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지영의 마음 톡톡] 조안과 콜레트

  • 뉴미디어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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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9-04-19   |  발행일 2019-04-19 제39면   |  수정 2019-04-19
시대가 외면한 두명의 천재 여성작가 이야기
20190419
‘더 와이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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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콜레트’
20190419

여기 남편의 대리 작가로 살아가는 비슷하면서도 다른 두 여인이 있다. 영화 ‘더 와이프’의 조안과 ‘콜레트’의 콜레트다. 조안은 남편의 노벨문학상 수상을 듣고 침대 위에서 남편을 부둥켜안고 펄쩍 펄쩍 뛰면서 “해냈다”며 좋아 어쩔 줄 모른다. 조안은 남편의 시상식에 참가하기 위해 아들과 함께 비행기에 오른다. 여느 부부보다 더 다정하다. 허나 이 부부 사이의 비밀이 서서히 드러난다.

학창시절 “생계가 막막해도 써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영혼이 굶주립니다.” 강의실에서 강의하던 선생의 말에 조안의 눈이 반짝인다. 그녀는 자석에 이끌리듯 유부남 선생을 사랑하게 된다. 어느 날 학교에 초청된 여성작가는 조안에게 서가에 책을 보라며 “저 책들에서 빳빳한 소리가 나죠? 아무도 펼쳐보지 않은 거죠”라 말한다. 여성 작가로서 사는 길은 저렇게 아무도 거들떠보지 않아 장식용으로 남게 된 책과 같다며 찬물을 끼얹는 말을 한 것이다. 조안은 촉망받는 작가지망생이었지만 그 말에 자극받아 작가로서의 길을 포기하고, 선생과 결혼해 그를 유명한 작가로 만드는 일에 전념한다. 그녀가 적극적으로 대필을 주도해 나간다. 조안은 엄마로서 자식들과 시간을 보내는 것보다 방에 들어박혀 하루 7~8시간씩 남편 대신 소설 쓰는 것을 우선시했다.

조안은 자신의 재능으로 남편을 노벨문학상 수상작가의 반열에 올려놓았다. 그녀는 인정을 받고 싶은 욕망을 포기하고 남편의 성공에 대리 만족하는 삶을 선택했다. 인정 욕망을 우회했지만 알고 보니 남편은 무능하고 하는 것 없이 나르시시즘에 빠져있는 사람이었다. 남편은 아내 대신 이름을 얻고 그 명성에 걸맞게 변해 갔다. 자신이 모든 글을 쓴 것처럼 과시하고 위장하며 능숙하게 연기했다. 모든 영광은 남편에게 돌아갔다.


‘더 와이프’ 조안
남편 이름으로 발간한 소설
노벨문학상 조차도 대리만족
단지 글쓰는 것에 기쁨 채워

‘콜레트’ 콜레트
자신이 아닌 남편 명의 출판
베스트셀러 명예는 남편 차지
뒤늦은 깨달음, 새로운 삶 개척

“기회조차 주지 않았던 그시절
재능발휘 제대로 하지못하고
살아간 여성이 얼마나 많았을까”


한편 작가인 아들은 아버지의 평가에 목말라 하며 볼이 부어 툴툴 거리고, 기자는 남편의 전기를 쓰겠다며 시상식까지 따라와 비밀을 캐고 싶어 안달이다. 아주 위태로운 상황에서 조안은 말할 듯하더니 침착하게 품위를 유지하며 위기를 넘긴다. 노벨문학상 수상 소감에서 남편은 아내가 있었기에 오늘의 이런 영광의 자리에 설 수 있었다며 영광을 아내에게 돌린다. 조안은 수상 소감에 자신이 거론된 것이 못마땅해 연회장을 박차고 나온다. 조안은 오랜 세월 쌓였던 앙금이 폭발해 남편과 격한 언쟁을 벌인다. 남편이 “그럼 왜 참고 살았느냐”고 하니 조안은 “나도 모르겠다”고 한다.

콜레트, 그녀는 재능이 아주 많은 사랑스러운 여자다. 그녀의 글쓰기는 자신의 선택이 아니라 남편에 의해서다. 집안 형편이 어렵게 되자 남편 윌리는 콜레트에게 자신에게 말했던 학창시절의 경험을 글로 쓰라고 닦달을 한다. 그녀는 남편에게 기쁨을 주기 위해서 글을 쓴다. ‘학창 시절의 클로딘’은 콜레트가 썼지만 출판계의 일을 하는 윌리의 이름으로 출판되자마자 베스트셀러가 된다. 그녀의 재능을 알아본 남편은 연달아 후속편을 쓰게 하려고, 그녀를 위한다는 명목으로 도심 외곽에 집을 마련해 준다. 그녀를 방에 가두고 하루 4시간씩 쓰라 한다. ‘클로딘’ 연작은 성공적이었다. 소설 속의 주인공 클로딘의 캐릭터를 딴 각양각색의 상품이 출시되면서 이들 부부는 파리 살롱사교계의 중심인물이 된다. 그러나 남편의 사치와 방종, 놀음으로 인해 그 상황은 오래 가지 못하고 이내 경제적 어려움에 처한다.

남편의 바람기를 수시로 눈감아주며 살던 콜레트는 자신이 쓴 클로딘 전집의 판권을 자신 몰래 남편이 출판업자에게 넘긴 것을 알고 분노한다. 그녀는 “당신은 아무것도 모르는 날 당신의 욕망을 실현할 도구로 만들었어. 내가 못 벗어날 줄 알았겠지. 하지만 틀렸어. 내가 바로 클로딘이야. 클로딘은 죽었어. 당신이 배신했지” 하며 이혼을 선언한다. 콜레트는 과감하게 자기의 길을 찾아간다. 아마도 지혜로운 어머니와 동성연인의 조언이 있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이제 바람둥이 네 남편을 벗어나 네 길을 가라”고 콜레트 어머니는 이미 한 세기 전에 딸에게 과감하게 말했다. 참고 살라는 우리나라 어머니들과 달랐다.

조안은 남편을 향한 연민의 정, 그리고 젊은 시절 자신이 선택한 삶에 대한 정당화가 필요했는지도 모른다. 남편이 죽은 후 그녀는 자신의 이름으로 글을 쓰겠지만 과거는 영영 되찾지 못할 것이다. 반면 콜레트는 자신의 소설 속 인물 클로딘처럼 스스로의 삶을 개척해 나갔다. 현실의 콜레트는 영화의 모델인 실존 인물 사도니 가브리엘 콜레트(1873~1954)다. 그녀는 남편이 팔아넘긴 판권을 재판으로 되찾는다. 남편이 불에 태워버리라고 비서에게 준 초고 노트를 후에 돌려받아서 판권을 찾을 수 있었다. 남편과 이혼한 뒤 독자적으로 소설을 발표하고 뮤지컬 배우, 안무가, 연극 연출가 등 여러 방면에서 활약했다. 유머 넘치는 사실주의 작가인 그녀는 70여권의 책을 남겼다.

콜레트와 조안은 재능을 발휘할 기회조차 없던 앞선 시대의 여성을 대표한다. 그 시절 자의식이 강한 여성들이 자아실현을 위해서 글을 쓰더라도 전면에 나설 수 없었다. 재능을 발휘하지 못하고 스쳐간 여성들이 얼마나 많았을까. 이 영화에서는 작가의 삶을 반영했지만 세상에는 다양한 형태로 남편을 위해 헌신하며 남편의 삶에 예속되어 살아가는 경우가 많다. 남편의 성공이 나의 성공이라는 인식을 강요받으면서 말이다. 문학의 세계에도 남녀의 편견이 있다는 것이 씁쓸하다.

조안이나 콜레트 두 여인은 사랑 때문에 그 굴레에 머물러 있었다. 글을 대신 써주면 당신이 행복해 하니까. 그녀들은 썼다. 정말 조안이 남편의 성공에 대리 만족하며 글만 썼을까. 조안이 남편의 명예를 끝까지 지킨 것은 단지 현실적인 편안함을 누리기 위해서였을까. 난 아니라고 본다.

조안의 “나도 모르겠다”는 말. 그냥 넘겨 버릴 수 없다. 글을 쓰지 않으면 안 되는 글쓰는 자의 운명을 가진 그녀는 평생 글을 쓰면서 기쁨을 누리며 살았다. 노벨문학상 앞에서 흔들렸지만 그녀는 스스로 당당했다. 자신은 ‘킹메이커’라고 하지 않았던가. 겉으로 드러난 것만 볼 때 새로운 자아 찾기에 성공한 콜레트를 높이 평가할지 모른다. 진정한 승자는 누구일까.

시인·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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