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산책] 포렌식 아키텍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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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뉴미디어부기자
  • 2019-04-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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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기수<대구예술발전소 예술감독>
미술이란 무엇인가? 여전히 미술을 뛰어난 손기술에 의존하는 회화나 조각 정도로 생각하고 미술관을 찾은 시민이라면 이런 질문을 한번쯤 가져봤을 것이다. 그런데 다양한 일상적, 기술적 매체를 활용한 설치작품이나 비디오, 아카이브, 퍼포먼스 등에 어느 정도 익숙한 사람도 당혹감을 감출 수 없을 만큼의 파격적 작품들이 현대미술관에 지속적으로 출몰하고 있다. 대체 미술이란 무엇일까? 20세기 이래 미술 개념의 비약적 확대는 시대의 묵시록적 변화에 따른 미술의 사회적 역할 확대(요구)와 긴밀하게 맞물려 전개되었다.

1차 세계대전이 한창이던 1910년대 후반 미술계에서는 두 개의 극단적 아방가르드 운동이 공존했다. 하나는 전쟁조차 외면할 만큼 외부 세계와 단절된 채 오로지 심미적 형식의 창조에만 몰두해온 형식주의 모더니즘이고, 다른 하나는 이런 처참한 시대에 미술이 뭔가를 해야 한다는 신념을 갖고 온갖 실험적 미술을 펼친 정치적 아방가르드였다. 후자의 기수가 바로 기존의 형식주의 미술을 부정하며 미술과 사회를 연결시켰던 다다이스트들인데, 이들은 전쟁을 몰고 온 근대문명의 문제를 다루기 위해 근대성을 특징짓는 모든 매체를 미술에 도입했고 콜라주를 비롯한 새로운 전략을 창안했다.

요컨대 미술은 20세기 이래 줄곧 시대의 격변, 즉 2차 세계대전, 68운동, 베를린장벽붕괴 등에 따라 역할을 끊임없이 확대해온 것이다. 현재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에서 ‘불온한 데이터’라는 전시를 하고 있는데 여기에 출품된 작품들은 오늘날 미술의 개념이 동시대 문제를 다루기 위해 얼마나, 어떻게 확대되고 있는지를 예시해준다. 그 중 주목할 만한 것이 포렌식 아키텍처의 두 개의 프로젝트인데, 이들은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분쟁에서 어떻게 국가조직이 사실을 조작, 은폐하고 있는지를 예술적, 건축적, 과학적, 법률적 전문성을 총동원하여 증시하고 있다.

포렌식 아키텍처는 2010년 설립된 독립조사기관으로서 미술가, 건축가, 학자, 영화제작자, 소프트웨어 전문가, 저널리스트, 고고학자, 법률가, 과학자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이들의 목적은 오늘날 국가기관이나 국제기구가 해결하지 못하거나 은폐, 축소해온 국가폭력, 인권유린, 생태계 파괴 따위의 중대 사건의 진실을 밝히거나 새로운 쟁점을 제기하는 데 있다. 누군가는 미술이 이렇게까지 해야 하는가 라고 묻고 싶겠지만 우리는 우선 왜 미술가들이 이런 문제에 주도적으로 나서고 있는지를 곰곰이 생각해 봐야 할 것이다. 이들의 예술적 안식(眼識)에는 진실을 향한 향긋한 가슴만 있기에!김기수<대구예술발전소 예술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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