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산책] 스승과 제자의 제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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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9-05-16 08:01  |  수정 2019-05-16 08:01  |  발행일 2019-05-16 제23면
[문화산책] 스승과 제자의 제자

남들보다 조금 늦게 클라리넷 전공을 결심한 필자에게는 최고의 스승님이 계신다. 인생의 전환점에서 나를 제자로 받아주고 클라리넷의 세계로 입문시켜 준 스승님을 생각할 때마다 한없이 감사한 마음뿐이다. 스승님은 대구시향의 수석 주자이고 조금은 무서운 외모에 풍채도 있어 존재만으로도 카리스마가 넘치는 분이셨다. 대학입시를 1년 남겨두고 스승님 연습실 건물 안 작은방에서 열심히 연습을 했다. 그러나 마음처럼 실력은 늘지 않고 레슨을 받는 날에는 혼이 나기 일쑤였다. 내방은 스승님방에서도 소리가 들릴 만큼 가까워서 자칫 틀리게 연습을 할 때는 내 방으로 달려와 호통을 치며 다시 가르쳐 주기를 하루에도 몇 번씩 열정을 다해 가르쳐 주셨다.

마침내 필자는 원하던 대학교에 합격하고 졸업 후 유학을 떠나 공부를 마친 뒤 귀국, 연주자로 활동하고 있다. 귀국독주회를 마치고 감사의 인사를 하던 중 스승님을 부르는데 갑자기 목이 메어 말을 잇기가 힘들 만큼 가슴에 북받쳐 오르는 감정을 이기지 못해 눈물을 글썽였다. 대학 입시를 준비하기에 너무 늦었던 나를 제자로 받아주지 않았다면 과연 내가 이 자리에 설 수 있었을까. 요즘도 가끔 스승님을 뵙고 식사도 같이하고 대화도 나눈다. 언제나 나를 믿어주고 응원해주는 스승님이 계시기에 참으로 든든하다.

필자에게도 제자들이 있는데 그중 올해 대학생이 된 제자가 있다. 고3이 되었을 때 연습실을 나의 옆방으로 정해주고 스파르타식으로 연습을 시켰다. 각자 방이 있지만 말소리도 들릴 만큼, 벽만 두고 있지 같은 공간에 있는 것과 다름이 없었다. 제자가 연습을 할 때 실수를 반복할 때면 똑똑 벽을 치기도 하고, 도저히 안 될 때는 제자의 방으로 가서 가르쳐 주곤 하였다. 입시를 앞두고 제자와 나의 신경이 날카로워진 어느날, 묵묵히 나를 잘 따라와주던 제자가 눈물을 뚝뚝 흘리며 배우는 것이 너무 힘들다고 호소했다. 큰 충격이었다. 그때 생각이 났다. 나의 스승님은 지금의 내 제자보다 훨씬 실력이 부족한 나를 인내하며 가르쳐 주고 대학에 합격할 수 있도록 해줬는데, 지금의 나는 왜 제자의 마음을 아프게 하고 있는 것인가! 실력뿐만 아니라 인격적으로 훌륭하신 스승님을 떠올리며 철저한 반성과 새로운 다짐으로 제자를 가르쳤고, 열심히 노력해준 제자는 당당하게 대학에 합격했다.

가르침에도 대물림이 있는 것 같다. 좋은 스승에게 배운 제자가 훌륭한 사람이 될 수 있지 않은가. 스승님의 참된 가르침이 아직도 내 가슴에 남아있는 것처럼 훗날에 나 또한 제자들에게 참된 스승으로 기억되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정혜진 (클라리네티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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