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정래 칼럼] 한국당, 패스트트랙에 올라야 한다

  • 조정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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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9-04-26   |  발행일 2019-04-26 제23면   |  수정 2019-04-26
[조정래 칼럼] 한국당, 패스트트랙에 올라야 한다

더불어민주당을 비롯한 여야 4당이 지난 23일 의원총회를 통해 선거제 개편과 사법개혁 관련 법안의 패스트트랙(신속처리 대상 안건 지정) 합의안을 추인했다. 자유한국당은 입법저지 결사항전을 선언하고 청와대 앞 규탄대회와 국회에서 철야농성을 벌이고 주말에는 광화문 장외집회를 예고했다. 한국당의 저지에도 불구하고 정치·사법개혁은 20대 국회의 핵심 과제이자 국민적 염원이란 대의명분을 싣고 법안처리를 최종 목적지로 한 본궤도에 올랐다. 일하는 국회를 보고 싶어하는 시민들은 저 불임의 정치권에서 모처럼 어렵사리 성사시킨 정치·사법 개혁행을 반기고 환영하지만 일방의 폭주 기관차를 보고 싶어하지는 않는다. 또다른 일방의 맹목적 방해에 의한 탈선 역시 못마땅하다고 여길 게 틀림없다.

‘20대 국회는 없다’며 강경투쟁을 예고한 한국당의 모습도 고무적이다. 5·18 망언에 이은 세월호 막말 등으로 자해를 하고 자살골을 넣으며 제1 야당으로서 명색이 무색한 우왕좌왕과 무기력을 벗고 모처럼 야당성을 회복하는 탄력적 행보가 역설적으로 나쁘지 않다는 거다. 거리로 나서고 ‘한국당 지지해 달라는 게 아니라 대한민국을 지켜달라’는 대 국민 호소도 가슴에 와 닿는다. 위기의 이면은 기회일 수 있다. 이참에 한국당이 입법저지 투쟁에 나서면서 대대적 세몰이로 보수 결집을 공고히 하고, 그 여세를 몰아 여야의 현 정치지형에 균열과 틈을 내고 확대해 자연스레 정계개편을 성사시키는 시나리오를 써가면 금상첨화 아닐까.

투쟁을 통해 한국당이 얻을 이익은 그러나 딱 거기까지다. 기실 한국당은 패스트트랙을 통한 입법 절차를 저지할 마땅한 수단이 없다. 딜레마다. ‘의원직 사퇴’ 카드는 의원들의 뜻을 모으기 어려워 현실성이 낮다. 각자도생, 모래알처럼 지리멸렬의 모습을 보여 온 한국당이 어느날 갑자기 일사불란한 대오로 건곤일척의 과감한 결단과 결행을 감행할 것으로 기대되지 않는다. 자칫 칼을 뽑았다가 썩은 무라도 베는 결기마저 보여주지 못하면 ‘정치쇼’로 치부되기 십상이다. 정개특위와 사법개혁특위를 물리적으로 원천봉쇄하는 방안도 구태이긴 마찬가지. 되레 구시대적 ‘적폐’로 몰리며 여론의 역풍을 맞을 수도 있다. 이래저래 한국당의 입지는 곤궁하다.

장외투쟁마저 한시적이고 적극적인 대안이 되기 어렵다면 차선의 선택은 패스트트랙에 적극적으로 타는 건 어떤가. 일정 기간 강경투쟁은 대오와 전열 정비를 위해 꼭 필요하다. 하지만 결국 장기적으로는 정치·사법 개혁에 대한 대안을 당론으로 내놓아야 한다. 여론전에서도 밀리지 않으면서 외연을 확장할 수 있는 길이고, 일석이조의 효과를 얻을 수 있는 만큼 주저할 이유가 없다. 문희상 국회의장이 패스트트랙 중에도 여야가 합의에 이를 수 있도록 권한을 행사하겠다는 의지를 천명하고 있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특히 선거제는 합의에 의해 개정돼 온 게 지금까지 관행이고 최선의 방책이라는 충고는 적실하다.

정략에서는 졌고, 정국 주도권도 뺏긴 마당이지만 그러나 반전의 묘수 또한 없지 않을 터이다. 바로 선거제와 불가분의 관계를 맺고 있는 개헌론을 들고 나와 뒤집기를 시도해 볼 만하다. 연동형 비례대표제를 골간으로 하는 선거제 개편안은 다당제를 대간(大幹)으로 상정한다. 현행 대통령제는 소선거구제를 통한 양당제와 맞물려야 잘 구동된다. 특히 한국처럼 행정 사법을 넘어 사실상 입법까지 장악하려는 제왕적 대통령제 아래에서 다당제는, 한국당 나경원 원내대표가 ‘연동형 비례대표제가 되면 다당제가 아니라 여당과 여당 1·2·3중대만 생겨 좌파연합 정당만 있을 것’이라고 설파했듯, 정략의 희생양으로 악용되기 쉽다.

여론, 특히 보수의 지지를 얻을 여론전과 별개로 정치·사법 개혁과 개헌을 연계하는 것은 정략적으로도 최상의 전략일 뿐만 아니라 정책적으로도 정국의 주도권을 되찾아오는 최선의 방책이다. 개헌은 87년 민주화 이후 민주화를 제도적으로 재정비하는 정치적 과제이자 국민적 염원이다. 보수를 통합하고 국민과 윈윈하는 길이라면 한국당이 개헌의 기치를 패스트트랙에 올리는 게 경색된 정국의 돌파구를 여는 일대 결단이자 패스트트랙을 넘어서는 ‘패스트’ 전략이라 할 만하지 않은가.논설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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