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와 세상] 신기술이 발아하기 위해서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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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9-05-17   |  발행일 2019-05-17 제22면   |  수정 2019-05-17
신기술 선택 제조사의 손실
보장해주는 정책 갖출 필요
규제샌드박스도 활용해야
승자독식의 냉혹한 경쟁속
생태계 주체 함께 움직여야
[경제와 세상] 신기술이 발아하기 위해서는
전진우 한국로봇산업진흥원 정책기획실장

‘발아(發芽)’의 사전적 정의는 적합한 조건 속에서 씨가 발달하여 식물로 자라는 과정을 말한다. 여름날 튼실하고도 푸르른 성체가 되기 위해서 한겨울의 매서운 추위도 견디고 씨앗을 먹으려는 포식자들로부터도 살아 남아야 한다. 발아하기 좋은 조건은 이러한 외부적 요인이 최소화된 환경일 것이다. 물론 성체로 자란 다음에도 경쟁은 끊임없이 이뤄진다. 운 좋게 떡잎을 만들고 뿌리에 힘을 얻어 곧게 자랐지만, 더 크고 넓은 잎사귀를 가진 강한 나무의 그늘로 인해 더 이상의 성장이 멈춰질 수 있다. 그 안에 구성되어 있는 생물과 환경이 끊임없이 서로에게 영향을 주고받으며 살아가는 것을 ‘생태계(Ecosystem)’라고 부른다.

기술개발 및 경영 이슈에서도 최근 몇 년간 생태계 조성을 상당히 중요하게 다뤄왔다. 주력산업이라고 부르는 자동차, 철강, 조선, 반도체 등에서도 생태계를 이끄는 강력한 앵커기업이 등장하여 연관 기업을 이끌고, 전후방 산업에 영향을 끼쳐왔다. 이들 앵커기업은 대부분 대기업일 경우가 많다. 자금력과 국내외 유통망을 가진 경쟁력으로 시장을 좌우할 역량을 가졌기 때문이다. 또한 같은 생태계 내에 여러 개의 앵커기업이 서로 경쟁하며 발전하는 양상을 보여왔다.

그러나 최근 플랫폼비즈니스라는 새로운 흐름이 생겨나면서 생태계 조성에 대한 해석에 변화가 생겼다. 플랫폼비즈니스는 플랫폼을 만든 기업이 독식을 하기 때문에 상호적이기보다는 일방적인 영향력을 가진다. 물론 서로 다른 플랫폼으로 특정 시장을 선점하려는 기업 간 경쟁이라는 단계까지 포함하면 기존 설명의 틀 속에서 해석될 여지는 있다. 그렇지만 여전히 신기술은 어떻게 생태계 속에 안착해 잘 성장할 수 있을 것인가 하는 질문은 남는다. 애플의 앱시장이든, 자동차의 자율주행기술 시장이든 씨앗 기업이 발아 조건을 스스로 찾는 것은 참으로 어려운 일이다.

얼마 전 국내 로봇제품의 부품이 상당부분 수입에 의존하고 있어 대책이 필요하다는 지적을 본 적이 있다. 맞는 말이다. 그러나 기계기술에 의존하는 산업은 대부분 수입 부품과 장비에 의존해야 하는 현실도 존재한다. 기업은 생산 과정 혹은 작동 과정에서 기계 이상으로 차질이 생기면 안된다. 그래서 그동안 시장에서 다수 선택되고 사용되어 안심할 수 있는 수입 제품과 부품을 반복적으로 선택하여 왔던 것이다. 그렇다고 그간 국내에서 부품 국산화를 위한 연구개발 활동과 투자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아마도 거의 모든 분야에서 정부의 투자 프로그램이 진행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결과론적으로 세가지 부분에서 악순환이 일어나는 것을 보았다. 첫째는 새롭게 개발된 신기술 제품과 부품을 앞서 언급한 이유로 제조사에서 선택해 주지 않는다는 것이다. 둘째는 신기술 보유기업 역시 판로가 명확하지 않은 상황에서 생산을 위한 설비 투자·차입을 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규제로 인한 시장 진입 장벽을 만난 경우다. 법적 근거는 있으나 신기술을 수용하기 위한 개정이 필요한 상황이거나, 규정도 표준도 없어 오히려 새롭게 만들어줘야 하는 경우로 나눌 수 있다.

첫째와 둘째의 경우는 제조사가 신기술 선택에서 오는 손실을 보장해주는 정책적 프로그램으로 신기술 사용경험을 늘려주는 것이다. 보급사업 혹은 시범사업이 좋은 방식이 될 수 있다. 셋째는 최근 정부에서 시행하고 있는 규제샌드박스를 활용해 보는 것이다. 프로그램에 따라서 일부 정책자금도 활용이 가능하다.

공공부문이 시장에 개입하는 경우는 시장실패가 일어나거나 예상되는 때다. 글로벌 경쟁이 기술력 확보 싸움인 현실에서 우수 기술 기업을 발아시키기 위해서 발아의 최적 조건을 끊임없이 연구하고 시행하는 부지런함이 요청된다. 특히나 기술은 수명주기가 무척이나 짧기 때문이다. 그러나 잊지 말아야 할 것은 우리 생태계 안에 있는 모든 주체가 함께 움직여야 한다. 글로벌 승자 독식의 냉혹한 경쟁에 직면해 있기 때문이다.

전진우 한국로봇산업진흥원 정책기획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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