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것은 어디에 쓰는 물건인고…경주 테마 박물관 스토리

  • 이춘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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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9-05-17   |  발행일 2019-05-17 제33면   |  수정 2019-05-17
찬연한 문화재 풍성한 박물관문화
韓·中·日·동남아시아 벼루 연대기
대중음악 100년史와 방탄소년단
향수 자극 세계유명 올드카 한눈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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흙을 구워서 만든 둥그런 신라 벼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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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7년 일본으로 건너가 녹음을 했던 한국 최초의 대중가요 음반 중 하나로 불리는 ‘다졍가’(위). 1955년 미국 포드사가 제작한 빨간 ‘포드 선더버드’는 마릴린 먼로가 영화에서 타고 다녔다.

신라로 간다. 아니 경주로 간다. 신라와 경주 사이. 거기에는 유네스코 등재급 고색창연한 유적지가 산재해 있다. 경주는 그래서 ‘한국의 로마’ 같다. 불국사, 석굴암, 첨성대, 분황사, 포석정…. 그 찬연한 문화재들은 오랫동안 ‘수학여행’이란 이름으로 국민적 사랑을 받았다.

신라의 과거는 경주의 현대를 만났다. 그래서 시너지 효과를 거뒀고 훨씬 더 모던하게 변모하였다. 대릉원 일원은 봄에는 유채꽃, 그리고 가을에는 인왕동 핑크뮬리로 인해 전국구 포토존으로 급부상했다. 요석공주와 원효를 부부로 묶어준 월정교, 그리고 첨성대, 그 옆의 기막힌 곡선의 율동을 보여주는 대릉원~월성의 야간 경관조명, ‘신라달빛기행’ 등으로 인해 요즘 경주는 졸지에 ‘빛의 도시’로도 각광받는다. 덕분에 서울발 경리단길 특수의 최대 수혜자로 불리는 ‘황리단길’까지 전국구 핫플레이스로 떠올랐다. 이와 함께 최근 전국구 테마 박물관까지 잇따라 개관, 경주의 박물관문화를 더욱 풍성하게 빚어내고 있다.

그 박물관이야말로 경주 이미지에 딱 들어맞는다. 동부동 경주읍성 옆 주택가의 한 편에 자릴 잡은 ‘취연 벼루 박물관’을 두고 하는 말이다. 한·중·일과 동남아시아 벼루의 연대기를 원스톱으로 관람할 수 있는 국내 유일 벼루 전문박물관이다. 규모에 비해 함축된 문화예술적 콘텐츠가 상당하다.

시선이 가장 오래 머문 벼루는 단연 회백색 ‘신라 벼루’. 육탈이 완전 끝난 동물의 뼈 같았다. 그 벼루를 사용한 신라인을 상상해봤다. 신라 벼루는 특히 귀하다. 좀처럼 원형 그대로 출토되지 않기 때문이다. 이 박물관은 원형 그대로의 벼루 1점을 갖고 있다. 이건 흙을 구워 만든 ‘도연(陶硯)’이다. 신라의 경우 사각형보다 둥그런 벼루가 지배적인데 주로 돌보다 흙으로 만들었다. 특히 고운 진흙을 구워 만든 ‘징니연(澄泥硯)’은 최고급 돌벼루 못지않게 귀한 대접을 받아 중국에서 크게 유행하게 된다.

신라의 벼루는 수수하지만 백제 벼루는 상당히 화려하다. 고려 시대로 접어들면서 벼루도 다양해진다. 청자 기술의 비약적 발달로 ‘청자 벼루’까지 생겨난다. 고려 벼루는 ‘풍자(風字) 벼루’가 보편적이었다. 물 담는 부분인 연지(硯池)보다 먹을 가는 연당(硯堂) 부분이 넓어 바람 풍(風) 자 모양이었다.

고려말부터 붉은 빛이 감도는 ‘자색(紫色) 벼루’가 유행하기 시작한다. 유학자 이숭인은 자신의 문집에서 충북 단양 적성 지역에서 생산되는 자석(紫石)을 두고 ‘양의 간 같이 부드럽다’고 극찬하기도 했다. 특히 평안북도 위원군에만 있는 ‘화초석(花草石)’으로 만든 벼루는 벼루 예술의 백미였다. 화초석은 자색이 주조색인데 그 돌에 녹석(綠石)이 옹이처럼 박힌 게 최고로 취급된다. 거기에 포도문양과 해와 달을 함께 새긴 ‘포도문일월연 화초석’. 모든 선비가 한 점 정도 갖고 싶어했던 천하절창 벼루였다.

조선으로 건너가면 문인화 신드롬으로 인해 벼루의 재료도 돌, 도자기, 철, 나무, 대나무, 유리 등 다양해진다. 장식 기법은 백제 최고의 조각술을 보여준 ‘금동향로’ 못지않게 고난도 테크닉이 동원된다. 수정 벼루는 실제로는 사용할 수 없는 완상용 벼루였다. 이 무렵 과거 보러 한양으로 가는 유생들을 위해 자그마한 휴대용 벼루도 만들어진다. 그 중 두 벼루는 너무나 많이 사용해 구멍이 뚫려 있었다. 야외용으로 많이 사용되던 목연은 나무에 옻칠 처리한 벼루이다.

손원조 관장(78). 군살 하나 없는 깡깡한 체격이다. 유풍(儒風)과 묵향(墨香)이 감돈다. 수집가는 자기 수집품을 닮는다고 했다. 그래서 그런지 그가 살아 있는 벼루처럼 보인다. 50여년간 벼루 수집에 올인해온 그는 반세기 언론인으로 살아온 경주문화의 리더 중 한 사람이다. 현재 경주 지역 유림단체 명륜회 회장이기도 한 그는 한국 민화에도 일가견이 있다. 신라·경북도 미술대전 민화 부문에서 여러 차례 입선했다. 하지만 녹록잖은 이런 이력도 벼루를 향한 집념의 연장일 따름이다.

글·사진=이춘호기자 leekh@yeongn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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