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1980년대 학생운동권 폄훼하지 마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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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9-05-21

박형룡 (<주>다스코 대표)
얼마 전 황교안 자유한국당 대표가 한 발언으로 마음이 아팠다. 황 대표의 “1980년대 학생운동권은 혁명이론, 싸우는 것을 공부했지 정상적으로 일해 돈 벌어본 사람이 거의 없다"는 말이 그것이다.

누구나 아픔 하나씩은 가지고 살 터이다. 50대 중반에 접어든 나 역시 그렇다.

엄혹한 독재정권시절이었던 1987년 경북대 총학생회장을 맡아 독재정권에 맞서 싸웠고, 졸업해서도 사회단체 활동에 전념했다. 급여 없이 스스로 생계를 책임지며 활동하던 시기였다. 당연히 경제적으로는 어려웠다.

주업은 사회운동가, 부업으로 우유 배달, 새벽 세차, 도배 등을 해가면서 활동비를 충당했다. 결혼 초기엔 아내에게 제대로 된 월급봉투를 건네준 적이 없다. 그게 나로선 큰 아픔이었다. 배고프고 힘든 사회운동가로서의 삶과 돈벌이 사이의 경계선상에서 고민과 갈등, 아픔이 많던 시기였다. 당시 다수 사회운동가들이 겪어야 했던 아픔의 한 단면이리라.

그렇지만 누구를 원망하지 않고 치열하게 민주주의를 위해, 자주를 위해, 평화통일을 위해 그렇게 살았다. 독재정권의 하수인 노릇을 충실히 하던 자들의 입에 함부로 오르내릴 수 있는 삶들이 아니다. 더 이상 모욕하지 마시라.

황교안 대표는 자신의 존재감 부각을 위해 낡은 반공이데올로기로 사실을 왜곡하고 있다. 무엇보다 심각한 건 먼저 황교안 대표가 운동권의 목표와 수단을 왜곡하고 있다는 점이다.

독재타도와 민주정부 수립은 80년대 운동권의 주된 목표였다. 아니 대다수 학생들이 그렇게 생각했다. 싸움이 먼저가 아니라 민주정부 수립이 근본이라는 이야기다.

무자비한 독재정권 하에선 언론, 출판, 집회, 결사라는 민주적 기본권조차 보장되지 않았다. 지역의 여론을 대표했던 영남일보도 강제로 폐간되지 않았던가. 독재정권과 맞서기 위해선 싸우는 것에 대해 치열하게 공부할 수밖에 없었다. 운동권을 탄압했던 분으로서 할 이야기가 아니라고 본다.

둘째, 황 대표는 “좌파 중에 정상적으로 돈 번 사람들이 거의 없다”라고도 했는데, 실제 80년대 운동권 출신 중 직업적 사회운동가는 전체 운동권 출신들의 일부에 지나지 않는다. 나머지 대다수는 각각의 영역에서 지극히 정상적으로 돈을 벌며 살았고, 지금도 그렇게 살고 있다.

황 대표 입장에서는 적어도 검사 정도가 되지 않으면 정상적이지 않은 모양이다. 무수한 알바들, 비정규직 종사자들 모두 황 대표의 눈에는 정상적으로 보이지 않을 듯하다. 특권의식에 깊이 찌들어 있는 발언이 아니고선 국무총리까지 한 분의 말로 믿고 싶지 않다.

셋째, 황 대표는 더불어민주당은 물론 자유한국당에 이르기까지 자신들 내부에 운동권 출신의 의원들, 보좌진, 당원들이 적지 않음을 모르는 것 같다. 황 대표가 운동권 출신들을 좌파로 매도하고자 하나 자신들의 몸속에서조차 80년대 운동권의 피가 진하게 섞여 있다는 것을 알았으면 한다. 그만큼 80년대 운동권이 이 사회에 미친 영향이 깊고 크다는 이야기다.

이 나라의 민주주의와 평화통일을 위해 때론 고통을 감수하며 노력했던 그 모든 삶들은 모두 소중하고 존중받아 마땅하다고 본다. 물론 운동권들의 삶 중 비판받을 점도 있다.

그러나 그 독재정권에서 호가호위하던 이들의 입에 쉽게 오르내릴 삶은 아니다.

황 대표가 오늘날 이렇게까지 거리낌없이 발언하고 거리투쟁을 할 수 있는 것도 70~80년대 운동권과 국민들이 피땀으로 일궈놓은 민주주의 덕분임을 깨닫기 바란다.박형룡 (<주>다스코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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