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주의 영화] 유랑지구

  • 윤용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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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9-04-19   |  발행일 2019-04-19 제42면   |  수정 2019-04-19
中이 구하는 지구종말 위기…할리우드에 도전장
20190419

300년 후엔 태양계가 사라질 위기에 처한 근 미래. 태양이 적색거성화되면서 이미 지구는 영하 70℃의 이상기후와 각종 재해로 생명체가 살 수 없는 척박한 땅이 돼버렸다. 전 세계는 연합정부를 구성해 지구 종말에 공동으로 대처한다. 지하 5㎞ 밑에 도시를 건설해 살아가는 것을 시작으로 지구를 태양계에서 4.2광년 떨어진 곳으로 이동시키는 거대 프로젝트를 시행한다. 이를 위해 지구 곳곳에 150조t의 동력을 발생시킬 수 있는 1만개 추진 엔진도 설치했다. 하지만 지구가 목성의 강한 중력에 이끌리면서 두 행성 간의 충돌이 불가피해졌다.

기발한 상상력이 돋보이는 ‘유랑지구’는 중국이 우주로 시선을 확장해 만든 첫 번째 SF재난 블록버스터다. 중국이 인류를 구한다는 줄거리를 앞세워 할리우드의 전유물로 여겨졌던 미답의 장르에 당당히 도전장을 내밀었다. 이는 인류 최초로 달 뒷면 탐사에 성공하는 등 ‘우주 굴기’로 한껏 기세가 오른 중국이 SF 영화에서도 미국과 당당히 맞서겠다는 의지로 읽힌다.


SF문학상 ‘휴고상’수상 류츠신 동명 소설 원작
동양인 감성 투영 가족애·숭고한 희생정신 채워


할리우드 재난영화의 익숙한 컨벤션을 따르면서도 그들만의 차별화된 영화적 문법과 환경을 녹여낸 시도는 주목할 만하다. 강력한 추진체를 이용해 지구를 태양계 밖으로 이동시키고, 목성과 충돌해 지구가 사라질 운명에 처한 묵시록적 세계는 그동안 수많은 재난영화들이 다뤄온 상상력에서 한 발 더 나아간다. 얼핏 상상 속에서만 가능한 가상의 미래처럼 보이지만 언젠가 인류에 닥칠 현실 세계의 모습일 수 있다는 점에서 섬뜩하다.

‘유랑지구’는 최고 권위의 SF 문학상인 휴고상을 수상한 류츠신의 동명 단편소설을 원작으로 했다. 영화의 중심이라 할 수 있는 재난의 스펙터클에 모든 역량을 집중하는 동시에 단순한 이야기 구조에 살을 붙이는 작업도 빼놓지 않았다. 가족애와 인류애, 영웅주의가 필연적으로 수반되는 재난영화 특유의 서브플롯 역시 다양한 인물을 등장시켜 구축해낸다.

우주정거장 파견단 중령 류배강(오경)이 그 중심이다. 하지만 실질적으로 이야기를 풀어가는 건 동생 한송이(조금맥)와 함께 우연히 구조대에 합류한 류배강의 아들 류치(굴초소)다. 두 남매는 지구 엔진 구조대 중대장 왕레이(이광결) 등과 함께 여타 재난영화의 주인공들처럼 가족과 인류를 위한 고군분투를 펼친다. 중국인이 중심역할을 하는 인류 생존을 위한 마지막 프로젝트를 말이다. 정체절명의 순간에서 보여지는 인간들의 이기주의와 갈등은 대부분 배제됐다. 대신 동양인의 감성을 투영한 가족애와 숭고한 희생정신이 그 자리를 채웠다. 그 과정에서 너무 신파에 매몰되거나 작위적이지 않다는 건 이 영화의 미덕이다. 덕분에 정신없이 이어지는 일련의 시련과 고통 속에서 누가 죽고 누가 살아남는지를 흥미롭게 지켜보게 된다.

‘유랑지구’는 중국의 공상과학이 단순한 문학에서 벗어나 영화를 포함한 복잡한 창작 형태로 진화하고 있음을 여실히 보여준다. 제작비로 투입된 약 5천만달러(약 562억원) 대부분을 시각효과기술(VFX)에 할애했는데, 그 기술력이 자국내 평가처럼 할리우드와 견주어도 모자람이 없다. 결과적으로 ‘유랑지구’는 수려한 중국의 시각효과기술과 이야기 수준을 한 차원 높인 작품으로 기억될 영화다. 중국에서는 ‘특수부대 전랑2’(2017)에 이어 역대 흥행 2위를 기록했다. (장르:SF 등급:12세 관람가)

윤용섭기자 yys@yeongn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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