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가 주택에 살아보니…

  • 김수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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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9-04-26   |  발행일 2019-04-26 제34면   |  수정 2019-04-26
이른 아침·늦은 밤에도 세탁기 돌리기, 마늘 찧기
잔디밭 잡초 제거·재활용품 수거문제 다소 불편

20년 넘게 아파트에 살았던 기자 역시 얼마전 주택살이에 가세했다.

단독주택으로 이사온지 한달이 지났는데도 아직 아파트의 생활 습관을 버리지 못하고 있다. 집안을 걸을 때도 늘 발에 힘이 들어가지 않도록 조심한다. 세탁기는 밤 9시 이후에는 왠지 가동시키면 안될 것 같은 압박감에 시달린다. 마늘을 찧을 때도 시계부터 본다. 이른 아침이나 늦은 저녁에는 마늘을 찧거나 칼질을 심하게 하면 안될 것 같은 불안감이 스며온다. 아파트 생활을 꽤 오랫동안 해왔으니 그동안의 습관을 한달 만에 바꾸기가 쉽지 않은 것도 당연하다.

하지만 며칠 전부터는 이런 압박감이 조금 느슨해졌다. 실내화를 끌고 다니면서 마음껏 걸어도 되고 뛰는 것도 가능하다는 사실을 몸이 슬슬 깨닫기 시작한 듯 하다. 빨래도, 설거지도 잠이 빨리 깨면 이른 아침에도 하고 밀린 빨래가 많으면 밤 12시가 넘어서도 마음껏 세탁기를 돌린다. 늘 남을 의식하고 살았던 생활에서 온전히 나만의 공간을 가진듯한 아늑함에 빠져든다.

이런 편리함이 공짜는 아니다. 편한 데가 있는 만큼 내가 책임지고 관리해야 할 부분도 많아졌다. 아침 일찍 일어나도 할 일이 넘쳐난다. 누군가 주택생활이 직장여성, 특히 나이 오십이 넘은 중년여성에게는 맞지 않다고 주택살이 결심을 한 나를 말리기도 했다. 직장일만 해도 바쁜데 집안일까지 더 신경을 써야 되는, 아파트에 비해서 2~3배 할 일이 많다는 사실도 몇번이나 꼬집어 말했다. 주택에 가면 결국 후회를 할 것이라는 엄포를 놓기도 했다.

사실 아파트는 내부만 관리하면 되는데 주택은 내부는 물론 외부까지, 특히 마당이라는 전혀 생각하지도 못한 부분까지 관리해야 하니 할 일이 많을 수밖에 없다. 마당만이 아니다. 주택에는 이런저런 창고들이 많다. 창고가 크게 쓰지않는 잡다한 물건들을 보관하기에는 좋지만 이것 역시 사람의 손길이 가지 않으면 전혀 쓸모없는 공간이 되어버린다.

특히 한 친구는 “주택은 관리해야 할 일도 많은 데다 방범도 걱정이고 집 값도 늘 제자리 걸음인데 왜 그리 이사를 가느냐”며 이해를 못하겠다는 표정에 혀까지 끌끌 찼다. 어리석은 판단이라는 뉘앙스가 강하게 전해졌다. 모두 나를 위한 조언이기에 그동안 여러 차례 주택으로의 이동을 결심했지만 실행에 옮기지를 못했다. 주택에 대한 로망이 있었지만 뒷감당이 안되기 때문에 현실적 선택을 한 것이다.

물론 그들의 말이 틀리진 않았다. 마당 관리만 해도 보통 일이 아니다. 남들에게 보기 좋네 라는 한마디 말을 위해서 잔디 가꾸는데 많은 공을 들여야 한다. 수시로 잡초를 뽑아야 하고 잔디에 물도 줘야 한다. 공원에 있는 잔디밭에 앉을 때는 잔디만 있는 줄 알았는데 내 집 마당의 잔디밭에는 웬 이름 모를 풀들이 그리 많은지…. 잔디는 거북처럼 더디 자라는데 잡초는 토끼처럼 하루가 다르게 쑥쑥 자란다. 1~2주일 소홀하면 잡초들이 잔디를 눌러깔고 앉아있다.

주택살이에서 불편한 점 중 또 하나는 쓰레기배출이라는 이야기를 많이 한다. 이사를 온 뒤 며칠 지나지 않아 쓰레기 때문에 작은 해프닝이 벌어졌다. 주택으로 이사를 오기 전부터 쓰레기 버리는 일이 골칫거리가 될 것이란 말을 많이 들어왔던지라 신경을 써가며 음식물쓰레기, 종량제봉투, 재활용품 등으로 잘 구분한 뒤 내놓으라는 요일에 맞춰 집앞에 놔두었다. 하지만 오전 7시쯤 되어 나가니 음식물쓰레기, 종량제봉투에 담긴 것만 수거해가고 재활용품은 그대로 있었다. 무엇이 잘못된 것인지 물어볼 데도 없고 이것저것 생각해봤지만 결론이 잘 나지 않아 그다음 날에는 재활용품을 좀 더 세밀하게 구분하고 종이는 잘 펴서 정리해 내놨으나 여전히 그 자리를 차고 앉아있었다. 며칠이 지난 뒤 알게 된 사실. 음식물쓰레기, 종량제봉투는 일찍 수거해가는데 재활용품은 나름의 방식으로 구분해서 느지막이 가져간다.

그래도 주택살이가 나쁘진 않다. 사람 사는 냄새가 나고 자연과 함께하는 삶이라 정겹다. 쉽지 않은 결정이었지만 결과는 대체로 만족스럽다.

김수영기자 sykim@yeongn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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