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생 친필 추정 碑文 김천 수도암서 발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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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9-05-17


박홍국 위덕대박물관장 주장

“‘도선국사비’서 22자 판독

현존하는 김생의 유일한 친필”

박홍국 위덕대박물관장이 김천 청암사 부속 암자인 수도암 약광전 앞 ‘도선국사비’에서 신라 명필 김생이 쓴 것으로 추정되는 글씨 22자를 판독했다고 16일 밝혔다. 박 관장이 수도암 비석 탁본을 뜨고 있다. <위덕대박물관 제공>
글씨에 몰두해 입신(立神)의 경지에 올랐다고 전하는 신라 명필 김생(711∼?)이 쓴 것으로 추정되는 명문이 발견됐다.

김생 글씨는 그가 죽은 뒤인 954년에 승려 단목이 집자(集字)해 만든 보물 제1877호 ‘봉화 태자사 낭공대사탑비’에 있으나, 진적(眞蹟·실제 필적)은 현존하지 않는다. 이러한 상황에서 김생 친필로 보이는 글씨가 나타나 학계 이목이 쏠릴 것으로 전망된다.

불교고고학을 전공한 박홍국 위덕대박물관장은 16일 “김천 청암사 부속 암자인 수도암 약광전 앞 ‘도선국사비’에서 글자 22자를 판독했다"며 “글씨는 김생의 필적으로 판단된다"고 밝혔다.

재질이 화강암인 이 비석은 높이 177㎝, 너비 60∼61㎝, 두께 42∼44㎝ 크기다.

일제강점기에 새긴 것으로 짐작되는 ‘창주도선국사’라는 커다란 글자 때문에 잘 보이지 않지만, 본래는 세로 길이 4∼5.5㎝인 글자를 200자 정도 새겼다고 박 관장은 설명했다.

비문은 8행으로, 행마다 26자가 있다. 박 관장이 확인한 글자는 7행 ‘입차비야(立此碑也)’를 비롯해 1행 ‘부진(夫眞)’, 2행 ‘불은(佛恩)’과 ‘성덕(聖德)’, 3행 ‘산밀(山密)’ 등이다.

박 관장은 “비석의 표면 풍화가 심하고 색상이 밝아 명문을 판독하기 어렵다”며 “‘창주도선국사’라는 글씨 때문에 옛 글자 50여 자가 사라졌다"고 말했다.

서예사를 연구해 박사학위를 받은 정현숙 원광대 서예문화연구소 연구위원은 박 관장과 함께 비석을 조사한 뒤 “전체적으로 북위풍 해서(정자체)로 썼는데, 행서(정자체와 흘림체의 중간)의 필의가 많다"면서 “태자사비와 글자가 거의 같다"고 주장했다.

최근 태자사비 명문 3천여 자를 모두 분석한 정 위원은 “수도암비는 7행 대(大)자의 마지막 획을 약간 아래로 처지는 점으로 처리했는데, 이는 태자사비와 매우 비슷하다"며 “비(碑)자와 야(也)자도 태자사비와 닮았다"고 설명했다. 그는 이어 “수도암비 북위풍 해서가 태자사비 글씨보다 더 수려하고 전체적인 흐름이 자연스럽다"며 “수도암비 글씨는 현존하는 김생의 유일한 친필로 봐도 무방하며, 태자사비의 원본 중 하나로 간주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비석이 있는 수도암은 해발고도 약 970m에 있으며, 도선국사가 859년 창건했다고 하나 6·25전쟁 때 건물이 전소됐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