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성] 리디노미네이션

  • 김기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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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9-05-22   |  발행일 2019-05-22 제31면   |  수정 2019-05-22

‘리디노미네이션(Redenomination)’ 논란이 끊이지 않고 있다. 리디노미네이션이란 화폐의 실질가치는 그대로 두고 액면단위를 바꾸는 ‘화폐단위 변경’을 의미한다. 1천원을 1원으로 변경하는 식이다. 이렇게 되면 현재 4천원짜리 커피 한잔은 4원이 된다.

리디노미네이션 논란은 지난 3월25일 이주열 한국은행 총재가 국회 기획재정위원회 한은 업무보고에서 “리디노미네이션 논의를 할 때가 됐다”고 밝히면서 촉발됐다. 곧바로 청와대가 나서 리디노미네이션을 검토한 바가 없다고 진화작업에 나섰지만 논란은 숙지지 않고 있다. 지난 13일에는 여야 의원이 공동주최한 ‘화폐개혁, 리디노미네이션을 논하다’라는 정책토론회가 열려 리디노미네이션 논란을 재점화시켰다. 이날 박운섭 한은 발권국장은 “언젠가는 리디노미네이션을 해야 한다. 한은은 10년 이상 준비를 해왔다. 입법을 거쳐야 하는 만큼 국회가 논의를 주도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며 리디노미네이션 필요성을 주장했다. 박승 전 한은 총재도 “지금 안 해도 언젠가는 해야 하는 일이고 시기의 문제”라며 힘을 보탰다. 물론 반대 의견도 나왔지만, 논란은 국회 토론회 후 확산되는 양상이다.

일부 논란 내용은 괴담 수준이다. 5억원짜리 집이 50만원이 되면 싸다고 느껴 수요가 늘면서 가격이 오른다는 부동산 폭등설, 정부가 북한과 화폐단위를 맞추려는 의도의 남북 단일 통화 추진설, 숨어 있는 장롱속 고액권을 끄집어내 소비를 활성화시키려는 지하경제 양성화설 등이다. 여기에 금이나 비트코인을 사둬야 한다는 주장도 유튜브를 중심으로 퍼지고 있다. 이와 직접적 관련이 있는지는 확인할 수 없지만 최근 금과 비트코인 거래량이 늘고 있다. 이주열 한은 총재가 지난 20일 이와 관련해 “검토한 적도 없고, 추진할 계획도 없다”며 재차 진화에 나섰지만 쉽게 가라앉지는 않을 듯하다. 아니 땐 굴뚝에 연기가 나지 않는다는 진리를 더 믿는 분위기다.

논란을 억지로 막으면 불신과 불안감은 더 커진다. 우리나라 경제 규모에 비해 화폐 단위가 너무 큰 것은 사실이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1달러당 환율이 네 자릿수인 국가는 우리나라가 유일하다. 일부 커피점은 4천500원짜리 커피를 가격표에 ‘4.5’로 표기한다. 자체 리디노미네이션을 한 것이다. 시장이 제도를 앞서가고 있는 셈이다.

리디노미네이션은 이미 우리 사회의 주요 논란거리가 됐다. 이렇게 된 이상 논란을 차단하기보다는 차라리 공론화하는 것이 낫다. 김기억 동부지역본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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