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山寺미학 .5] 산사 산책...충만한 한가함…茶 한잔 청해도 스님은 마다하지 않네

  • 김봉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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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9-05-16 07:59  |  수정 2021-07-06 10:33  |  발행일 2019-05-16 제22면
20190516
호젓한 산사는 각박한 일상을 사는 현대인들이 심신의 활력을 되찾는 데 큰 도움을 주는 다양한 아름다움을 지니고 있다. 논산 쌍계사 대웅전 앞에서 풀을 뽑고 있는 스님.

지난달 하순 평일 낮에 취재를 겸해 논산의 쌍계사를 찾아갔다. 가본 적이 없는 사찰이다. 논산에는 마침 봄비가 부슬부슬 내리고 있었다. 쌍계사는 논산시 양촌면 불명산(佛明山) 동쪽 기슭에 자리하고 있다. 인적이 없는 들길과 산속 숲길을 따라 천천히 차를 몰아 쌍계사 봉황루 아래에 도착했다. 봄비에 떨어진 산벚나무 연분홍 꽃잎이 땅바닥 여기저기를 수놓고 있고, 봄비를 맞아 더욱 생기 넘치는 신록이 옅은 안개 속에 환상적인 풍경을 만들고 있었다. 봉황루에 올라 그런 풍광을 둘러보니 눈길 따라 마음이 절로 신록의 기운 속으로 빨려 들어갔다.

부슬부슬 비 내리는 논산 쌍계사
신록에 생기 넘쳐 환상적인 풍경
대웅전 안에선 청아한 목탁소리
죽음의 고통 덜어주는 기둥 각별
마당 한쪽 ‘연리근’ 고목 한그루
주지와 공양하며 이런저런 대화
자신 되돌아보고 마음 가라앉혀

오전 11시경이었다. 봉황루 맞은편의 대웅전 안에서 스님 한 분이 목탁을 두드리며 예불을 드리고 있는 소리가 청아하게 들려왔다. 누각에서 내려와 넓은 대웅전 앞마당을 거닐며 그 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부슬비 내리는, 조용하고 한적한 산사를 거닐며 듣는 염불 소리에 마음이 저절로 정화되었다.

쌍계사는 봉황루 아래를 지나 마당으로 올라서면 커다란 대웅전(전면 5칸 측면 3칸)만 홀로 덩그렇게 서 있는 모습으로 다가온다. 작은 명부전과 나한전 등이 대웅전 오른쪽에 있지만. 푸른 잔디와 잡초, 이름모를 풀꽃들이 수놓고 있는 마당 한쪽에는 커다란 느티나무 고목 한 그루가 서 있다. 뿌리가 나중에 합쳐진 연리근(連理根) 나무라고 한다.

웅장하고 잘 생긴 대웅전에 가까이 다가가 본다. 우선 앞쪽 다섯 칸 문짝 모두를 장식하고 있는 꽃살문이 눈길을 끈다. 칸 별로 국화, 무궁화, 모란, 연꽃, 작약 등 각기 다른 꽃으로 되어 있다. 누구나 보면 매료될 만하다. 측면 출입구인 한쪽 협문은 외 문짝인데 위칸에 활짝 핀 꽃송이와 꽃봉오리, 줄기와 잎이 대칭으로 아름답게 새겨져 있다. 보기 드문 꽃살문인데, 모란인 것 같다.

◆봄비에 젖은 논산 쌍계사

거의 다듬지 않은 자연석 주춧돌 위에 세워진 굵은 기둥들을 보는 맛도 각별하다. 기둥은 껍질만 벗겨낸 듯 대충 다듬어 각기 굵기와 모양도 다르다. 그중 한 기둥은 칡덩굴 기둥이라고 한다. 아름드리 기둥인데, 믿기가 어려웠다. 다른 기둥과 비교해 살펴보면 나무결이 다른 것을 확인할 수 있지만, 실제 칡덩굴 기둥인지는 알 수가 없다.

이 기둥과 관련해 이런 이야기가 전한다. 윤달이 드는 해에 이 기둥을 안고 기도하면 죽을 때 고통없이, 오래 앓지 않고 저 세상으로 간다고 한다. 한 번을 안으면 하루 아프고, 세 번 안으면 사흘만 앓다가 간다는 것이다. 그리고 저승에 가면 저승사자가 논산 쌍계사에 갔다가 왔느냐고 물어본다는 이야기가 함께 전한다.

쌍계사 주지 종봉 스님은 칡덩굴인지 여부는 기둥의 성분을 전문기관에 의뢰해 분석해 보면 알 수야 있겠지만, 굳이 그럴 필요가 있겠나 싶어 분석해보지는 않았다고 한다. 그러면서 그 기둥을 보면 칡넝쿨이 감아있었던 자국으로 보이는 흔적이 있는데, 그래서 칡덩굴 기둥이라는 이야기가 전해지게 됐는지도 모르겠다고 했다.

‘깨끗함이 극에 이르면 그 빛이 걸림이 없으니(淨極光通達)/ 온 허공을 머금고 고요하게 비치네(寂照含虛空)/ 물러나와 세상 일을 돌아보니(却來觀世間)/ 마치 꿈 속의 일과 같구나(猶如夢中事)’

대웅전에 걸린 주련 글귀의 내용이다. 요즘은 한자로 된 주련의 내용을 한글로 풀이해 안내하는 곳이 많다. 이런 주련의 내용을 한 번 읽어보는 것도 좋을 것이다.

지금의 대웅전은 1738년에 건립된 건물이며, 보물 제408호로 지정돼 있다. 꽃살문과 닫집 등이 특히 유명하다.

염불이 끝난 뒤 대웅전 안으로 들어가보았다. 세 개의 불상이 모셔져 있다. 그 뒤로는 탱화가, 위로는 눈길을 빼앗는 멋진 닫집으로 장엄돼 있다. 경건한 마음이 저절로 우러나게 하는 분위기다. 마침 절에 계시는 듯한 여자 분이 들어오길래 스님 계시면 잠깐 이야기를 나누고 싶다고 말했다. 가능할 것이라고 했다. 잠시 후 다시 와서 종무실로 오라고 전했다.

주지 스님과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다가 스님이 지금 공양(식사)시간이니 같이 가자고 했다. 식당 방으로 가니 한 스님이 식사를 하고 있었다. 스님이 주방을 담당하는 할머니가 대구사람이라고 이야기했고, 할머니는 반갑게 맞으며 많이 먹으라고 권했다. 밥을 먹을 만큼 담고 국 한 그릇을 떠서 스님이 식사하고 있는 밥상에 같이 앉아 셋이 식사를 했다. 김치와 나물 세 가지, 제피 잎 무침이 전부였지만 오랜만에 몸과 마음이 편해지는 식사를 했다.

이 절에는 스님 두 분과 공양을 담당하는 할머니, 그리고 종무를 맡아보는 아주머니, 네 사람이 식구인 듯했다. 식사 후 잠시 더 이야기를 나누다 인사를 하고 사찰을 나섰다. 나오다가 길 옆에 부도밭(스님들의 유골을 안치한 부도를 모아둔 곳)이 보이기에 차를 세운 뒤 산자락 숲속에 있는 다양한 부도를 보며 잠시 삶과 죽음을 생각해보기도 했다.

쌍계사는 터는 넓은 편이지만 규모는 그리 크지 않다. 하지만 볼 것도 많고 한적해서 심신을 재충전하고 자신을 돌아보기 좋은 사찰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쌍계사를 나와 한 번 가본 적이 있는 완주 화암사를 찾아 비안개 가득한 산사와 주위 자연이 어우러져 만들어내는 풍경에 흠뻑 빠져 있다 돌아왔다.

◆호젓한 산사가 선사하는 힐링

호젓한 산사는 이처럼 일상에서는 누리기 어려운 심신 충전의 시간을 선사한다. 힐링의 순간들을 만끽할 수 있다.

산사는 일주문, 천왕문, 불이문 등 많은 문이 있지만 모두 문짝은 없다. 법당도 문은 있지만 열려 있다. 이런 산사는 오는 사람 막지 않고, 가는 사람 잡지 않는다. 홀로 거닐다가 사라져도 상관 없고, 스님과 이야기를 나누고 싶으면 차 한 잔 하자고 해도 된다. 특별한 일 없으면 다 응해준다. 식사 때가 되어 밥을 먹고 싶으면 한 그릇 청해도 된다. 산사에 출입하는 데는 출입증이 필요하지도 않고, 불교도가 아니어도 상관없다. 인간사로 인한 마음의 괴로움과 스트레스는 모두 마음을 잘 다스리지 못해 초래하는 것인 만큼 마음공부 전문가인 스님과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해결 실마리를 찾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

‘마음이 흔들리면, 활 그림자도 의심하여 뱀이 되고, 쓰러진 돌도 엎드린 범으로 보이게 된다. 이런 중에 있는 기운은 모두 죽이는 기운이다. 마음이 가라앉으면, 사나운 사람도 순한 갈매기로 바뀌고, 개구리 소리도 음악으로 들린다. 그러면 이르는 곳마다 참다운 기틀을 보게 된다.’

‘채근담’에 나오는 내용이다. 누구나 마음이 가라앉은 상태를 유지하길 바랄 것이다. 자연과 인공이 조화된 아름다움과 멋이 있고, 한가함이 있는 산사. 귀한 문화재도 있고, 자신을 돌아보게 하는 가르침도 있다. 호젓한 산사에서 각자에게 맞는 방식으로 시간을 보내는 것은 마음을 가라앉히는 힘을 기르는 좋은 방법 중 하나가 될 것이다.

글·사진=김봉규기자 bgkim@yeongnam.com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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