어나는 감정’이니, 인흥(仁興)은 ‘어진 감정이 일어나는 것’을 의미한다. 말하자면 문(文)이 크게 흥하는 땅이다. 이곳에 문씨(文氏)가 자리를 잡았으니 이게 어찌 우연이라 하겠는가. 실로 인연의 땅이라 할 수 있다. 이쯤에서 나는 사월이면 나도 모르게 빠져버리는 T·S 엘리엇의 ‘황무지’ 첫 장 죽은 자의 매장 첫 구절이 주문(呪文)처럼 떠오른다. “4월은 가장 잔인한 달. 죽은 땅에서 라일락을 키워내고, 추억과 욕정을 뒤섞고, 잠든 뿌리를 봄비로 깨운다. 겨울은 오히려 따뜻했다. 망각의 눈이 대지를 덮고, 마른 구근으로 가냘픈 생명을 키웠다”를 입술에 굴려본다. 황무지로 변한 현대 물질문명과 인간사회. 4월의 푸른 속잎 돋아나는 나의 마음에 시(詩) ‘황무지’가 생명의 잠언이 된다.

아직도 죽은 땅에서 라일락을 키우고 잠든 뿌리를 봄비로 깨우는 땅과 마을, 인흥이 있다. 이곳에 정착한 남평문씨의 시조 문다성(文多省)은 신라 말 분열된 후삼국을 통일한 고려왕조의 개국벽상공신이며 남평백에 봉해졌다. 전남 나주군 남평면 장자 못가 문암 바위에서 태어났다는 탄생 설화가 있다. 그 후손들은 고려 전기 유력한 문벌귀족으로 성장했다. 고려 의종 명종 때 명신인 충숙공 문극겸(文克謙). 목화씨를 들여와 우리 겨레의 의복 변화와 사회발전에 가히 새 역사를 세우고, 이성계가 조선을 건국하자 고려에 절의를 지켜 은거한 충선공 문익점(文益漸). 고려조의 남평문씨는 학문을 겸비한 덕망의 관료들이 많았고, 지조와 절개를 지키며 역사를 곧게 이끌어온 명문가였다. 조선조에 들어와서도 과거 급제자 38명을 배출했다.

남평문씨가 대구에 온 것은 문익점의 9세손 문세근(文世根) 때부터이고, 대구에서 다시 달성군 화원읍 인흥리로 옮겨 터전을 잡은 것은 문세근의 9세손 입향조 문경호(文敬鎬) 때이다. 남평문씨 본리 세거지는 1975년 경북도 민속자료 제3호로 지정되었다가 달성군이 대구로 편입, 1992년 5월12일 대구시 민속자료 제3호로 재지정되었다. 사람이 거주하는 주택 아홉 대소댁이 그리고 두 재실 광거당과 수봉정사가 井(정)자 구도로 줄맞춰 자리한 것이다. 어른 키를 훌쩍 넘는 흙 돌담길로 들어선다. 흙내 가득하고 새봄 새 꽃봉투 같은 길이다. 흙 담장은 돌 하나 흙 한줌 허투루 흘린 곳이 없다. 시나브로 과거로 여행을 떠난 것 같다. 아름다운 봄꽃과 노랑나비, 거기에 이삼백년 된 소나무 회화나무 은행나무 노거수가 답사자들의 눈자위로 몽환처럼 흘러간다.

광거당에 들른다. 대문 열면 낮은 기와 토담이 보인다. 이 토담은 의미심장하다. 광거당 안을 분리하여 소통공간을 자유롭고 활발하게 한다. 살바람 흐름도 아늑하다. 사물판단을 더디게 하는 여유로움도 있다. 후손들에게 학문과 교양을 가르치고 문중의 공식 행사를 거행한다. 옛터를 살려 정남향이다. 수천(壽泉)이라는 우물과 모과, 매화, 벽오동 나무가 망막에 수묵화를 친다. 광거당 전면 누마루 안쪽에 ‘고산경행(高山景行)’ 행서 편액이 눈에 띈다. 시경(詩經)에서 따온 말이다. ‘높은 산을 우러르고 큰길을 따라가네(高山仰止 景行行之).’ 즉 옛사람 중에 높은 덕이 있는 자 사모하고, 밝은 행실이 있는 자를 본받겠다는 것이다. 그들이 얼마나 덕행에 목말라했는가 글자마다 가슴을 적신다. 수봉정사로 걸음을 옮긴다. 우선 솟을 대문에 두 마리 거북이 빗장 둔테가 있다. 정교한 귀갑문(龜甲門)이다. 장수(長壽)와 음양(陰陽)의 조화를 비는 건(乾)과 곤(坤)의 음양 괘가 새겨져 있다. 굴뚝도 앙상블하다. 원추형 주춧돌 위에 참죽나무 두리기둥, 기둥을 가로 지르는 둥근 굴도리와 서까래 대들보 등, 눈이 화등잔 같아진다. 장인들의 안목과 기술이 곰비임비 정점을 찍는다. 나도 모르게 긴장감이 돌고 압도당한다. 1936년 지은 정사로 수백당(守白堂)이라고도 한다. 흰 것은 하늘의 마음이다. 하늘의 마음은 백성의 마음이다. 즉 사람이 하늘이고, 사람을 지키는 것이 하늘을 지키는 것(守白)이다. 우리는 흰 것, 즉 하늘을 어버이로 하는 백의민족이다. 나름 해석을 한다.

남평문씨 문중문고인 ‘인수 문고’도 관람한다. 8천500책(2만권 분량)을 수장하고 있다. 민간도서로는 전국에서 가장 많은 도서를 갖고 있다. 일개 문중에서 이렇게 거대한 문고(文庫)를 소장하다니, 저절로 고개가 수그러진다. 옛 인흥사부터 사용하였다는 고려정(高麗井)과 죽헌종택 수봉고택 보당고택 약산가 유당가 탄당가 춘정가 사죽헌, 현재 문희갑 전 대구시장이 거주하는 혁채가. 대소 아홉 살림집을 모두 둘러본다. 대구시 소속 강영옥 문화관광 해설사의 안내가 알뜰살뜰했다. 아련한 영남의 젖줄 낙동강이 둘러싼 화원, 하늘의 음악 비(琵)와 슬(瑟)이 울리는 비슬산 자락 생명의 땅에 인흥마을이 있다. 사람이 하늘이고, 인문(人文)이 하늘이다. 인흥마을 답사는 하늘의 사람으로 태어나는 타임머신 여행이었다.

글 = 김찬일 시인 대구 힐링 트레킹 회장 kc12taegu@hanmail.net
사진=김석 대우여행사 이사

☞여행정보

▶트레킹 코스 : 주차장 - 광거당 - 수봉정사 - 인수 문고 - 아홉 대소가 - 주차장

▶문의: 남평 문씨 인흥 세거지 안내 (053)638 - 6407

▶내비 주소 : 대구 달성군 화원읍 인흥 3길 16

▶주위 볼거리 : 송해공원, 화원동산, 디아크, 마비정 벽화마을, 도동서원, 대구과학관, 용연사, 화원 자연휴양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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