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요칼럼] 창업과 守成

  • 페이스북
  • 트위터
  • 네이버밴드
  • 카카오스토리
  • 네이버
  • 구글플러스
  • 기사내보내기
  • 2019-05-20

당태종이 물었다. “창업하는 것과 창업한 왕조를 지키는 수성(守成) 중 어느 게 더 어려운가?” 방현령이 답했다. “천하가 어지러우면 군웅이 다투어 일어납니다. 적을 공파하여 항복을 받고 싸워 이겨서는 겨우 세상을 평정합니다. 이런 연유로 창업하는 것이 어렵다고 생각합니다.” 위징의 대답은 달랐다. “창업은 하늘이 내려주고 백성으로부터 받는 것이므로 어렵다고 할 수 없습니다. 하지만 천하를 얻은 뒤에는 제왕의 지향하는 바가 교만해지고 방일(放逸)해집니다. 백성은 안정을 되찾고자 하나 부역이 그치지 않습니다. 나라가 쇠퇴하는 것은 언제나 이런 일로 일어납니다. 그래서 수성이 어렵습니다.”

국정농단의 늪에 빠져 탄핵으로 귀결된 박근혜정부의 폭망은 수성 실패의 전형적 사례다. 수문제·수양제 2대 37년 만에 무너진 수나라 왕조, 로베스피에르의 공포정치와 왕정복고 등으로 점철된 프랑스 혁명의 지난한 과정 또한 수성의 어려움을 웅변한다.

‘아랍의 봄’ 진원지 튀니지는 실업률이 치솟고 물가가 폭등해 시위 시민들과 경찰 간의 유혈충돌까지 벌어졌다. 8년 전 아랍국가의 민중봉기를 촉발했던 ‘재스민 혁명’의 비극적 결말이다. 잠시 민주화 춘풍이 불었던 이집트도 쿠데타를 일으킨 엘시시가 대통령이 되면서 독재 망령이 부활했다. 창업이랄 수 있는 혁명엔 성공했으되 민초들의 삶은 더 피폐해지고 자유가 억압됐으니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촛불혁명’의 동력에 힘입어 비교적 넉넉한 표차로 창업에 성공한 문재인정부 2년의 굴곡도 수성의 난맥상을 오롯이 노정한다. 정치·경제·대북정책 어느 하나 순항하는 게 없다. 그 중에서도 경제 실패로 점수를 많이 까먹었다. 초라한 경제지표는 소득주도 성장으로 대변되는 ‘J노믹스’의 위기를 방증한다. 10년 만의 마이너스 성장률, 최악의 청년 체감실업률 등등.

일방통행 정치는 국회 마비로 이어졌다. 국회 바닥에 드러누워 ‘독재 타도’라는 어울리지 않는 구호를 외친 자유한국당도 생뚱맞지만, 정국 파행을 불사하면서까지 공수처법과 검경수사권 조정안을 패스트트랙에 올린 더불어민주당도 납득하기 어렵다. 무엇보다 내용이 미진하고 논란을 야기할 구석이 너무 많다. 암호 같이 난해한 선거법 개정안도 마찬가지다. 공수처는 삼권분립을 훼손할 소지가 있는 데다 정권의 도구로 악용될 개연성이 농후하다. 국정원의 국내 정보활동 금지로 정보권을 장악한 경찰이 수사권까지 틀어쥔다면 어떻게 될까. 버닝썬 사건은 경찰에 대한 강력한 통제장치의 필요성을 예고한다.

정치는 절제와 조율의 예술이라는데 우리 정치판엔 절제와 조율이 없다. ‘오버’와 대치, 비방과 독설이 난무한다. 여의도는 목하 막말 배틀 중이다. 달창, 사이코패스, 한센병 따위의 정제되지 않은 언어로 공방을 벌인다. 절제 없는 정치현실의 적나라한 단면이다. 하물며 글도 절제 없인 명문이 불가하다. 냉정한 분석과 간명한 문체가 요구되는 대목에서 정서적 오지랖이 철철 넘치는 장광설을 늘어놓는다면 어떤 평가를 받을까. 대화와 협상을 통해 접합점을 넓혀가는 조율 역시 정치의 요체다. 현악기의 음률을 고르는 것을 조현(調絃)이라 한다. 한데 여야는 하나 같이 조율엔 문외한이니 조현병 환자라는 말을 들어도 싸다.

율곡 이이는 ‘식시무(識時務)’란 글에서 왕조의 단계를 창업, 수성, 경장(更張)의 3단계로 나누고 단계마다 용인술과 정책이 달라야 한다고 썼다. 또 수성이 흔들리면 경장을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문재인정부는 경장으로 반전을 모색해야 하며, 코드 인사를 지양하고 경장에 부합하는 전문가와 테크노크라트를 중용해야 한다.

‘정관(貞觀)의 치(治)’를 이루어낸 당태종은 세 개의 거울을 통치의 표상으로 삼았다. 동경(銅鏡)으로 얼굴을 보며 스스로 마음을 가다듬었고, 사경(史鏡)으로 역사의 교훈을 반추했으며, 인경(人鏡)으로 현자(賢者)의 간언(諫言)을 들었다. 위징은 당태종의 대표적 인경이었다. 문재인 대통령에겐 잘못된 정책의 방향 전환을 간언하는 인경이 있기나 한가.

박규완 논설위원

[Copyrights ⓒ 영남일보.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