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지영의 마음 톡톡] 의자가 있는 풍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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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9-05-17   |  발행일 2019-05-17 제39면   |  수정 2019-05-17
20190517


내 어깨 위로 살포시 내려앉은 나비
나비에 의해 자신도 꽃이 되는 순간
몸도 마음도 기댈 수 있는 편안한 곳
세상 모든 생명 쉴 곳이 되어주는 곳
서로 ‘의자’가 되어주는 편안한 관계
상대 배려하는 마음 속에서 우러나와


5월입니다. 마음이 분주해 허둥거리며 사느라 봄을 제대로 느끼지도 못하고 보낸다는 생각에 마음먹고 신천으로 나섰습니다. 오늘은 대구한방병원 앞 횡단보도를 건너 파동 쪽으로 가보았습니다. 그 길은 깨끗하기도 하지만 물길을 거슬러 걸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가다보면 커다란 고인돌이 군데군데 놓여있습니다. 저는 걷기보다 햇볕에 데워진 따스한 돌 위에 걸터앉아 흘러가는 물과 하늘, 구름을 보고 천변의 풀들과 눈을 맞추는 것을 더 좋아합니다.

줄무늬 노랑나비가 팔랑거리며 날아갑니다. 들풀에 앉았다가 다시 날아갑니다. 나비를 보자 정하나 시인의 시가 떠올랐습니다. 시인의 시를 생각하면 미소가 절로 지어집니다. 정하나 시인은 미물인 나비까지도 따뜻한 시선으로 바라보며 나비에게 의자가 되어주자 마음먹습니다. “…잠시라도 편히 쉬도록/ 꽃이 되어주자./ 작은 의자가 되어주자.// 우선 나를 비운다./ 그리고 그 빈자리에/ ‘나는 꽃이라는 생각’을 가득 채우자./ 그럼 꽃이 되겠지.// 눈을 감는다./ 스스로 최면을 건다./ …나는 꽃이다./ 꽃이다. 꽃이다.// 나비가 그대로 가만히 쉰다./ 내가 꽃이다./ 나비가 나를 꽃으로 생각한 것이다./ 내가 의자다./ 나비의 의자가 된 것이다.// 나는 속으로 구구단을 외기 시작한다./(‘구구단을 외우는 꽃’중에서)”

시인은 풀밭에서 어깨에 나비가 내려앉자 몸을 움직여 나비를 쫓지 않고 가만히 있습니다. 자신이 꽃으로 보여 앉았으리라 생각합니다. 내가 나를 꽃이라 여기면 나도 꽃이라며 “나는 꽃이다. 나는 꽃이다” 최면을 겁니다. 아주 재미있는 발상의 전환입니다. 나비의 의자가 되어 나비가 더 편하게 쉬었다 갈 수 있게 머리를 비우고 가만히 앉아 있습니다. 움직이면 나비가 날아갈까봐 구구단을 외웁니다. 나비가 잠시 날개를 접었다 날아가는 것은 찰나지만 가만있는 사람에게는 그 순간이 무척 길게 느껴집니다. 나비에 대한 사랑과 연민이 없다면 나비가 날아갈 때까지 가만히 기다려주지 않겠죠. 사물을 따뜻한 시선으로 바라보는 시인의 인식이 시의 밑바탕에 깔려 있습니다. 정하나 시인은 구구단을 몇 단까지 외웠을까 물어보고 싶어집니다.

박소유 시인도 정하나 시인처럼 의자가 되어주고 있었습니다. 그녀는 의자를 찾아다녔는데 그만 그가 먼저 ‘나’에게 앉아 그의 의자가 되었다고 합니다. “의자를 찾아 헤매다 지쳐가면서 내 몸을 둥글게 껴안기 시작한 건 아닌지/ 그가 나에게 앉는다/ 먼저 의자를 찾은 것이다// 마침내 눈빛만으로 펼쳐지고 접히는 세상에서 가장 편안한 의자가 되는 순간, 처음 앉아 보았다/ 나는 이동 경로를 들킨 새처럼 단순해졌다”(‘의자가 놓여 있는 곳’) 시인은 새가 앉을 자리를 찾아 헤매듯이 자신에게 맞는 의자를 찾아 다녔다고 합니다. 그러나 화자가 찾아 나선 의자는 잠시 앉았다 가는 의자가 아니라 평생 앉을 의자를 찾았던 겁니다. 그러니 얼마나 골라 다녔을까요. 의자를 찾아 나선 그녀가 편편해지고 둥글어지니 그녀보다 먼저 그가 그녀를 발견하고 앉았습니다. 그녀는 그의 의자가 되어 그를 받아들이고 길들여져 그에게 맞는 의자가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녀도 이제 그의 의자에 앉아보니 가장 편안한 의자가 바로 그의 의자라는 걸 깨달은 겁니다.

저는 그동안 의자가 나무인지 철제인지 가죽인지 무심히 지나쳤습니다. 그냥 잠시 앉았다 일어나니 별 관심이 없었습니다. 그런데 언제부터인지 의자가 눈에 들어왔습니다. 이제는 잠시 앉을 요량이면 의자부터 살펴보게 되었습니다. 내 몸은 등받이가 편한 의자를 찾아갑니다. 책상의자를 고를 때도 한참 앉아 보고 결정을 했지요. 세상엔 다양한 많은 의자가 있다는 것도 알게 되었습니다. 세상 만물들도 의자가 필요하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꽃도 열매도 다 의자에 앉아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되고, 모두 자신의 의자를 필요로 한다는 사실에 고개가 끄덕여지는 겁니다. 세상에 존재하는 것들에는 몸과 마음을 기댈 의자와 같은 대상이 필요하다는 것도 말입니다.

우리는 하루에 7~8시간 이상을 의자에 앉아 생활합니다. 아침에 눈 뜨면서부터 아무 생각없이 앉아 아침 먹고, 소파에 앉아 차 마시고, 자동차에 앉아 운전하며 출근하고, 사무실에서 책상에 앉아 일을 합니다. 하루 종일 우리 몸이 가장 많이 머무는 곳이 의자입니다. 딱딱한 의자는 긴장하게 되고 부드러운 의자는 편안함과 아늑함을 줍니다. 의자에도 긴장과 휴식의 상관관계가 있게 마련입니다. 의자에 앉으면 사유하기 좋습니다. 생각을 정리하고 문제를 해결하게 하는 자리입니다. 이런 사유를 하다 보니 의자에 대한 시가 눈에 들어왔습니다.

이정록 시인은 어머니의 입을 빌려 의자에 대해 말하고 있습니다. “병원에 갈 채비를 하며/ 어머니께서/ 한 소식 던지신다// 허리가 아프니까/ 세상이 다 의자로 보여야/ 꽃도 열매도, 그게 다/ 의자에 앉아 있는 것이여”(‘의자’) 허리가 아프면 어디든 앉고 싶어집니다. 세상 것들이 다 의자로 보인다는 말에 고개가 끄덕여집니다. 아파봐야 남을 이해하고 세상 것들을 바라보는 눈이 열린다는 말이 실감나는 구절입니다.

세상에는 내가 기댈 수 있는 의자와 내가 의자가 되어 주어야 할 것들이 있습니다. 이정록 시인은 어머니의 말을 빌려 다시 “이따가 침 맞고 와서는/ 참외밭에 지푸라기도 깔고/ 호박에 똬리도 받쳐야겠다/ 그것들도 식군데 의자를 내줘야지”라고 합니다. 참외가 흙에 닿아 상하지 말라고 지푸라기를 깔아주고 호박도 똬리를 받쳐 주는 것을 의자를 내준다고 했습니다. 어머니의 삶의 방식은 고통과 체험과 지혜가 묻어나기에 공감과 연민을 끌어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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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록 시인의 ‘의자’ 말미에 “싸우지 말고 살아라/ 결혼하고 애 낳고 사는 게 별거냐/ 그늘 좋고 풍경 좋은 데다가/ 의자 몇 개 내놓는 거여’라는 말과 박소유 시인의 단순해져야 서로의 의자가 보인다고 하는 말이 같은 의미로 다가옵니다. 모든 인간관계뿐 아니라 특히 부모자식, 부부사이에 서로 의자가 되어주는 것이 가장 편한 관계가 되겠지요. 그건 바로 상대를 배려하는 마음에서만 우러나오는 겁니다.

‘내’가 꽃이 되어 나비가 앉았다 갈 때까지 구구단을 외면서 가만히 기다려주는 배려와 의자를 찾아다니다 내가 둥글어져 상대의 의자가 되어준 것이나 세상 만물이 다 의자로 보이는 이들의 시가 서로 통하는 바가 있습니다. 깨달음은 멀리 있는 것이 아니라 의자에도 있었습니다. 돌덩이 하나도 내가 앉으면 의자가 되고 새가 나뭇가지에 앉으면 나무는 새의 의자가 되는 겁니다.

시인·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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