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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문숙의 즐거운 글쓰기] 밑줄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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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뉴미디어부기자
  • 2019-05-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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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읽다가 곧잘 밑줄을 칠 때가 있지요. 내가 미처 생각지도 못했던 멋진 또는 유익한 문장을 만났을 때나 내가 정말 원하는 또는 필요한 문장을 찾았을 때 놓치지 않고 연필을 갖다 댑니다. 나중에 글을 쓸 때 도움이 되는 것은 물론이지만, 책을 읽는 즐거움과 유익함에 가장 확실한 증거가 되기도 하는 일이니 어찌 피해갈 수가 있을까요.

‘내게 독서란 단순히 작가의 생각을 취하는 것이 아니라 그와 함께 온 세상을 여행하는 행위’라고 말했던 앙드레 지드의 말은 참 중에도 참이어서, 오래전 그 말에 주저 없이 밑줄을 그어놓았던 기억이 납니다.

좋은 문장을 만났을 때는 우리의 생각을 넓혀주기도 하지만, 내가 필요한던 문장을 찾으려고만 한다면 알고 있는 것에 대한 확인에 그치기 때문에 책을 읽는 것이 오히려 발목을 잡게 되는 경우를 종종 봅니다. 그러한 염려를 일본 작가 히라노 게이치로는 ‘책을 읽는 방법’이라는 책에서 이렇게 씁니다. ‘한 달에 책을 100권 읽었다느니 1천권을 읽었다느니 자랑하는 사람들은, 라면 가게에서 개최하는 빨리 먹기 대회에서 15분 동안 다섯 그릇을 먹었다고 자랑하는 사람들과 다를 바 없다. 속독가의 지식은 단순한 기름기에 불과하다. 그것은 아무런 도움도 되지 않으며 쓸데없이 머리 회전만 둔하게 하는 군살이 되기 쉽다. 결코 피가 되고 살이 되는 지식이 아니다. 그보다는, 아주 소량을 먹었어도 자신이 진정으로 맛있다고 생각하는 요리의 맛을 감칠나게 말할 수 있는 사람이 미식가로 존경받을 것이다. 마찬가지로 책도 단 한 권 단 한 구절이라도 제대로 음미하고 충분히 매력을 맛본 사람이 독자로서 더 많은 지적인 영양을 얻을 수 있는 것이다.’

흔히 책읽기를 좋아하는 사람들이 빠질 수 있는 함정이 있지요. 그런 사람일수록 지식자랑을 많이 하려 들기 때문에 남의 이야기를 끊으며 치고 들어오기도 하며, 다른 사람의 무식함을 노골적으로 구박하는 인간성을 드러내기도 합니다. 지식에 발목 잡히면 그만큼 자신의 생각에 갇혀 인간관계에서도 원활하지 못한 경우가 생기는데, 그런 사고로 글을 쓴다는 것 역시 지식 자랑을 하거나 자신의 생각을 주장하기 위한 일방적인 행위에서 못 벗어날 위험이 큽니다. (물론 독서의 질보다 양에 치중한 나머지 그야말로 읽기 위한 독서에 대해 경계할 필요가 있다는 뜻입니다.)

글쓰기는 독서에서 시작되는 것인데, 어떤 책을 읽느냐에 따라 어떤 글을 쓸지가 결정이 됩니다. 그러나 어떤 책을 읽었는지도 중요하지만 그 책을 어떻게 읽었는지가 매우 중요하지요. 아무리 좋은 책이라 해도 자신이 보고 싶은 것만 본다면 그 독서는 오히려 세계를 좁히는 결과만 가지고 온다는 걸 기억하십시오. 어떤 작가는, 발목을 붙잡는 책이 아니라 계단이 되는 책이어야 한다고 말합니다. 천천히 읽고, 낯설게 읽고, 자신의 경험에 비추어 읽고, 두 번 읽고, 이해하며 읽고, 오독하면서 한 번 더 읽고, 읽지 않은 책인 것처럼 한 번 더 읽고, 그리고 정말로 줄을 그어가면서 읽으라고 조언합니다. 그때 밑줄 그은 그 문장은 책읽기의 최종이며, 글쓰기의 최선이 되게 하는 자양분이 될 것입니다. <시인·전 대구시영재교육원 문학예술 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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