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프타임] 혁명이 끝난 자리

  • 노진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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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9-04-22   |  발행일 2019-04-22 제30면   |  수정 2019-04-22

휴가기간에 무라카미 하루키 ‘덕후’가 쓴 하루키에 관한 책을 읽었다. 여행지에 들고가도 될 정도로 무게가 가볍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선택한 책이지만, 몇몇 문장은 꽤 공감하며 읽었다.

작가는 하루키가 일본뿐 아니라 우리나라에서도 선풍적인 인기를 끌게 된 이유를 이렇게 설명했다. 혁명이 멈춘 상실감의 시대에 뜻밖의 방식으로 ‘개인’을 이야기한 책이 사람들을 위로해줬기 때문이라고. 거대담론을 이야기하고, 더 나은 세상을 외치다 다시 현실로 돌아왔을 때 느끼는 쓴맛, 더 나아가 왠지 모를 비루함은 시대를 초월한 감정인 것 같다.

몇 해 전 국민들이 촛불을 든 일은 세간에서 혁명이라 부르는 일 중 하나다. 물론 혁명이라고 지칭하는 것이 못마땅한 이들도 있겠지만 어찌됐든 촛불의 외침은 짜릿했다. 두꺼운 헌법 책 속 죽은 단어 같았던 인간의 존엄과 권리가 책 밖을 나와 생생하게 살아났다. 국민은 부정과 부조리를 함께 성토하며 더 나은 세상을 갈망했다.

그 영향을 직접적으로 받은 것이 바로 2017년 실시된 19대 대선이다. 선거는 흥미롭게 진행됐다. 다양한 정치색을 가진 후보군이 다양한 정치성향의 유권자에게 지지를 호소하며 마지막까지 승부를 겨뤘다. 대선후보 TV토론회에 동성애 문제가 등장하는가 하면 유권자들은 저마다 지지 후보를 두고 격론을 벌이기도 했다.

그렇게 치른 선거로 정권은 교체됐고, 많은 국민은 새로운 세상에 대한 희망에 부풀어 있었다. 하지만 새로운 세상은 그리 쉽게 오지 않는 것 같다. 사회개혁의 길은 멀고 장애물은 많아 보인다.

[하프타임] 혁명이 끝난 자리
노진실 정치부 기자

사회개혁을 주도해나가야 할 정치집단의 한쪽은 무조건 반대와 놀부심보로 개혁의 바짓가랑이를 붙들고 있고, 또 다른 한쪽은 내로남불이라는 비판과 자기 모순의 굴레에 갇혀 더 속도를 내지 못하는 모양이다.

인간의 존엄, 인간다운 삶을 위해 이 사회는 열 발짝은 더 나아가야 하지만 한 발짝 나아갔는지 의문이다.

특정 정치집단이 그토록 애지중지하는 자유시장경제는 곪을대로 곪아서 이제 큰 수술이 필요하지만, 아직 메스를 대지도 못했다. 빛이 있으면 어둠도 있듯, 자본주의 시장경제 체제의 이점이 있으면 부작용도 있다. 이에 합리적이고 공정한 배분을 위한 정책이 시도될라치면 그들은 사회주의라고 거품을 문다. 우리나라가, 많은 서민과 노동자의 삶이, 또 TK(대구경북)가 여즉 그대로인 한 이유다.

정치구조는 또 어떠한가. 잠시 가능성을 엿봤던 다당제 구조는 ‘일장춘몽’에 그칠 것 같다. 내년 총선을 앞두고 빠르게 양당제로 회귀하는 분위기다. 정치집단들이 하루가 멀다하고 싸우니 온 동네가 시끄럽다. 구애를 가장한 정략과 선동이 판을 친다.

21대 총선이 1년 앞으로 다가왔다. TK 현역 국회의원을 비롯해 총선 출마 예정자들의 발걸음도 빨라졌다. TK 국회의원들은 왼쪽 가슴에 손을 얹고 대답해야 할 것이다. ‘당신들로 인해 지역민 삶이 얼마나 나아졌나’ ‘당신들에겐 지역민이 우선인가, 소속 정당(혹은 정치인)이 우선인가’ ‘당신들을 뽑은 이 지역은 왜 조금 더 풍요로워지지 못했는가’.

혁명이 끝난 자리에서 지역민은 다시 한 번 선택을 해야 한다. 그 선택이 어떤 방향이 될 지 내심 궁금하다. 누구라도, 어떤 정당이라도 지역민의 선택 앞에 겸허해져야 할 것이다. 노진실 정치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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