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요시선] 세상의 모든 차별을 이기는 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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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9-05-16   |  발행일 2019-05-16 제30면   |  수정 2019-05-16
내 안서 자라는 고질병 차별
당하는 이들은 희망이 썩고
괴물로 돼 악을 확대재생산
끝없는 성찰과 자기검열로
서로의 불행과 연대 실천을
20190516
김미정 극단 구리거울 대표 연출평론가

자신의 존재감을 확인하는 아주 못된 방식이 자신과 타인 사이에 금을 긋고 금 너머의 사람들을 ‘그들’이라 구별하고는, ‘우리’만이 정상이고 ‘우리’만이 유일한 기준이라 우기며 ‘하후하박(何厚何薄)’하는 짓이다. 치졸하기 짝이 없는 이 계략은 타인을 짓밟고서야 우월감을 느끼는 허약하고 뒤틀린 불구의 영혼에서 비롯된다.

차별은 괴물을 낳는다. 부당하게 당하는 차별로 인해 입은 영혼의 생채기는 곪아서 순수와 희망을 썩어 들어가게 만든다. 차별은 결국 인간의 존엄성을 해치는 행위다. 프랑켄슈타인도 자신이 인격을 지닌 생명이 아니라 실험의 대상에 불과했으며 쓸모를 다해 버림받았다고 느끼는 순간 위험한 괴물로 변한다. 차별의 이유는 많다. 여성이라고, 유색인종이라고, 가난하다고, 못 배웠다고 폭력과 억압의 대상이 된다. 연극 ‘괴벨스극장’은 절름발이라 따돌림과 무시를 당한 괴벨스가 히틀러의 충견이 되어 유대인을 차별하는 폭력에 앞장서는 이야기다. 악은 빠른 속도로 확대재생산된다. 화장을 하지 않는다고 학급아이들에게 따돌림 받는 초등학교 2학년이 있는가하면, 아파트 평수나 임대여부로 친구의 자격이 결정된다. 연극 ‘철가방 추격작전’은 주인공 정훈이 영구임대아파트에 산다는 이유로 학교에서 무시와 차별을 받는 상황에서 시작된다. 결국 가출해 책가방 대신 철가방을 들게 된 정훈을 다시 학교로 데려오기 위해 그의 행방을 쫓는 담임선생님을 둘러싼 이야기다. 영구아파트와 가출 청소년 문제를 둘러싼 편견을 수사 일기형식을 빌려 유머러스하게 풀어가지만 뒷맛은 쓰다. 다양한 층위의 차이가 담긴 네모 난 공간을 둘러싼 이 사건은 우리 안에 내재된 편견과 차별을 들추어내기 때문이다.

세상의 모든 차별은 내 안에서 자라는 고질병이다. 우리는 숱한 것들에 선을 긋고 프레임을 나누어 ‘그들’을 박해한다. 하지만 우리도 어느 순간 ‘그들’로 전락해 박해와 차별을 받을 수 있다. 차별에 시달리던 ‘그들’이 차별을 떨치자마자 ‘우리’가 되어 ‘그들’이 된 ‘우리’를 역차별하기도 한다. 차별근성을 품고 있는 한, 가해자와 피해자 모두 괴물이 된다. 흑인노예의 후손으로 노벨문학상을 받은 토니 모리슨은 소설 ‘파라다이스’에서 차별 없는 낙원의 건설자가 차별의 집행자로 전락한 끔찍한 아이러니를 고발한다.

모리슨은 자유를 찾아 북으로 탈출한 흑인노예들의 고통스러운 여정을 추적한다. 낮에는 숨고 밤에는 걷다 어느 흑인 마을에 도착한 이들은 안도의 한숨을 쉬며 하룻밤 묵을 수 있는 방을 청한다. 하지만 주민들은 자신들보다 더 검은 피부를 가진 이들이라는 이유로 외양간을 내어준다. 우여곡절 끝에 탈출에 성공한 이들은 가장 검은 ‘제7 암층’의 피부색을 가진 사람만 머무는 천국 ‘루비’를 건설한다. 그런데 상처 입은 여자들이 마을 외곽 수도원에 들어와 살면서 외부와 접촉을 차단한 채 안전과 평화를 유지하던 공동체가 불안에 싸인다. 곧 수녀원은 마을의 혈통과 결속을 해치는 악의 원천으로 지목되고, 수녀원에서 총소리가 난다.

토니 모리슨은 ‘파라다이스’를 통해 차별이라는 고질병과 이별할 수 있는지 묻는다. 그 답은 끝없는 성찰과 자기검열이며, 공감과 연대를 실천하는 일이다. 서로의 불행과 연대하는 순간 누군가의 희망이 되고 자유를 나누게 되는 것이다. 125주년을 맞은 동학혁명은 양반들의 착취와 부당한 차별에 항거하는 농민혁명으로 전국적 연대의 실천이었다는 점에서 의미가 깊다. 올해 아카데미 작품상을 수상한 영화 ‘그린 북’은 흑인 피아니스트와 이탈리아계 이민자가 서로를 이해하고 연대해 가는 과정을 유머러스하게 그리고 있다. 내 영혼이 비틀어져 괴물이 되기 전 매일 아침 곰팡이 핀 심장을 꺼내어 말리자. 그리고 세상의 모든 부당한 차별에 저항하기 위해 손을 맞잡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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