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요칼럼] 동의하십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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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9-05-22


온라인상의 서비스 이용 때

개인정보 활용을 묻는 질문

내용 모른 채 동의할 수밖에…

허울 좋은 말장난 그만하고

악용 막을 대책이나 세워야

온라인으로 무엇인가를 하다 보면 늘상 접하게 되는 질문이 바로 “동의하십니까”라는 것이다. 대부분은 “예”를 선택한다. 내가 과연 무슨 내용에 동의하게 되는지를 꼼꼼하게 다 읽어보고 “예”를 선택하는 분이 없다고 단정하기는 어렵겠지만, 실제로 극소수일 것이다. 어쩌다 궁금해서 한번쯤 그 내용을 끝까지 읽어보려 시도하다 중간에 포기한 사람은 여럿 있겠지만, 매번 그 내용을 끝까지 다 읽어보는 사람은 분명히 비정상적이거나 시간이 너무 많이 남아도는 사람일 것이다. 내용을 언제나 끝까지 읽을 뿐 아니라, 그게 무슨 뜻인지까지도 완전히 이해하고 동의하기를 선택하는 사람은 현실 세계에서는 존재하지 않는다.

물론 자신이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는 알고 있다. 예를 들어, 음식을 손쉽게 주문하고 배달받을 수 있게 해주는 앱이 있다고 해서 그것을 찾아서 지금 설치하려는 상황이라거나, 기차표 예매를 온라인으로 하려는 상황이라면, 내가 원하는 것은 바로 이런 서비스를 이용하겠다는 것이다. “동의하십니까”라는 질문에 내가 “예”라고 대답하는 이유는 내가 그 서비스를 이용하는데 동의한다는 뜻이지 그 서비스를 이용하려면 어쩔 수 없이 동의하지 않을 수도 없는 개인 정보 활용 내용을 내가 이해하고 동의한다는 뜻이 결코 아니다. 선택의 여지가 없는 동의는 동의가 아니다. 어차피 읽어봐도 이해할 수도 없는 온라인 기술과 고도화된 데이터 활용의 방법과 내용을 내가 ‘동의’하거나, ‘선택’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동의’니 ‘선택’이니 하는 허울 좋은 말장난은 이제 그만하시라. 개인정보 보호와 활용의 균형점을 이용자의 ‘동의’에서 찾을 수 있을 것이라는 발상 자체가 근본적 오류였다는 점을 인정해야 한다. 개인정보 관련 법제는 이미 실패했고, 앞으로 더 큰 실패와 폐해를 낳을 것이다. 심지어 ‘제대로 알고 하는 동의(informed consent)’라는 더 거창하게 들리는 개념을 끌어들여서 개인정보 보호와 활용의 균형점을 찾을 수 있을 것이라는 백일몽을 꾸는 법률가들도 있다. 자기도 읽어보지 않으면서 “예”를 클릭하고, 또는 읽어봐도 이해하지 못할 온갖 데이터 활용 기법들이 있다는 엄연한 사실을 눈앞에 두고서도 청맹과니처럼 ‘동의’라느니 ‘선택’이라느니 하는 환상으로 포장된 개념을 휘둘러대는 법률가와 정책결정자들 때문에 개인정보는 제대로 보호되지도 않고 활용되지도 못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이용자에게 해가 되는 방법으로 개인정보를 악용하는 사업자의 행위를 ‘예방’하고, 그런 행위를 ‘색출’해내고, 그 행위자를 ‘처벌’하는 것이 개인정보 보호의 핵심이며, 이용자에게 해가 되지 않는 방법으로 개인정보를 사용하는 사업자들은 아무 제약 없이 마음껏 활용할 수 있도록 보장하는 것이 개인정보 활용의 요체일 것이다. “동의하십니까”라고 질문하고 “예” 또는 “아니요” 중 하나를 클릭하게 한다고 해서 개인정보 악용을 예방하거나, 색출하거나, 처벌하는데 과연 실질적 도움이 된다고 생각하는가. 오히려 “당신이 동의했지 않느냐”는 사업자의 후안무치한 핑계의 빌미만을 제공하는 것이 개인정보 관련 동의 제도의 실상이다.

어떤 서비스를 원하는 이용자에게 그 서비스를 받으려면 개인정보의 수집·처리·활용에 동의해야만 하고, 동의하지 않으면 서비스를 이용할 수 없다는 식으로 이용자의 동의를 사실상 강탈해내는 것은 깡패들이나 하는 짓이지, 국가의 법제도가 이런 짓을 하도록 부추겨서는 안된다. 이용자에게 ‘동의’를 하도록 하기보다는 사업자에게 ‘설명’할 의무를 부과하는 것으로 족하다. 그리고 이용자의 동의가 있건 없건, 이용자에게 해가 되는 방식으로 개인정보를 악용해서는 안된다는 ‘충실의무’를 모든 사업자에게 부과하고 고객의 이익에 반하는 행위는 처벌하고 손해를 배상하도록 하면 충분하다고 생각한다.

“동의하십니까”라는 질문은 이제 그만하시라.

김기창 (고려대 법학전문 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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